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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범근 Nov 03. 2018

초등학교 시절의 일기와 무의식

매일 글쓰기 3일 차

얼마 전 초등학교 시절 일기를 보았다. 집에 갔는데 엄마가 이렇게 재밌는 게 있다며 공책 열댓 권짜리 묶음을 꺼내 주었다. 문장도 제대로 못쓰는 1학년 때부터, 제법 그럴듯하게 일기를 쓰기 시작한 6학년 때까지 일기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중 대부분에는 엄마나 학교 선생님이 댓글을 달아주었다. “00 이가 밉다”, “나는 천재다” 등등 일기에는 인정 욕구, 질투, 더 갖고 싶은 욕심, 귀찮음, 사람에 대한 솔직한 선호 등등 정말 유치한 생각들이 들어있었다. 어린 시절 일기를 보면서 웃기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내 무의식 속에는 이런 감정들이 아직도 그대로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한 초등학생 송범근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다. 단순히 커가면서 발달한 합리성과 도덕에 가려져 있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뇌에서 나온다. 예전에 뇌과학 책을 읽었을 때 뇌는 기존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이전의 뇌 구조를 그대로 두고, 그 위에 더 발달된 뇌를 덮어 씌우는 방식으로 발달했다고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인간의 파충류 시절의 뇌와, 포유류 시절의 뇌, 그리고 인간의 뇌를 다 같이 가지고 있다. 인간의 뇌는 전두엽에 해당한다. 전두엽은 더 깊은 뇌에서 나오는 욕구와 감정을 이성적으로 설명하는 역할이다. 전두엽의 개입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인간은 감정과 욕구에 의해서 휘둘리고 아프고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이 일관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초등학생 범근이의 투정이 뇌 깊은 곳에 있는 나의 무의식을 건드린다고 느꼈다. 어쩌면 내 안에 내가 유치하다고 무시하고 있는 감정들이, 사실은 나의 많은 행동을 결정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나는 여전히 초등학생 범근이처럼 인정받고 싶어 하고, 주목받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을 질투한다. 다만 합리적인 전두엽으로 잘 가려놓거나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에 명상을 열심히 한다. 명상을 하다 보면 가끔 전혀 의식하고 있지 않던 나의 감정을 알아차릴 때가 있다. 내가 내 뇌의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똑바로 볼 수 있다면, 오히려 그것들로부터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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