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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범근 Aug 22. 2017

미래의 조직 모델, 홀라크라시

홀라크라시 Holacracy

현대 기업의 조직 모델은 기계 시대에 생겼다. 20세기 초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이 전 세계 기업에 전파된 이래로, 경영자들은 기업을 하나의 거대한 기계로 인식했다. 기업이란 자본과 노동을 투입하면 산출물이 나오는 기계였다. 그리고 이 기계를 관리하는 것이 ‘경영’이었다. 


경영자들은 기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과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한 조직론을 개발했다. 소수가 의사결정을 내리고, 하위 조직은 그 명령을 일사불란하게 수행하는 수직적 위계질서가 도입되었다. 사장, 전무, 부장, 차장, 과장, 대리, 신입으로 이어지는 직급 체계는 바로 이런 조직 모델의 산물이다.


이런 조직은 목표(주로 효율성)를 설정하고, 모든 데이터를 끌어모아 최고의 계획을 짜고, 이 계획을 오차 없이 완벽하게 수행하는 식으로 일을 한다. 선행 계획, 중앙 통제, 이탈 방지에 기반한 이런 방식은 대부분의 기업이 채택하고 있는 프로세스다.


기계 시대는 지금과 비교해서 안정적이고 단순했다. 기계 시대의 기업들은 예측-계획-통제 프로세스를 도입해서 큰 성과를 냈다. 나라 전체의 철도 시스템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했으며, 개발도상국에서 생산된 원료를 수요가 있는 선진국에 적시에 전달했고, 불량률이 0.0001%인 전자기기들을 생산해냈다.



예측-계획-통제와 수직적 조직의 실패

하지만 기계 시대는 점차 저물고 있다. 세상은 정보 시대로 바뀌는 중이다. 정보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초연결성’과 ‘불확실성’이다.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고 빠르게 변화하면서, 기업들은 이전보다 빠르고 유연한 의사결정을 해야만 한다. 


수직적 조직 모델은 자원을 활용하고 운영하는 데는 뛰어나지만, 새로운 기회를 탐색하고 변화하는 데는 먹통이다. 뭐 하나 바꿔보려고 해도, 상사를 설득하고, 그 위의 상사를 설득하고, 마침내 사장까지 설득해야 바뀔 수 있는 구조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걸 알고 열심히 외치지만, 조직은 여전히 변화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피라미드식 조직 모델은 개인을 조직의 부품으로 다룸으로써 아래로 내려갈수록 동기부여가 사라지는 문제가 있다. 암묵적인 회사 내 정치와 알력 등이 생겨나서 많은 사람의 정신 건강에 타격을 입힌다.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싹을 틔우기도 힘들다.


‘홀라크라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타난 대안적 조직 모델이다. 


출처 : 그림왕 양치기



개인이 아닌 시스템이 권력을 가진다

홀라크라시라는 단어를 웹에 검색해보면, ‘보스를 없애라’, ‘조직 파괴’ 같은 단어들이 튀어나온다. 홀라크라시의 주장이 ‘경직된 위계질서 체계를 없애고 수평적인 조직으로 가자!’라는 식으로 설명되어있는 기사들이 많다. 하지만 실제 홀라크라시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기업이 커질수록 본연의 업무보다 관리 업무가 지나치게 많아지고 비효율이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또 다들 자신의 상사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그렇다면 위계질서 체계를 없애고 상사가 사라진다면 좋을까? 대부분 ‘노’라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직원이 보기에는 꼴 보기 싫더라도 상사, 즉 관리자라는 존재가 하는 일이 분명히 있게 때문이다. 상사는 역할을 배정하고, 의사결정을 내린 뒤에 자신이 책임을 진다. 


이런 체계가 없다면, 조직이 무질서해지고 산으로 간다. 겉으로는 위계질서가 없어지더라도 자연스럽게 암묵적인 위계질서가 생성된다. 그러므로 욕은 하더라도 상사는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다. 무작정 위계질서를 없애는 것은 답도 아니고, 홀라크라시가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홀라크라시를 얘기하면 또 떠오를 수 있는 오해가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이다. 한두 사람이 결정을 내리는 것은 옳지 않으니, ‘민주적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듣고 합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자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다.


아, 이건 그야말로 최악이다. 실제로 기업에서 인턴을 해보면서 느꼈던 건데, 누군가 의사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체계가 없으면 온종일 회의만 하고 결과는 산으로 간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합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조직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구조를 없애는 것도 아니고, 합의를 통해 결정하는 것도 아니라면 홀라크라시가 주장하는 바는 뭘까?



기업의 권력은 거버넌스로부터 나온다.

홀라크라시에서 권력이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에서 나온다. 홀라크라시를 도입하는 기업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CEO가 공식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포기하는 것이다. 


출처 : 그림왕 양치기


단순히 CEO가 중간관리자들을 믿고 더 많은 권한을 분배하는 것과 다르다. 권력의 원천 자체가 바뀐다. CEO는 자신이 가진 통제력을 내려놓고, 시스템에 권한을 완전히 이양한다. 시스템에는 각 직원이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이 분명하게 명시되어있다. 직원들은 시스템이 정한 바에 따라 자신의 일을 자신이 결정하고 처리한다.


조직의 권한을 분배하는 이 시스템을 거버넌스(Governance)라고 한다. 거버넌스는 조직의 권력과 권한을 배정하는 일이다. 간단히 말해, 어떻게(How) 일할 지를 결정한다. 다음은 거버넌스와 관련된 질문들이다.


우리가 해야 할 업무는 무엇인가? 그리고 각각의 업무를 나눌 것인가? 누가 그 업무를 맡을 것인가?
내가 다른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이 나에게 기대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제한된 상황에서 누가 결정을 내릴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내가 회의를 열지 않고도 처리할 수 있는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다른 사람과 협업을 할 때 어떤 규칙이 있는가?
새로운 방식이나 업무가 필요할 때 어떻게 조직에 반영할 것인가?


거버넌스의 반대편에는 오퍼레이션(Operation)이 있다. 오퍼레이션은 실제적인 업무 수행이다. 오퍼레이션은 결정을 내리고, 자원을 할당하고, 행동을 취하고, 결과를 확인한다. 정치 시스템에 비유해본다면 거버넌스는 입법부가 하는 일이고, 오퍼레이션은 행정부가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거버넌스의 구조는 법체계와도 비슷하다. 현대 법 체계에서는 헌법이 핵심적인 사항을 정의하고 하위법으로 갈수록 구체적인 내용을 다룬다. 


홀라크라시 모델에서는 ‘홀라크라시 헌장’이 있다. 이 헌장이 홀라크라시의 기본 틀을 구성하는 ‘헌법’이다. 이 헌장은 홀라크라시를 도입하는 모든 조직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툴이며, 조직의 가장 높은 곳에 군림한다. 그 외에 하위 거버넌스가 있다. 하위 거버넌스는 더 구체적이다. 업무에 대한 명확한 역할과 책임을 규정한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바뀐다.



유연하게 변화하는 거버넌스

거버넌스를 지속적으로 수정, 개선하는 것이 홀라크라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사실 상황이 바뀌면, 일하는 방식도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기존의 조직 모델에서는 상황에 따라 거버넌스가 변하지 않았다. 조직은 새로운 상황에 발 빠르게 적응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겉으로 드러나는 조직 구조 이외에 암묵적인 구조가 생겨난다. 겉으로는 이렇게 처리해야 하지만, 실제로 업무를 하는 관행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암묵적 구조는 비효율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발생시킨다.


홀라크라시 모델에서는 ‘거버넌스 회의’를 통해서 거버넌스를 조정한다. 어떤 식으로 조정이 이루어지는지 실제 예를 들어보자. 나는 고객들에게 최신 정보를 담은 이메일을 보내는 역할을 맡은 마케팅 담당 직원이다. 그런데 웹 사이트에 정보를 업데이트하는 운영 담당자는 이 최신 정보를 1달에 1번씩만 업데이트한다. 나는 이메일과 웹사이트가 일치하지 않으면 고객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운영 담당자가 업데이트를 더 빠르게 해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담당자는 계속해서 한 달에 한 번만 웹사이트를 업데이트하고 있었고, 바꿀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 때문에 나와 운영 담당자가 ‘당신이 해야 한다. 왜 해야 한다’ 옥신각신하면 불필요한 자원과 감정만 소모된다. 


홀라크라시 모델에서는 이때 거버넌스 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한다. 상사가 개인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회의를 통해 이 업무는 필요한가? 누구에게 배정해야 하는가를 공식적으로 논의한다. 최대한 구체적으로 결정한 뒤에, 그다음부터는 결정된 바대로 각자 업무를 처리한다. 


인간관계나 위계질서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 없다. 그리고 결정된 거버넌스는 누구나 볼 수 있게 투명하게 공개된다. 일을 하면서 필요한 시스템을 명문화해서 암묵적인 구조가 생기는 일을 방지한다. 이런 방법을 통해 홀라크라시는 상황에 맞게 적응하고 지속적으로 진화한다.



부품에서 주체적 개인으로, 보스에서 링크로

거버넌스는 직원 모두에게 각자의 권한, 책임, 영역을 부여한다. 어떤 사람도 더 이상 CEO나, 부장, 팀장에게 결재를 맡을 필요가 없다. 물론 직원들은 여러 가지 의사결정에 대해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하고, 결정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한다. 하지만 최종 결정 권한은 나에게 있다. 


이렇게 개인들이 독자적 권한을 가짐으로써 역동적이고 대응이 빠른 조직이 된다는 것이 홀라크라시의 주장이다. 홀라크라시를 도입한 기업의 한 직원은 “직원들 한 명 한 명이 기업가(entrepreneur)가 된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권한이 주어지면 주인의식과 동기부여가 따라온다.


홀라크라시 모델에도 역할을 적절한 사람에게 배정하고 전체적인 일을 조율하는 사람은 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예전의 관리자, 보스와 다르다. 우선순위를 설정할 수 있지만, 직원이 무엇을 할지 결정하지 않는다. 결정은 여전히 직원이 한다. 이 사람들의 주요 업무는 각 역할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를 홀라크라시에서는 ‘링크’라고 부른다. 링크는 외부의 요청사항을 적합한 사람에게 전달하고, 팀 내부의 요구사항을 바깥에 전달한다. 링크는 더 이상 모든 책임을 지는 보스가 아니라 다른 책임과 업무를 맡은 하나의 ‘역할’ 일뿐이다.



사람의 몸을 닮은 조직

홀라크라시(Holacracy)는 홀론(Holon)과 홀라키(Holarchy)라는 말에서 나왔다. 홀론은 ‘더 큰 전체의 부분인 전체’를, 홀라키는 ‘홀론들 간의 연결’을 뜻한다. 홀론의 그 자체로 자립적이고 완전하다. 동시에 더 큰 전체의 부분이다. 자립성을 가진 존재지만 다른 홀론과 연결해 스스로 조직을 구성(self-organise)한다.


우리 몸이 대표적인 홀라키다. 각 기능을 하는 독립적인 세포들이 있고, 그 세포들이 모여 더 큰 기능을 하는 기관으로, 그 기관들이 모여 생명체를 이루기 때문이다. 


홀라크라시는 우리 몸과 같은 조직을 지향한다. 하나의 ‘역할’이 세포가 된다. 직원이 아니라 ‘역할’이 세포인 것을 기억하자. 역할은 그 자체로써 하나의 자립적인 조직이다. 이 역할들이 모인 것을 써클(Circle)이라고 한다. 서클들이 모여서 더 큰 서클을 이룬다.


홀라크라시는 자율적인 존재들이 모여서 이루는 유기적인 생명체를 지향하고 있다. 기존의 모델은 조직을 거대한 기계로 상정하고, 직원 한 명 한 명이 정확하게 부품의 역할을 수행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기존의 조직 모델과 홀라크라시는 기계와 사람만큼 다른 조직이다. 단순히 수평적이다, 계층적이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뭔가 심오한 철학이 바탕에 깔려있다.



사람이 아닌 역할을 조직화한다

홀라크라시의 기본 단위는 사람이 아닌 ‘역할(role)’이다. 역할과 개인을 분리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현대 조직 문화에서는 역할과 사람의 구분이 모호하다. 회사 내에서 생기는 갈등은 대부분 서로의 역할이 충돌하면서 빚어진다. 역할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조정해야 할 대상일 뿐이지만, 사람과 역할이 분리되어있지 않으면 역할의 갈등이 사람의 갈등으로 변질된다. 


그래서 홀라크라시는 역할과 책임(Role and Responsibility, 전문용어로 R&R이라고 부른다)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업무와 사람을 분리시킨다. 만약 거버넌스 회의에서 새로운 업무를 배정하게 되면, ‘김철수’나 ‘이영희’가 아닌 ‘재무 담당’, ‘교육 담당’, ‘설계 담당’에 업무가 부여된다. 역할을 중심으로 관계가 설정되어서 ‘롤레이션십(Role-ationship)’이라고 부른다.


모든 역할은 목적, 영역, 책임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구성이다.

역할 : 마케팅
• 목적 : 우리 회사 및 제품에 대해 많이 떠들어대기
• 영역 : 회사의 메일링 리스트와 소셜 미디어 계정,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는 콘텐츠
• 책임 : '마케팅 전략' 역할이 규정한 목표 고객들과 관계 형성, 인터넷/소셜 미디어에서 고객들의 관심 끌기, 회사로 들어오는 강연, 취재 요청 등을 선별해서 결정하기.


사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회사라는 글에서는 사람에 의존하는 회사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1) 조직의 R&R이 불명확하다.
2) 업무가 조직이 아니라 사람들 따라간다
3) 사내 인프라가 열악하다
4) 사람에게 책임과 권한을 준다
5) 사람만 쪼면 된다고 생각한다
6) R&R이 불명확해서 조직 간 협조가 안된다
7) 모든 게 사람의 재량이고 사람 책임이다.
8) 입퇴사가 잦다.


홀라크라시가 지향하는 역할 중심 조직은 정확히 반대라고 보면 되겠다.



써클의 구조

역할이 모이면 써클이 된다. 써클은 기존의 부서나 팀과는 다르다. 일단 써클은 사람의 집합이 아닌 역할의 집합을 의미한다. 그리고 써클은 자신의 거버넌스를 스스로 결정한다. 써클 단위로 거버넌스 회의를 열기 때문이다. 


써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할’이다. ‘역할’이 모여서 또 하나의 ‘역할’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써클도 목표, 영역, 책임이 있고, 그에 따른 자율성을 가진다. 


상위 써클과 하위 써클 사이에는 앞서 말했듯이 ‘링크’가 있다. 링크의 종류는 두 가지가 있다. ‘리드 링크’는 상위 서클에서 임명하며 상위 서클을 대변한다. ‘대표 링크’는 하위 서클에서 임명하고 하위 서클의 니즈를 대변한다. 써클을 세포라고 하면 링크는 세포막인 셈이다. 링크는 내부와 외부가 쉽게 소통할 수 있도록 말 그대로 연결하는 존재다. 


이 외에도 서클에는 ‘퍼실리테이터’와 ‘서기’가 있다. 퍼실리테이터와 서기는 써클 안에서 이루어지는 회의 프로세스의 진행과 기록을 맡는다. 이 두 역할은 써클 내부에서 선출된다. 이 외에 서클의 역할은 리드 링크가 배정한다.


서클의 회의 또한 두 종류가 있다. 앞서 설명했던 ‘거버넌스 회의’는 서클의 시스템을 결정한다. ‘오퍼레이션 회의(또는 전술 회의)’는 서클이 해야 할 일에 관해 논의한다. 홀라크라시에서는 회의 프로세스도 아주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자세한 규칙까지 논의하면 너무 길어지므로 생략한다. 더 알고 싶으면 홀라크라시원을 들어가 보기 바란다.



홀라크라시는 운영체제다.

홀라크라시의 저자인 브라이언 로버트슨은 기업이 홀라크라시로 전환하는 것을 도와주는 홀라크라시원이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브라이언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이것이라고 한다. 


“부분적으로 홀라크라시를 도입해볼 수는 없나요?” 


하지만 브라이언은 그런 질문을 들으면 일단 ‘No’라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홀라크라시는 단순히 기존 조직에 갖다 붙이는 기법이 아니라, 조직의 정의 자체를 바꾸는 패러다임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기존 조직의 일부를 홀라크라시로 바꾸는 것은 효과를 보기 어렵다. 브라이언은 기업을 컴퓨터로 보았을 때, 홀라크라시는 ‘운영체제’라고 표현한다. 운영체제 위에 깔리는 프로그램이라면 깔았다 지웠다 할 수 있겠지만, 이미 윈도가 깔려있는데, 맥 OS를 까는 건 소용이 없다.



조직 문화는 한순간에 바뀌지 않는다

<홀라크라시>를 읽으면서 크게 공감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의심도 하면서 읽었다. 정말로 이게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정말 좋겠지만, 왠지 말처럼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홀라크라시는 굉장히 급진적인 변화다. 저자의 말처럼 조직 모델이란 컴퓨터의 운영체제처럼 그 위에서 돌아가는 많은 것들을 결정하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윈도만 쓰다가 맥 OS로 바꾸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한두 명도 아니고 조직 전체가 말이다.


홀라크라시는 미국의 유명한 전자상거래 기업 자포스가 도입하면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자포스의 CEO 토니 셰이는 2015년 홀라크라시 도입을 선언하면서 변화가 싫은 사람은 퇴직금을 줄 테니 나가라고 말했다. 3년 정도가 지난 지금 직원의 약 15%가 홀라크라시에 적응하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다고 한다. 그 외 홀라크라시를 도입했다가 포기하는 조직도 전체의 20% 정도에 달한다고 한다.


이를 지적하면서 홀라크라시를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권력이 없는 조직에서는 내가 권력을 쥘 기회도 없으니 사람들의 의욕을 상실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직원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아직 비즈니스 모델이 확실하지 않거나,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내야 하는 조직의 경우에는 프로세스를 확립하고 R&R을 명확하게 만드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조직에서는 프로세스보다는 행동이 더 우선이다.


다 일리가 있다. 홀라크라시는 ‘정답’이 아니다. 조직 모델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기업이나 개인이 홀라크라시를 선호할 수는 없다. 어떤 기업은 여전히 영웅적 리더를 중심으로 한 수직적 위계질서가 필요할 수도 있다. 또 개인에 따라서 위계질서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조직이 돌아가는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더욱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홀라크라시를 도입하면서 일어나는 갈등들은 일시적인 것일 수도 있다. 홀라크라시를 읽으면서 군대 생각이 많이 났다. 내가 입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군대 내 부조리로 사망한 ‘윤 일병 사건’과 총기를 난사한 ‘임 병장 사건’이 터졌다. 이를 계기로 군대 내 부조리가 이슈가 되면서 (최근에도 공관병 사건 등 이슈는 끊이지 않고 있지만) 참모총장까지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육군 지휘부는 (과연 군대답게) 부조리 척결을 목표로 대대적인 ‘청정병영 캠페인’을 실시한다. 청정병영 캠페인의 주요 내용은 ‘욕설이나 폭력을 행사하면 병사, 간부 상관없이 강력 징계’, ‘병사 내 계급 체계 폐지’, ‘직급을 막론한 경어 사용’ 등이었다. 


그러자 여러 사람들에게서 격렬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게 군대냐’, ‘군대가 거꾸로 돌아간다’ ‘어떻게 이등병이 상병한테 말을 놓을 수가 있냐’ 등등이었고, 간부들 중에서도 공개적으로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위계질서에 적응해 편하게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하층인 이등병, 일병도 언젠가는 나도 저 권력을 누릴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군생활을 버티게 된다. 청정병영 캠페인은 계속되었지만 음지에서는 ‘짬질’이 이루어졌다.


‘청정병영 캠페인’을 실시한 지 약 1년 반이 지났다. 부대 내 격렬한 반대 반응을 일으켰던 사람들이 전역을 하거나 징계를 받고 전출을 갔다. 그러자 그전까지 있었던 악습과 부조리가 정말 현저하게 줄었다. 이등병이 병장과 편하게 어깨동무하고 밥 먹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워졌다. 내가 이등병 때 선임이 봤으면 다들 혀를 찼을 텐데 말이다. 그때 깨달았다. 조직 문화라는 건 결국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고. 


결국 조직 변화의 성공과 실패는 조직 구성원들의 ‘생각’이 얼마나 바뀌느냐가 핵심이다. 문제는 사람의 생각이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기업은 더 열악한 상황인지 모른다. 군대는 2년마다 사람이 싹 바뀌지만, 기업은 사람이 훨씬 오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년, 20년씩 기존의 조직 구조에 적응해온 사람들에게는 홀라크라시는 ‘청정병영 캠페인’만큼이나 끔찍할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홀라크라시’는 여전히 지켜봐야 할 단계다. 조직의 변화는 생각보다 느리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봐야 한다. 그래도 최근 많은 사람들이 현재 조직 모델의 폐해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조직 모델을 개발하려는 시도는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아직까지 ‘마이너’에 불과한 홀라크라시가 과연 다음 시대의 주류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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