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에 있는가? 뇌 속인가, 컴퓨터 속인가,
이 글에서는 AI 시대에 마주하는 한 가지 모순을 다룹니다.
인간은 "기억"으로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앞으로는 기억에 의해서 정의되지 않습니다.
AI 모델에게 중요한 두 가지 개념이 있다. 하나는 기억(memory)이고, 다른 하나는 상태(state)이다. 인간에게 비유하자면,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이나 기분 같은 것이 ‘상태’를 나타내고, 오래된 경험과 축적된 정보가 ‘기억’이라 할 수 있다. 기억과 상태의 차이는 유한성의 차이다. 기억은 장기적으로 보존되지만, 상태는 순간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인식을 모방하려 할 때, 이 두 가지를 기술적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정보를 저장하고, 어떤 정보를 즉각적으로 반응할 것인가.
AI 모델이 인간과 대화를 나누는 지금, 사용자는 자신의 일부 기억을 AI에게 위탁해 저장하고 있다. 동시에 대화를 통해 일시적인 상태를 함께 공유한다. 인간의 뇌 속에서 이루어지던 두 개의 조화는 이제 외부 도구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 앨런 머스크가 말한 뇌와 기계의 물리적 결합(스타링크)이 기억과 상태를 신경 수준에서 직접 연결하려는 시도라면, AI와의 대화는 행동적 결합이다. 우리는 물리적 케이블 없이도 점점 더 컴퓨터에 자신을 의탁한다.
유사한 예를 들어서, 이제 핸드폰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기억과 상태 그 자체를 형성한다. ‘핸드폰 없이 한 달 살기’ 같은 실험은 종종 중독의 관점에서 설명되지만, 사실 핸드폰을 없애는 것은 우리가 위탁한 기억을 잠시 버리는 행위로, 나의 일부를 분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인간은 이미 기억과 상태의 일부를 기계에 저장하고 있으며, 점차 그 구조는 더 정교해지고 있다.
여기서 더 근본적인 문제가 생긴다. 인간의 의식(consciousness)은 생물학적, 물리적 구성으로 정의되기보다, 기억으로 정의하려고 인간이 노력했다는 점이다. 복제인간이나 인공지능이 나를 완벽히 모방하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나’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복제 대상은 기억과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 복제인간에 대한 논의에서 우리는 "기억"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부각하였지만, 역설적으로 AI 시대에서 우리가 점점 더 기억과 상태를 AI에 위탁하게 되면, 결국 “물리적인 동일성”이 더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게 된다. 점차 AI가 기억을 복제하게 되면서, 기억만으로는 나를 증명할 수 없는 시대가 된다.
미래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물리적이면서 기억적인 것, 두 가지를 모두 가져야 진짜 ‘나’다. 둘 중 하나만 가진 존재는 나와 같지 않다.”
AI가 나의 기억을 저장하고, 나의 상태를 이해하는 시대.
그때의 ‘나’는 어디에 있는가?
뇌 속일까, 컴퓨터 속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