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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범근 Jan 30. 2017

나는 왜 이 글을 쓰는가?

화란견문록 #0

나는 지금 네덜란드의 Maastricht라는 도시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고 있다. 8월 말에 이곳에 도착해서 어느새 2달째 살고 있다. 유럽에 온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2달 간 네덜란드에서 학생으로 살면서, 외국에서 살아본다는 것은 여행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라는 걸 깨달았다. 모든 것이 다르고, 하나하나 적응해가기 바쁘지만, 여행자가 아니라 주민으로 살아가면서 외국인들의 생각과 라이프스타일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문득 내가 이 경험들을 흘려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 있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는데도, 그냥 보고 들은 것들을 ‘일상’처럼 그냥 생각 저편으로 밀어두는 나 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이건 분명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경험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쓴 노트를 다시 봤다. 첫 번째 목표에 ‘나의 관점과 세계를 넓혀줄 수 있는 다이나믹한 경험과 다양한 사람.’이라고 적어놨었다. 나는 나의 세계를 넓히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히 여기에 살다 가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후쿠하라 마사히로가 쓴 <생각 수업>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

지식과 경험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식과 경험을 쌓으면서 그것들을 바탕으로 사고하는 작업을 끊임없이 반복할 때 우리의 ‘기본기’가 형성된다.

즉, 지식과 경험은 생각의 재료가 되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사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다른 책 <책은 도끼다>를 보자. 내가 좋아하는 책 중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 박웅현은 ‘시청’과 ‘견문’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한다. 


시이불견 청이불문視而不見 聽而不聞.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시청은 흘려 보고 듣는 것이고 견문은 깊이 보고 듣는 거죠. 비발디의 를 들으면서 그저 지겹다고 하는 것은 시청을 하는 것이고요, 사계의 한 대목에서 소름이 돋는 건 견문이 된 거죠. 앞에서 ‘얼른 사진 찍고 가자’는 시청이 된 거고요, 휘슬러에 얼어붙은 건 견문을 한 거죠. 어떻게 하면 흘려보지 않고 제대로 볼 수 있는가가 저에게는 풍요로운 삶이냐 아니냐를 나누는 겁니다.


한 마디로, 이곳에 온 지 2달이 넘은 이 시점에서, 나는 이곳에서 ‘시청’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시청’을 ‘견문’으로 바꿀 수 있을까? 

나의 답은 글을 쓰는 것이다. 일상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사유하는 글 말이다.


나는 평소에 여행기 같은 걸 즐겨 읽지 않는 편이다. 그저 감성적인 여행 욕구나 로맨티시즘을 자극하려는 의도가 보이는 책들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이 하나 있다. 한비야의 책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이다. 한비야의 편안한 글솜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비야의 글은 언제나 ‘견문’이 담겨있기 때문에 좋아한다. 사소한 일상도 깊은 사유로 엮어낸다.


그래서 나도 이 글에 ‘화란견문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별로 어감이 별로 좋진 않지만) 

‘견문’을 담은 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글에서는 단순히 이곳에서 내가 뭘 봤고, 뭘 했고를 기록하지 않을 것이다. (이곳의 생활이 어떤지에 대한 글은 인터넷에 ‘네덜란드 교환학생 수기’를 검색해보면 아주 많다.) 

꾸준히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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