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범이 May 05. 2020

어린이날 특집, 내 동생에게

탑골 감성, 1988년 어느 날

서울 어린이 대공원에서 낙타인가 말인가 뭔지모를 생명체를 바라보며 사색에 빠진 언니와 동생



그때 너, 참 예뻤어.


겁이 많은 너는 늘 신중했어.


하지만 내 등 뒤라면 두려울 것이 없었지.


내 뒤에서 '빼꼼'하고 고개를 내밀어 바라보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지.


반짝거리는 눈동자만큼 네 미소도 반짝였어.


너는 오전 수업을 벌써 마쳤는데도 집으로 가지 않고 오후 수업이 한창인 나를 기다리다 수줍게 뒤에서 나를 르곤 했어.


"언니이~ 집에 가자아."


가 알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네가 참 예뻤어.


문 틈 사이에 손이 끼어 손톱이 시커멓게 되어도.

놀이터에서 야구방망이에 엉덩이가 걷어 차여도.

엉엉 울다 바보같이 헤 거리며 내 실수를 용서해주는 너였어.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 선택과 책임이라지.


너와 나는 우리 각자의 인생을 위해 고군분투했고 너는 너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떠났어.


한때는 나와 너무 달라져버린 네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어.


너무 멀리 가고 있는 너를 붙잡고 싶었는데 나는 내 미션을 수행하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고 막상 용기도 나질 않았어.


없는 아버지의 그늘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에 나는 도망가고 싶기도 했어. 네가 밉기도 했고. 꿈보다는 취직이 필요했던 나는 버텼어. 그덕에 지금의 내가 되었 말이야.


네가 한참 힘들어할 때, 약이 없으면 버티기 힘들어할 때,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할 때, 매일 울기만 할 때,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해. 도망치려 했던 내가 한심했고, 너를 혼자 둔 나를 후회해.


하지만 마침내 좌절 끝에 기꺼이 일어나 주변의 시선 따위 씹던 껌 던져버리는 것처럼 쿨하게 넘기는, 난 그런 네 소신을 기억해.


우리 삶을 지탱하는 것들은 의외로 나약한 것들 뿐이더라.


그것이 너와 내가 얽힌 추억이든, 30여 년간 매일 무수히 쌓 개인의 내면이든, 같은 것 같지만 늘 다른 경험이든, 그것들이 모여 결국 강한 우리 각자를 만드는 것 같아. 엄마의 사랑 그건 비교할 수 없는 초강력 치트키이니 논외로 하자.


그런 네가 아니 우리가 서로 가정을 이루고 생명을 품고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나이가 되었어.


으로의 너 그를, 그리고 태어날 아이를 축복해.


그때의 수줍고 예뻤던 도 지금의 새로운 너도 모두 내 소중한 동생, 있는 그대로의 너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