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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범근 Aug 15. 2017

인간과 기계의 결합, 그리고 언어 이후의 세계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Brain-Computer Interface (2)

BCI가 극복해야 할 3가지 문제점

BCI는 서서히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도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전문가들은 BCI가 극복해야 할 가장 큰 문제점 3가지를 이렇게 뽑았다.


1.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물체, 뇌

우리는 아직도 뇌에 대해 너무 모른다. BCI를 통해 측정된 패턴을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정보로 변환하려면 우리는 뇌의 뉴런들이 어떻게 발화하고 어떤 패턴을 가지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을 해석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뇌의 모든 것을 1km라고 한다면 우리가 아는 것은 겨우 몇 센티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아직도 뇌의 패턴을 해석할 만큼 충분히 뇌에 대해 알지 못한다. 뇌에서 생성되는 전기 신호 패턴의 복잡도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뉴런 하나가 만드는 신호는 수 천에서 1만 개에 달한다. 뉴런 하나가 신호를 보내면 최대 1만 개의 다른 뉴런이 받는다. 신호를 받은 뉴런은 또 제각기 다른 1만 개의 뉴런에 신호를 보낸다. 이렇게 신호를 보내는 속도는 최대 초속 120m이다. 그리고 이렇게 신호를 주고받는 뉴런이 1000억 개 있다. 그래도 상상이 안되면 축구장 크기 공간에 스파게티를 가득 채우고 그걸 두개골 크기로 줄였다고 생각해보자. 아무튼 억 소리나게 복잡하다.



2. 초당 정보량(Bandwidth)

말했듯이 뇌의 패턴 정보는 엄청나게 복잡하다. BCI가 목표하는 전뇌(whole-brain) 수준의 BCI가 되려면 뇌의 신경 세포 하나하나를 모두 정밀하게 잡아내고 이를 뇌의 패턴이 발화하는 속도로 전송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엄청난 정보 처리량(Bandwidth)이 필요하다. 현재 BCI가 가진 전극과 성능으로는 3 단어 짜리 단순한 생각에 해당하는 패턴을 전달하기에도 한참 멀었다. 뉴럴링크 사의 전문가들은 전뇌 BCI 수준에 가려면 백만 개의 뉴런을 동시에 기록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가장 뛰어난 BCI는 약 500개의 뉴런을 동시에 기록할 수 있다. Stevenson과 Kording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BCI도 기하급수적으로 성능이 증가하는 무어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고 한다.

BCI가 동시에 기록할 수 있는 뉴런의 증가 속도



3. 비침습 방식의 한계 극복

BCI를 사용할 때 항상 두개골을 절개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면 BCI는 대중화되지 못할 것이다. 수술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은 물론이고 거부감도 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의 몸속을 뚫고 들어가지 않는 비침습(non-invasive) 방식은 아직까지 해상도와 정확도가 매우 낮다. 두개골을 거치면서 신호가 약해지고 왜곡되기 때문이다. 비침습 방식의 해상도를 매우 높이거나, 아니면 거의 수술로 느껴지지 않는 수준의 이식(바늘을 찔러 넣어 아주 소형 칩을 뇌 속에 넣는다던지) 방법들이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여전히 근시일 내에는 해결되기 어려워 보이는 문제들이 많다. 하지만 만약 BCI가 계속 발전해서, 정말로 뇌의 패턴을 완벽하게 읽어낼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한다면, 어떻게 될까?




BCI를 활용한 의료 기술

현재 BCI 기술이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곳 중 하나가 재활의료 분야다. 신체가 불편하거나, 귀가 들리지 않거나, 앞을 볼 수 없는 장애인들에게 BCI를 통해서 새로운 ‘몸’을 주려는 연구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연구 중 하나가 원숭이의 뇌에 전극을 이식해 로봇 팔을 움직이게 한 실험이다. BCI 연구의 선구자인 Miguel Nicolelis 듀크대 교수가 주도했다. 

로봇 팔로 바나나를 받아먹는 원숭이


브라질인인 그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개막식에서 특별한 퍼포먼스를 기획하기도 했다. 하반신 마비 환자 Julian Pinto가 뇌에 연결된 기계 장치를 통해 킥오프를 하는 퍼포먼스였다. 비록 방송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않았지만, 전 세계의 신체 마비 환자들에게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 외에도 브라운대 신경과학과 존 도너휴 교수 연구팀은 전신 마비 환자 캐시 허친슨의 뇌에 센서를 이식해 로봇 팔을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허친슨 씨는 무려 5년에 걸친 훈련 끝에 로봇 팔로 커피를 마시는 것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네이처지에 소개되었다.

출처 : 조선일보


초기 단계의 기술은 그와 관련한 절박한 필요가 있을 때 이를 중심으로 발전한다. 처음 컴퓨터가 발명된 것은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서였다. 그 암호 하나를 해석하느냐 못하느냐에 수천수만 명의 목숨이 달려있었기 때문에 연구 또한 빠르게 진척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초기 BCI 기술은 의료 분야에서 먼저 발전할 것으로 예측된다. BCI가 보여주는 가능성은 장애인들에게는 꿈과 같은 일이다. 전신 마비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단순히 자리에서 일어서거나, 가족과 대화하는 것이 너무나 절박한 욕구다. 불확실성을 감내하고서라도 시도하려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절박한 고객들이 있으므로 투자도 많이 이루어진다. 자연스럽게 기술은 신체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주는 것을 목표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흐릿해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BCI의 성능이 입증되면, 단순히 신체 기능을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치료가 아니라, 정상인들에게도 주목을 받을 것이다. 치료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업그레이드’와 같다. 팔이 없는 사람이 로봇 팔로 걷고, 다리가 없는 사람이 로봇 휠체어를 자신의 몸처럼 쓸 수 있다면, 정상인들도 자신의 팔과 다리를 업그레이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로봇공학의 발전이 전제된다면, 인류는 나의 뇌와 연결된 제2의 몸을 통해서 육체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


사실 제 2의 몸은 꼭 내 몸처럼 생겨야 할 필요도 없다. BCI는 인터페이스, 즉 매개체이므로 어떤 기계와도 소통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 집에 있는 전등 스위치, 드론, 컴퓨터, 냉장고, 자동차 이 모든 것들이 내 뇌와 연결될 수 있고 나의 제2의 몸이 될 수 있다. 지금도 우리는 리모컨이나 키보드를 사용해서 기계들과 소통할 수 있지만, 뇌를 통해서 직접 제어가 가능하다면 이제 그 기계들은 단순히 외부의 도구가 아니라 나의 몸처럼 사용할 수 있다.


BCI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인간의 사이보그화를 가속시킨다. 보통 ‘사이보그’라는 말을 들으면, SF같이 허무맹랑한 얘기로 들리거나, 아니면 터미네이터가 떠오르면서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우리가 모두 몸을 개조한 비인간적 사이보그가 되는 걸까? 


하지만 사이보그는 이미 우리 곁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즉, BCI로 인한 사이보그화는 이전까지와 다른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이미 진행되고 있는 인간 능력 확장의 연장선이다.


우리는 이미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없으면 거의 내 장기 하나가 없어진 것과 다름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와이파이가 끊긴다는 건 영양 공급이 끊긴 것과 맞먹는 심각한 문제다. 


우리는 이런 기계를 이용해서 이전까지의 인류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능력을 쓴다. 손바닥 안에 수십 개의 책을 담아 다닐 수 있고, 50년 전의 슈퍼컴퓨터보다 빠르게 계산을 할 수 있으며,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영상통화를 할 수 있다. 1800년대에서 온 사람이 본다면 도저히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능력이다. 우리는 이미 기계와 융합하고 있고 자연스럽게 거기에 적응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순히 우리가 사이보그가 되는 것이 좋냐 나쁘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사이보그가 되어왔고, 계속 사이보그가 될 것이다. 인간이 구석기 인간에서, 신석기 인간이 되고, 철을 발명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사이보그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 우리가 기계와 의사소통하는 방법이 아직 후진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계를 쓸 때는 여전히 키보드나 터치스크린에 타이핑을 해야 한다. 그래서 생각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내 몸’과 확실히 다르게 느껴진다. 능력은 뛰어나지만, 아직 의사소통의 속도와 자유도에서는 내 팔다리를 따라올 수 없다.


하지만 BCI가 가능해진다면 우리는 생각의 속도로 기계를 조종할 수 있다. 즉, 기계를 내 몸처럼 조종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때가 되면 내 몸과 기계의 구분이 의미 없어질지도 모른다. 단지 뼈와 살로 만들어진 몸과 금속으로 만들어진 기계라는 차이는 있겠지만, 둘 다 내 의지에 따라서 명령을 수행하는 도구가 된다. 그러므로 BCI는 인간과 기계의 결합을 완성하는 핵심 열쇠다. 



뇌간 의사소통 (Brain to Brain Communication)

BCI가 가져올 또 다른 미래는 뇌간 의사소통(Brain to Brain communication)이다. BCI가 계속 발달하면 단순히 기계에 명령을 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 방식을 바꾼다. 이제 더는 언어가 아니라, 뇌와 뇌끼리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뇌간 의사소통은 여태까지의 인간 사회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다.


의사소통 기술과 인류

인류가 맨 처음 발명한 의사소통 기술은 음성 언어였다. 인간은 특정 소리를 대상과 연결해서 소통하는 방식을 발명했고, 이를 통해 이전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언어는 추상적인 것(신, 숫자, 감정 등)들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인간들은 대규모로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이 되었고 농사를 짓고 사회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3500년경에는 최초의 문자가 발명되었다. 음성 언어와 달리 문자는 오랫동안 유지되었고, 정확했다. 문자를 발명하고 나서부터 인류는 비로소 ‘문명(문명)’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천 년 뒤에 인쇄가 발명된다. 그전까지는 손으로 모든 걸 써서 기록했지만, 이제는 인쇄를 통해 문자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게 되었다. 인쇄 기술은 지식을 대중화했고, 과학을 발전시켰으며, 산업 혁명을 일으킨 일대 사건이었다.


그다음에는 알렉산더 벨이라는 사람이 혁명적인 발명을 해냈다. 거리에 제약을 받지 않고 음성 언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전화가 등장한 것이다. 전화를 통해 인류는 전 세계 사람들과 실시간 소통할 수 있었다.


인터넷이 등장했다. 인류는 이제 엄청난 속도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서로에게 전송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은 거대한 글로벌 정보 네트워크가 되었다. 누구든지 인터넷에 접속할 수만 있으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얼굴을 보고 얘기할 수도 있다. 인터넷이 바꾼 인류의 모습은 굳이 설명 안 해도 될 것이다. 우리가 이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렇듯 소통 기법은 인류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새로운 의사소통의 발명은 단순히 다른 수많은 발명 중의 하나가 아니었다.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이 생겨날 때마다 인류의 삶의 모습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BCI가 뇌간 의사소통을 현실화시킨다면 인류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



뇌간 의사소통이 다른 점

뇌간 의사소통은 두 가지 부분에서 기존의 소통 방식보다 뛰어나다.  바로 1) 시간당 정보 처리량(Bandwidth)과 2) 소통할 수 있는 정보의 종류다.


현재 우리는 정보를 전송할 때, 주로 타이핑을 쓴다. 카페에 글을 써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면 타이핑을 해야 하고, 유럽을 여행 중인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내려고 해도 타이핑을 해야 한다. 그런데 타이핑은 생각의 속도보다 훨씬 느리다. 타이핑이 아무리 빠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10분의 1밖에는 입력할 수 없다.

출처 : waitbutwhy

BCI가 완성되면, 우리는 생각의 속도로 정보를 입력할 수 있다. 그전까지는 빨대로 물을 빨아올렸다면, 이제는 펌프로 끌어올리는 것과 같다. 짧은 시간에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전송할 수 있다. 의사소통의 속도는 엄청난 수준으로 빨라진다. 생각의 속도로 글을 쓸 수 있다고 상상해보라.

출처 : waitbutwhy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대단한 것은 우리가 보낼 수 있는 정보의 해상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인류는 역사 이래로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를 이용해서 소통해왔다. 그걸 글로 써서 전달하거나, 인쇄해서 전달하거나, 아니면 목소리를 전기 신호로 바꿔서 전송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의 의사소통은 언어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언어의 해상도는 인식의 해상도보다 훨씬 낮다

언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의 10%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두 친구가 대화하는 걸 상상해보자. 한 친구가 이번에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갔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친구는 몰디브의 해변에서 석양을 본 순간이 강렬하게 인상에 남아서 친구한테 그 장면을 설명해주려고 한다. 하지만 '정말 멋있는 석양을 보았다'라는 단순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더라도, 내 머릿속에서는 그 석양의 색깔, 입체감, 이미지, 주변의 풍경, 그걸 보면서 내가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 등등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의 정보가 있다.


언어로는 그 모든 것을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 너무 정보가 많고, 그 정보를 날 것 그대로 표현해줄 수 있는 언어조차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 정보들을 ‘언어’라는 특정한 코드로 압축 변환한다. 압축 과정에서 용량은 훨씬 줄어들고 발성 기관이나 손을 이용해서 쉽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보는 손실된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몰디브에서 본 환상적인 석양'은 "어 그게 진짜 하늘이 빨갛고, 바다색 하고 어우러지면서, 와 정말 짱이더라니까."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생각을 언어로 소통한다는 것은 HD 영화를 흑백텔레비전으로 보는 것과 같다.


하지만 BCI는 우리가 인식하는 그대로를 상대방에게 전달해줄 수 있다. 인식은 어떤 정보를 받아들여 발화하는 뇌 속 신경 세포의 패턴이다. BCI가 발달한다면 우리는 말 그대로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을 날 것 그대로 전달한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언어의 한계를 벗어나 압축되지 않은 개념적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우리의 생각이 영화라면, 2D로 상영되던 '언어' 스크린에서 BCI라는 6D 영화관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제 인류는 '나는 슬프다'라거나 '이 음악 진짜 좋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슬픈 느낌', '음악을 듣고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전달한다.


이론적으로 완성된 BCI는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을 소통할 수 있다. 미래 인류는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게 될까?



이제껏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소통 방법들

1. 감각 의사소통(Sensory communication)

뇌가 신호를 받아들여 감각할 수 있는 기관은 몇 개 없다. 눈 두 개는 시각 신호를 보내고, 귀 두 개가 청각 신호를 보내고, 피부에는 촉각 신경들이 촉각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뇌에서는 이 신호를 해석해 '빨갛다', '시끄럽다', '부드럽다' 같은 감각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BCI가 이 뇌의 감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줄 수 있다면 우리의 감각은 더는 우리 몸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느끼는 감각을 나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이 모두 정보가 되어 지구 어디에든 나와 연결된 사람에게 전송된다.


아름다운 산의 풍경을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다면, 친구에게 내가 본 것을 전송한다. 친구가 전송된 정보를 실행시키면, 그 친구는 그것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면, 그 음악을 전송해준다. 친구의 집 스피커에서 그 음악이 흘러나온다.


물론 우리 뇌는 들어오는 정보 그대로를 수용하지 않는다. 우리 뇌는 눈을 통해 들어온 정보에 자신의 해석을 가미해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미지는 뇌 속에서 '뽀샵'되고, 음악은 뇌 속에서 '믹싱' 될 것이다. 우리는 같은 것을 보거나 듣더라도 전혀 다르게 인식한다. 그래서 BCI로 의사소통하더라도 날 것 그대로의 이미지나 음성이 전달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느껴지는 주관적 감각을 남에게 보낼 수 있다는 것 자체도 혁명적인 일이다.


2. 감정 의사소통

인간의 감정은 언어가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개념이다. 100명의 사람이 똑같이 '나는 슬프다'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그 100명 모두 각자의 독특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BCI는 이 감정을 그대로 전달한다.

사람들이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단계의 공감이 가능해진다. 다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완전하게 공감할 수 있다면, 인류는 서로를 더 돕고, 소중하게 여길 수도 있다. 단순히 빈곤에 시달리는 노인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보내는 괴로움과 외로움을 읽어낼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노인들을 돕지 않을까?


감정 의사소통은 엔터테인먼트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BCI를 착용하고 영화를 보면 영상에 상황에 맞게 BGM이 깔리는 것처럼, 주인공들이 느끼는 감정까지도 전달받을 수 있다. 공포 영화에서는 실제로 공포를 느끼고, 로맨스 영화에서는 실제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여담이지만, 미치오 카쿠는 훌륭한 배우의 정의가 바뀔 거라고 한다. 이제까지는 표정이나 대사로 사람들에게 상황과 감정을 전달했다면, 그때는 정말로 그 감정을 ‘느껴야’ 한다. 감정이 날 것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겉으로만 연기할 수 있고 감정을 제어할 줄 모르는 배우들이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지 않을까?


3. 운동 의사소통(Motor Communication)

뇌는 몸을 움직일 때 특정한 패턴을 나타낸다. 다른 말로 하면 ‘움직임 자체'를 뇌의 패턴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김연아 선수에게 "어떻게 하면 트리플 악셀을 그렇게 잘할 수 있죠?"라고 물어봤을 때, 김연아 선수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음…. 균형을 잘 잡는 게 중요한데요. 연습을 정말 많이 했죠."가 고작이다.


하지만 김연아 선수와 내가 BCI를 가지고 있다면, 김연아 선수는 자신이 트리플 악셀을 할 때를 떠올리면, 김연아 선수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수많은 동작을 뇌에서 명령을 내릴 것이고, 우리는 그 패턴을 읽어올 수 있다. 

출처 : 국제신문


그러므로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트리플 악셀'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진짜 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 모든 움직임을 머리로 이해하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나도 무슨 느낌일지 전혀 상상이 안 된다.


그러나 운동 신경은 우리 뇌의 가장 깊숙한 부분에 있다. 우리가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이며,  연구자들에게도 가장 밝혀지지 않은 신비의 영역이기도 하다. 뛰어가야 한다고 생각할 때 팔 근육과 다리 근육에 내리는 명령을 의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아마도 BCI가 전달하고 해석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정보가 아닐까 싶다.



언어 이후의 세계

여기까지의 얘기는 가상의 시나리오다. 우리는 미래를 말할 때 많은 부분을 단순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떤 기술이 발전해도 이전의 유산들은 여전히 남아서 인류에게 영향을 끼친다. 언어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BCI는 단번에 저 정도 수준이 될 수 없다. 점차 보낼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종류가 늘어날 것이다. 몇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정치적, 사회적 요소들도 고려하면, 제가 말한 것처럼 이상적인 미래는 아닐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의사소통의 혁신이 인류의 삶의 방식을 바꿔온 것을 생각한다면 뇌간 의사소통의 영향력만큼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언어를 발명해서 역사상 처음으로 추상적인 대상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종이 되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이 능력이 인류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몇 만 년 동안 의사소통 매체는 계속 발달했고, 그때마다 문명은 한 단계씩 뛰어올랐다. 하지만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한다는 것은 여전하다.


하지만 뇌간 의사소통은 언어와는 차원이 다르다. 언어가 비포장 산길이었다면 뇌간 의사소통은 8차선 고속도로다. BCI는 인류에게 '언어 이후의 세계'를 열어 줄 것이다.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은 호모 사피엔스들은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



Reference


Miguel Nicoleis: Brain-to-brain communication has arrived. How we did it

Tan Le: Reimaging how the human brain is observed


미치오 카쿠, <마음의 미래>

유발 노아 하라리, <호모 데우스>


howstuffworks, How brain computer interface work

Waitbutwhy, Neuralink and the Brain’s Magical Future 

Abdulkader et al. Brain computer interfacing: Applications and challenges


나무위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IT조선, 생각만으로 로봇 움직여… 인류 '뇌과학+IT' 새 길 연다

CNN, Mind-controlled exoskeleton kicks off World Cup

Stevenson & Kording, How advances in neural recording affect data analy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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