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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범근 Jun 29. 2021

저번에 컨펌한 거 한번 더 수정해주실 수 있나요?

공동 창작의 어려움

어떤 작가와 협업을 하다가 이런 멘트를 들었다. 


"이미 저번에 컨펌하신 걸 다시 수정해달라고 하시면, 제대로 안 보셨거나 아니면 우유부단한 거로밖에 저는 생각이 안 된다. 실망스럽다."


하... 틀린 말은 아니다.


안다. 다시 수정해달라고 하면 짜증나는 거. 


그치만 나도 글만 한번 보고 모든 수정을 찾아내면 좋겠다. 근데 콘티로 바꾸면 어색한 부분이 보이고. 작화로 가면 또 보이는데...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흑흑... 이 생각은 속으로만 삼켰다. 


공동 창작이라는 건 정말 어렵다. 글을 혼자서만 쓰다가, 여러명과 같이 웹툰을 만들면서 느낀다. 


서로의 영역이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글, 콘티, 그림, 편집, 번역... 이 모든 단계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림이 조금만 달라지면, 글이 엄청 이상해진다.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다. 내가 알고 있는 언어는 그냥 '화난 표정 / 매우 화난 표정' 밖에 없지만, 콘텐츠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중간 정도로 화가 났지만, 서둘러 그 모습을 감추는 표정' 같은 수준으로 얘기를 해야 한다. 이런 소통을 하기에 언어의 해상도는 너무 낮다.


절대적인 기준도 없다. 피드백을 주고받을 때도 생각을 엄청 해야 한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단어를 쓰게 된다. 더욱이 한명 한명이 창작자이기에 기분이 상하지 않기 위해서 각종 쿠션어도 덧대줘야 한다.


그래도 상대방이 제대로 이해할지 확신이 없다. 한 다리만 건너도 마치 가족오락관 고요 속의 외침마냥 왜곡되기에 십상이다.


텍스트에는 다른 매체가 따라올 수 없는 가성비가 있다고들 하는데, 그 말이 이제서야 실감이 난다. 혼자 만들 수 있으니까.


하지만 사람 숫자가 하나라도 늘어서 공동 창작이 되는 순간, 그사이의 커뮤니케이션과 코디네이션이 급속도로 어려워진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경험과 스킬이 부족한 거겠지만..


할리우드에서는 한 드라마에 작가가 4~5명씩 붙고 감독도 여러 명이고 다 집단 창작 체제로 한다고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콘텐츠 제작 단계에서의 모든 미묘한 생각, 판단, 뉘앙스를 어떻게 다 싱크시키는 걸까? 겁나 힘들 거야 아마.


아무튼 뇌랑 뇌를 연결하는 기계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그냥 뇌에서 생각을 직접 보내는 거밖엔 답이 없는 듯하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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