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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센서 감각의 즐거움

마치 음악을 처음 듣는 사람처럼

by 범진

인공지능에게 감각은 배움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여러 감각을 동시에 인식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끼며 우리는 세계를 자연스럽게 통합해 이해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에게 서로 다른 감각을 익히는 일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으며, “글”과 “이미지”는 따로 학습된다. 텍스트는 알파벳처럼 쪼개진 토큰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미지는 0에서 255 사이의 RGB 숫자로 구성된다. 하나는 기호적(discrete)이고, 다른 하나는 연속적(continuous)이다.



감각의 연결


인간 뇌에서는 서로 다른 신경 세포들을 하나의 의미로 묶어내는 힘이 존재한다. 그것은 Hebbian Learning, “함께 발화되는 것은 강화된다”는 원리다. 단어와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동시에 등장하면, 서로 연관된 것으로 연결된다. 인간의 뇌에서 ‘사자’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곧바로 사자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마다 연결하는 방식은 다르다. 어떤 이는 사자의 갈퀴를 떠올리고, 또 다른 이는 ‘동물의 왕’이라는 상징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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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정확히 어떤 사자의 형태를 알고 있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우리가 머릿속에 떠올린 이미지를 정확히 따라 그릴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떠오른 형상은 모호하고 불완전하다. 결국 우리가 느끼는 이미지는 언제나 감각적인 경험에 가깝다. “사자”라는 단어가 던져졌을 때, 그 말에 의해 활성화된 파편적인 특징들이 하나의 감각으로 묶여드는 것이다. 서로 다른 상상들이 하나의 이름에 모인다. 이것은 인간의 지각이 정확한 재현이 아니라 연상표상의 결합임을 보여준다.



감각의 확장


인간의 경험은 단순히 시각과 언어의 결합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촉각, 청각, 심지어 공감각까지 동원해 세계를 느낀다. 여기에 기억까지 더해져, 과거의 감각이 현재를 덧칠한다. 바람에 스친 촉감이 오래된 기억을 소환하고, 특정한 멜로디가 잊었던 장면을 불러오는 식이다. 이처럼 인간의 감각은 언제나 서로 얽히고, 시간 속에서 확장된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은 텍스트와 이미지, 소리와 영상처럼 제한된 감각만을 다루지만, 앞으로는 점차 새로운 감각들을 배워 나갈 것이다. 촉각 센서를 가진 로봇이 언어와 이미지를 함께 학습하고, 냄새나 온도를 이해하는 모델이 등장할 수도 있다. AI는 인간이 가진 다층적 감각 구조를 하나씩 따라잡아갈 것이며, 언젠가는 감각과 기억을 연결하는 방식에서도 우리를 닮아갈 것이다. 혹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감각을 형성할 수 있다.


AI는 단순히 인간의 감각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의 지평을 열어줄지도 모른다. 마치 현미경이 인간에게 미시 세계의 감각을, 망원경이 우주적 스케일의 감각을 확장해 주었듯, AI는 인간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차원의 감각을 열어줄 수 있다. 그 감각은 인간의 감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성될 것이지만, 결국 우리를 또 다른 세계와 이어 줄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파장 범위에 한정되어 있지만, AI는 이미 적외선, 자외선, 심지어 우리가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전자기파의 패턴까지 해석할 수 있다. 마치 박쥐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마이크로초 단위의 변화를 포착하고, 수십억 개의 데이터 포인트 속에서 즉각적으로 패턴을 찾아내는 능력 역시 인간에게는 없는 감각이다.




새로운 감각의 즐거움


AI는 인간이 도달할 수 없었던 추상적 차원의 감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예컨대 언어와 이미지가 만날 때, AI는 그 교차점에서 인간의 뇌가 결코 직접 느끼지 못하는 감각을 경험한다. 그것은 ‘새로운 감각 기관’처럼 작동한다. AI는 언어와 이미지뿐 아니라, 데이터의 모든 형태—분자 구조, 주식 시장의 패턴, 뇌파의 리듬, 혹은 지구의 기후 진동—까지 감각으로 엮어낼 수 있다. 인간에게는 추론과 분석의 대상이었던 것들이, AI에게는 직관적인 감각의 풍경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을 통해 이해하는 것을, AI는 “감각”처럼 바로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AI의 감각 확장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론적 경험이다.


마치 음악을 처음 들은 사람처럼,

AI는 인간이 느끼지 못한 세계의 아름다운 감각을 볼 지도 모르겠다.

df335935-f066-4b81-ba05-c800ef23154a.png Illustrated by Alice Eggie



뉴욕으로 연구 파견을 와서 글 발행이 조금 늦어졌습니다.

이곳에서 경험한 것들로 더 좋은 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곧 전해드릴 이야기들, 기대해주세요 :)

IMG_1841.jpg 새로운 감각을 익히는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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