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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이 Nov 22. 2020

실종 3일째. 준비를 하다

담담하게. 안녕.

늘 가던 길이었다.


인적이 드문 곳, 자연이 있는 곳,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로지 우리들만 뛰어놀 수 있는 곳.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은 제 몸의 일부를 마른땅에게 내어주고 개울가의 물고기 떼는 얼어붙기 전 어느 때보다 맑은 물속을 끝없이 유영하는 11월의 어느 날.


마을 뒤 산자락 공터에 어김없이 나는 녀석들과 함께 였다.


공터 가기 전, 산 길

나의 동네 뒷 산은 아무도 살지 않고 정식 등산로도 아닌 맹지 임야인데 내가 이사 오기도 전인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 땅 주인이 5백여 미터 정도의 길을 내놓았다. 그 길을 따라 산 골짝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다 보면 웬만한 초등학교 운동장 크기는 될 정도의 넓은 공터가 나온다.


우린 그곳이 좋았다. 목줄을 하고 다니다 한 2~3분 가량 잠깐 풀고 사정없이 달리기를 한다. 녀석들은 목줄이 없이 아무도 다니지 않는 그 땅과 산을 정신없이 내달렸다. 낙엽이 범벅이 되어 뒹굴었다.


3분 후 우리가 이름을 부르거나 휘파람을 불면 녀석들이 다시 되돌아오고, 그럼 우린 주머니에 든 간식을 나눠주곤 했다. 깜빡하고 간식을 잊었을 땐 꼭 집으로 돌아가서 아주 큰 보상을 해주곤 했다.


우리도 함께 녀석들과 그 큰 땅 위를 달렸다.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갔다. 그 땅과 그 산은 온종일, 아무도 다니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마냥 신 나와 그는 바보같이 잊고 있었다.


진돗개 피가 섞인 이 녀석들에겐 사냥 본능이 잠재하고 있다는 것을.


갑자기 흰둥이가 어디론가 쏜살같이 뛰기 시작했고 그 뒤를 이어 누렁이가 쫒았다. 아마도 산에 있는 산짐승을 본 게 틀림이 없었다. 고라니였을 터였다.


이 마을엔 고라니가 자주 출몰하기에 집에서도 늘 재빠른 흰둥이는 예의 주시했는데. 설마, 아무리 산이라도 사람 인기척이 있는데 고라니가 나타날 줄은 몰랐다.


이렇게 오만할 수가. 인간 따위가 자연을 어떻게 예측한단 말인가.


이미 시야에서 벗어난 녀석들의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휘파람 소리를 내, 박수를 쳐봐도,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며 엽을 밟고 달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등신같이 일을 저질러 놓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시골 마을에서, 그것도 산에서 잃어버릴 경우에 녀석들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인구수도 적어 제보를 하거나 신고하는 사람도 적고, 한적한 시골 마을이라 길에 돌아니는 개 발정이 나서 집을 나왔을 테니 알아서 제 집으로 갈 것이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비난할 수는 없다. 이런 곳에선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대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의 보지도 않는 마을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그리고 마을에서 우리 개들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며칠 전, 그와 함께 뒷 산을 걷는 녀석들의 뒷모습을 찍어두길 잘한 것 같다. 나는 이 사진이 우리들의 산책을 담은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몇 번 겪은 일이라고 무뎌질 줄 알았건만. 그때마다 이별은 어떤 방식이든 절대 쉽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이미 오래전 경험한 바가 있다.


한 녀석을 찾았고 한 녀석을 끝내 찾지 못했다. 하지만 찾았다는 기쁨보다 잃었다는 상실감이 더욱 컸다. 매일 울고 매일 술을 마시고 매일 원망하고 매일 누군가를 상상하며 분노했다. 한 사람의 아내이자 딸이자 한 사회의 구성원인 내가 일상으로 헤어 나오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을 지불해야 했다.


그래서 이번 혹여, 녀석들이 둘 다 돌아오거나, 한 녀석만 돌아오거나,,, 둘 다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나는 기꺼이

모든 맘을 다해 환영해주며

내가 마주한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내 삶을 위해 녀석들을 아름답게 추억하기 위한

연습을 하기로 했다.


반갑게. 또는 담담하게. 안녕이라 말할 수 있게.







내 필명 '범이'는 흰둥이 '범수'와 누렁이 '쁜이'의 이름을 한 자씩 따 만든 것이다.


꼭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실종 3일째인 오늘 2020년 11월 22일 일요일. 너희를 떠올려본다. 부디 다치지 말고 조심히 돌아오길.

범수와 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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