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보기' 해놓고 안 본다
현대인 십중팔구가 걸려있는 병이 있다. 이름하여 '나중에 보기' 병. 증상은 간단하다. 페이스북에서 좋은 링크를 보면 '나중에 보기'로 저장한다. (심하면 읽지도 않고 남한테 공유만 한다.) 그 외에 유튜브든, 넷플릭스든, 블로그든, 종이책이든 다 해당된다. 콘텐츠는 계속 쌓인다. 그리고 절대 '안 읽는다' ⠀ ⠀
솔직히 나는 완전히 중증이다. 콘텐츠 욕심이 정말 많아서 증상이 전방위적이다. 1. 전자책 구독 서비스에서 책을 마구 다운로드한다. 무료니까. 그리고 안 본다. 2. 도서관에서 종이책을 막 빌린다. (행복) 그리고 안 본다. 3. 팟캐스트 잔뜩 구독한다. (와 이런 재밌는 것들이 있어?) 그리고 안 본다. 4. 인사이트 쩌는 블로그 글을 발견하고 저장한다. 그리고 안 본다. 기타 등등.
⠀
'안 읽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세상엔 콘텐츠가 너무 많다. 다 못 읽는 건 당연하다. 나한테 중요한 것만 읽을 수밖에.
⠀
진짜 문제는 이거다. '나중에 보기' 리스트는 항상 내 머릿속 한 구석을 차지하고 앉아 약간의 죄책감과 정신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안 읽을 거면 신경을 꺼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볼 것도 아니고 안 볼 것도 아닌 그 애매한 상태로 남아있다.
⠀
심지어 읽을 시간이 있어도, 뭐부터 읽을지 선택 장애가 온다. 저장을 너무 많이 해놨으니까. 수백 개의 블로그, 영상, 링크, 책에 압도되어 버린다. 그렇게 막상 읽는 시간도 잡아먹는다.
⠀
말은 이렇게 했지만, 모든 사람이 이걸 병이라고 볼 것까진 없다고 생각한다. 넷플릭스에 찜하고 못 본 영화 많으면 뭐 어때. 다 재밌자고 보는 건데 그럴 수도 있지. ⠀
⠀
하지만 요즘 나한테는 고치고 싶은 병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콘텐츠를 매주 2개씩 찍어내기 위해선, 좋은 인풋이 계속 들어와야 한다. 고퀄리티의 지식이나 참신한 관점을 읽어야 한다. 거기에 대해 내 의견을 생각해봐야 한다. 그래야 나도 고퀄리티의 지식과 참신한 관점을 생산할 수 있다.
⠀
오늘 출근길 지하철에서 강남 교보문고 매대 수준으로 복잡한 나의 전자책 리더기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거 좀 심각한데... ⠀
⠀
콘텐츠 읽기/듣기/보기를 우선순위화할 필요를 느꼈다. 기준을 세워서 중요한 것부터 나래비를 세워야 한다. 맨 위에서부터 읽고, 안 중요하면 과감하게 지우고. 새로운 콘텐츠는 리스트 앞이 아니라 뒤에 추가되게. 읽을 시간이 생기면 바로 맨 위부터 읽을 수 있게.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