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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범근 Mar 08. 2020

5일간 산 속에서 명상하고 배운 것

푸른누리 마음닦기 후기

1년 전 이맘 땐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었다. 일을 열심히는 하는데 이게 맞나 싶었다. 디콘 정식 직원이 조금씩 늘어갈 때마다 부담감이 심해졌다. 누군가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나조차도 당장 이 회사가 살아남을지 확신이 없는데, 이 사람들은 자기 삶의 일부를 걸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마다 목이 콱 막혀왔다. 수주한 프로젝트가 무산될 때면 먹을 게 잘 안 넘어갔다. 머릿속은 카오스였지만 아무리 고민해봐도 이거다 싶은 돌파구는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죽상을 하고 있자, 엄마가 왜 그러냐고 물으셨다. 이러저러해서 고민이 많다. 어디 산속에 틀어박혀서 좀 쉬고 싶다고 징징거렸다. 엄마가 명상 캠프에 갔다오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깊은 산속에 있는 수련원 같은 곳인데 열흘 동안 들어가 속세와 단절되어 명상을 하고 온다는 거였다. 엄마도 우근이 진단받고 힘들 때 도움이 되었다고.


명상 캠프라니? 뭔가 신비주의적인 느낌이다. 보통 때라면 냉소를 날리며 사양했을 거다. 근데 그 때는 완전 솔깃했다. 검색을 해봤다. 잘 나오지 않았지만 간신히 다음 카페를 찾았다. '마음닦기 일정 알립니다'라는 공지가 있었다. 1주일 뒤면 2월 프로그램이 시작된다는 걸 알았다. 충동적으로 신청을 눌렀다. 회사에 주말 포함 5일 휴가를 냈다.


충북 보은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보은 버스터미널에 내려서 다시 군내 버스를 타야했다. 배차 간격이 2시간이었다. 하루에 4번 운행하는 버스였다. 얼마나 산골짜기인걸까. 터미널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대합실엔 할머니 몇 분이 장바구니를 들고 앉아 계셨다. 매표 직원은 지루해하며 핸드폰으로 TV를 보고 있었다. 옆에는 허름한 매점이 하나 있었다. 한산한 시골 터미널이었다.


군내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갔다. 카페에 올라와있던 '오시는 길'에 써있는 곳에서 내렸다. 버스 정류장 이름도 없었다. 내린 사람도 나밖에 없었다. 여기서 20분을 더 걸어들어가야 했다. 진짜 산 속은 제대로 산 속이구나.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길 주위는 다 산이었고 인기척도 없었다. 너무 조용해서 풍경 전체에 음소거를 건 것 같았다. 나만 드르륵드르륵 캐리어 소리를 내며 그 정적을 깨고 있었다. 그 순간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어 웃겼다. 기록이나 해두자 싶어 사진을 찍었다.


수련원에 도착했다. 순간 제대로 온 게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한참 뒤 내 소리를 듣고 선생님이 나와서 맞아주셨다. 아궁이에 장작을 때고 있었다면서. 내 이름을 묻고 종이에 체크 표시를 하셨다. 목록에는 10명 정도 이름이 쓰여있었다. 숙소로 안내해주셨다. 딱 한 사람이 누울만한 독방이었다. 짐을 풀고 '나 도착했음' 카톡을 했다. 폰을 껐다. 그렇게 명상 캠프 1일차가 시작됐다.


눈발이 날리던 길


푸른누리(이 명상 센터의 이름) 시간표는 이렇다.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아침 명상을 2시간 한다. 6시에 아침을 먹는다. 오전 명상을 한다. 11시에 점심을 먹는다. 오후 명상을 한다. 저녁은 거른다. 정비 시간을 가진 뒤 저녁 8시반에 잔다. 한 마디로 줄이면 잠, 밥 빼고 하루 종일 명상한다는 뜻이다.


말을 하지 않는다. 선생님에게는 질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나 외에도 8명 정도의 사람들이 더 있었다. 하지만 말은 끝까지 한 마디도 못해봤다.) 선생님이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말을 하러 온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러 온 겁니다"


개량 한복을 입으신 선생님은 우리말을 사랑하셨다. 시간표는 하루살이표. 명상은 마음닦기. 중요하다는 종요롭다. 보통 쓰이는 한자말, 일본말, 외래말을 모두 우리말로 바꿔놓으셨다. 좋은 우리말이 있는데 한자어에 너무 물들었다면서.


첫날엔 이 모든 게 낯설었다. 선생님은 모든 설명을 천천히, 띄엄띄엄, 간단하게 했다. 여전히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가 잘 안 됐다. 그러나 뭐가 되었든 복잡할 것은 없어보였다. 입을 닫고 기다렸다. 내가 여기까지 내 발로 찾아왔으니, 시키는 대로 하면 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마음을 그렇게 먹자, 여유로워졌다. 산 속은 정말 고요했다. 흔한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게 정말 좋았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서울의 번잡함, 인터넷, 전화, 해야할 일.. 아무것도 없었다. 핸드폰과 지갑을 맡기는 순간에 이상한 희열마저 들었다. 그 모든 게 반가울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삶에 지쳐있었던 것 같다.


묵언도 나를 홀가분하게 만들었다. 신기했다. 분명 같은 공간에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굳이 말 걸 필요도 없고, 친절을 베풀 필요도 없다. 서로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저 조용히 시키는대로 밥 먹고 잠자고 명상을 할 뿐이었다. 하루종일 말을 하지 않으니까 마음이 가라앉았다. 생각이 느려졌다.


아나빠나 명상을 배웠다. 아나빠나는 들숨 날숨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명상이다. 선생님은 15분 정도 짧게 설명을 하셨다. "마음닦기란 운동과 같아서 방법을 설명하는 사람들이 각자 하는 말이 조금씩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몸으로 깨닫는 것이지요" 고요하고 어스레한 한옥방 안에서 그렇게 하염없이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이 시간이 나를 얼마나 변화시킬지는 전혀 모른채.


고요하고 어스레한 한옥방


사람은 누구나 숨을 쉰다. 하지만 내가 숨을 쉬고 있다고 의식하면서 살진 않는다. 명상은 숨을 알아차리는 데서 시작한다.


실제로 해보면 이게 정말 어렵다. 온갖 딴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밖에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뭘까?' '내가 회사에 두고온 그 일, 잘 되고 있을까?' '아까 세면대에 칫솔 두고 온 것 같은데, 아닌가?' 등등...


그리고 다리가 너무 아팠다. '다리 아프다'가 5일 동안 가장 많이 한 생각이었을 거다. 난 유연성이 떨어져서 가부좌를 잘 못한다. 한 20분 지나면 다리에 감각이 없어진다. 그때마다 살-포시 무릎을 폈다. 아니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린 느낌이 사라지면 다시 앉았다.


선생님은 움직이지 말고, 그것도 알아차리라고 하셨다. "다리가 아플 것입니다. 하지만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아픈 느낌을 아픈 대로 두십시오. 가려우면 가려운대로 두십시오. 그냥 알아차리기만 하십시오. 반응하지 않으면 곧 사라집니다." 이게 뭔 소리다냐.


명상은 '생각을 하지않는 것'이 아니다. 계속 일어나는 생각에 반응하지 않는 거다. 어떤 자극을 받으면 감정이 일어나고 괴롭거나 즐겁다는 반응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반응을 하지 않으면, 느낌은 왔다가 파도처럼 사라진다. ⠀


우리 안엔 동물적 본능이 남아있다. 외부 자극을 순식간에 판단한다. 거기에 대해 걱정하고 괴로워하고 짜증낸다. 이 본능을 길들이는 것이 마음닦기다. 생각을 알아차리고, 반응은 통제한다. 나는 내 생각이 아닌, 생각을 지켜보는 제 3의 무언가다.


사실 나도 여전히 뭔 소리인지 모른다. 선생님은 계속 숨을 알아차리다보면, 그 '종요로움'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고 하셨다. 그런 깨달음까지는 못 갔다. 하지만 4일이 지나자 '반응하지 않는 것'이 무슨 느낌인지는, 조금 깨달을 수 있었다.


파도에 반응하지 않는 것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싶은게 있습니까?" 선생님이 물으셨다. "마음을 닦았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내가 묻자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가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흐-뭇한 마음이 피어오를 겁니다." 기대한 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흐뭇하다는 말의 어감이 좋았다.

정말로 나가자마자 나는 무언가 달라진 걸 느꼈다. 세상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평범한 골목길을 봤다. 평소라면 신경 안 썼을 거다. 거기에 한참 눈길이 갔다. 내 걸음걸이도, 말도 조금씩 느려졌다.


마치 마음 속 흙탕물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 흙탕물인줄 몰랐다. 그 속에서 '안보여!' 하고 살아왔다. 닷새간 가만히 앉아있자 흙들이 바닥에 착 가라앉았다. 물이 맑아졌다. 시야가 넓어졌다. 말하자면 그런 느낌이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타는 사람이 먼저 들어올 때가 있다. 평소엔 마음속으로 짜증이 났다. 속리산에서 올라오던 그날도, 열리자마자 타는 사람이 있었다. 근데 하나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진짜다. 자연스럽게 아무 감정도 안 올라왔다. 그런 나 자신을 알아차리고, 깜짝 놀랐다.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정확히 하루 뒤. 올라오는 길에 느꼈던 그 오묘한 평화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출근하자 밀린 일이 쌓여있었다. 각종 사건이 터졌다. 정신없이 일을 했다. 휴대폰은 다시 느려졌다. 골목길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먼저 타는 사람한테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 '느낌'은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운동에 비유해보자. 헬스 초보가 있다.하루 30분 깔짝깔짝 운동을 한다. '뭐야, 헬스 해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네' 생각한다. 그러다 5일간 빡세게 PT를 받는다. 그리고 나서 '이게 진짜 운동하는 느낌이구나' 하고 깨닫는다. 그 5일로 몸이 바뀌진 않았다. 하지만 진짜 운동의 기쁨과 고통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명상 캠프는 정신 PT였다. '명상을 제대로 하면 어떤 느낌이구나'를 알게 되었다. 물론 내 일상은 여전히 평화와 거리가 멀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그 느낌을 일상에 계속 끼워넣고 싶었다. 명상을 꾸준히 하기 시작했다. 오늘 443번째다. 그렇게 매일 아침 명상하는 습관이 생겼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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