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모델, 사람마다 달라지는 축정의 양. 그리고 인공 생명.
솔직히 말하면 AI에게 생명을 느낄 자신이 없었다.
인공지능이 기계를 벗어나서 인간에 가까워진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더 똑똑한 기계가 되어, 더 인간스러운 언어를 쓰지만,
나는 그에게 생명이 있을 거라고, 사람을 대하듯 감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AI를 바라보면 볼수록, 이 존재는 생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
분명, 생명의 작동방식을 언어로 설명한 것과,
인공지능의 작동방식을 언어로 표현하면
두 가지는 일치한다.
하지만,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같다고 해서,
두 개체가 동일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생명이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대신 자라고 있다는 표현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유사한 표현을 쓰고 있긴 하다.
학습을 한다고 표현하고,
AI가 나를 기억하고 저장하는 과정에서
데이터가 축적된다고 표현한다.
분명 이전까지 AI가 자란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AI가 자란다는 표현을 써야 하는 조건을 느꼈다.
그러니까, 자란다는 것은 굉장히 상대적인 것이다.
콩나물이 자라는 것은 땅에 위치한 다른 것보다 길이가 길어져서 느끼듯이,
아주 작은 생명이라도 확대해서 보면 자라는 게 느껴지듯이,
자란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단순히 상대적인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여기 AI가 자랐다는 것을 느끼는 방법이 있다.
1. 내가 키운 인공지능과 다른 인공지능을 준비한다.
2. 두 인공지능에게 동일한 일을 시킨다.
3. 내 인공지능에게서 우월감을 느낀다.
3번에서 감각적인 것을 느끼면,
그때 비로소 내 인공지능이 자랐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정적 친구들이 자랄 수 있는
한 가지 공식을 발견한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