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백

매일 글쓰기 25일 차

by 송범근

70대 할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해보면, 살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다름 아닌 나였습니다. 남들보다 부족한 능력과 떨어지는 외모, 그리고 끌려다니기만 했던 인간관계를 지독히도 꾸짖었죠. 알고 있습니다. 한 번쯤 좋은 소리를 해줬어야 한다는 걸.
그런데 그러질 못했어요. 아니, 그러지 않았어요. 제게 그건, 부족한 나에 대한 자기 합리화일 뿐이었으니까.”


“아닙니다. 할아버지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그건 오히려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독일의 유명 심리학자 안드레아스 크누프는 20년간 자기 비난의 늪에 빠진 사람들을 치료해왔다.


“ 사실 심각한 자기 비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굉장히 ‘순수한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들이 그토록 자신을 몰아붙이는 이유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이기 때문이죠. 문제는 바로 그 순수한 열망이 한 가지 치명적인 착각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나의 부족함’이다라는 것이죠. 나만 더 잘했다면, 내가 더 열심히 했다면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이 착각은 터무니없습니다. 사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은 수없이 많은 예측 불가능한 요소들이 뒤엉켜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불가능한 것을 예측하지 못한 것조차 자신의 부족으로 여기는 우리는 스스로를 ‘단점 투성이 인간’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는 이 안타까운 착각을 뒤바꾸기 위해 20년간 다양한 치료와 상담을 해왔는데, 그 내용을 자신의 책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나에게>에 담았다.


“사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너무나 좋은 태도입니다. 실제로 우린 그것을 통해 발전했고, 나아가 왔으니까요. 그렇기에 이제 그만 그러한 노력을 멈추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이것 한 가지는 생각해줬으면 합니다. 세상엔 당신이 완벽해지더라도 ‘일어날 수밖에 없는’ 문제가 너무나 많다는 것. 그렇기에 당신이 채워내지 못한 아니 채워낼 수 없는 그 빈칸들은 여백이지 공백이 아니라는 것. 더 이상 채우지 않아도 되는 공백 때문에 자신을 너무 괴롭히지는 말아주세요. 세상엔 채워지지 않은 빈칸이 있어도 아름다운 그림과 인생이 너무나 많습니다. ‘나의 여백’을 인정할 줄 아는 삶. 바로 그게 지금껏 자신을 너무나 괴롭혀 온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입니다.”


- <열정에 기름붓기>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결핍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온 것보다는 해야 할 것에 집중하고, 잘하는 것보다는 부족한 점을 크게 본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채찍질을 많이 하고, 그것을 동력으로 삼아 앞으로 달린다. 덕분에 능력이 뛰어나다. 현대 사회는 그런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준다. 끊임없이 경쟁하고 노력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그래야 발전하니까. 그래야 자신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이런 태도가 지나쳐서 ‘자기 비난’의 영역으로 가면 큰 괴로움이 된다. 우리는 항상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의 고민은 대부분 언제나 중간 어디쯤을 찾는 일이다. 어느 한쪽만이 옳은 경우가 없다. 나의 부족함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문제도 결국은 중간 어디쯤을 찾아야 한다. 발전하려는 동기를 잃지 않으면서, 삶의 여백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그런 영역 말이다. 더 나은 그림을 추구하는 동시에 자신이 여태까지 그려온 그림을 감상할 줄 아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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