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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남자 May 27. 2020

문제와 해답

모든 것은 예상대로였다.

눈을 떠보니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엄격하셨다. TV를 보고 웃으면 장남은 그렇게 촐싹맞게 웃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다. 명절에는 어른들 옆에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라고 하셨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점은 공부를 잘하라고 잔소리는 하지 않으셨다. 그래도 부모의 마음은 공부를 잘했으면 하셨을 것이다. 10대를 보내고 20대의 나이에 남들보다 조금은 빠르게 결혼을 했다. 30대가 되어 집과 회사에서 생활하다 보니 어느새 40살이 되었다. 그리고 아들은 6학년이 되었다.


눈을 떠보니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났다. 아빠는 엄격한 것 같기도 하고 친구같이 하려고 노력도 하는 듯하다. 어렸을 때는 사랑한다는 말도 많이 해줬는데 요즘은 좀 뜸하다. 동생이 태어나서 인 것 같다. 엄마도 사랑한다고 많이 말해줬는데 동생을 더 신경 쓰는 것 같다. 매일 나만 혼난다. 사랑한다는 말을 나도 하고 싶기는 한데 쑥스럽다. 좀 커서 그런가 보다. 초등학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데 벌써 6학년이 되었다.


6학년이 된 아들에게 1학년 때부터 약속했던 것은 공부 학원을 보내지 않는 것. 대신에 운동 한 가지와 악기 한 가지를 가르치고 싶었다. 수영 학원을 보내고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어른이 되어보니 악기 하나 정도는 할 줄 아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내가 하지 못했던 것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아들도 좋아했으면 좋겠다. 사랑한다고 많이 해줘야 하는데 딸도 챙겨야 하니 바쁘다. 바빠.  


수영 학원을 가라고 해서 수영을 배웠다. 아 힘들다. 너무 힘들다. 오늘은 아빠, 엄마에게 수영 학원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왕 시작한 운동이니 딱 한 달만 더해보라고 했다. 이렇게 하기를 벌써 몇 번째다. 그런데 사실 처음보다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어느새 초급반을 지나 상급반에서도 잘하는 축에 들었다. 잘하기보다는 할 줄 아는 게 중요하다는 아빠의 말이 기억난다. 피아노? 그냥 치긴 치는데 재미는 없다.


평일이면 아이들에게 신경을 못써주는 것이 사실이다.  야근도 하고 직장동료들과의 맥주 한 잔도 필요하다. 그래도 수요일, 금요일은 일찍 들어가려고 노력한다. 일찍 들어가는 날이면 문제집을 채점한다. 하루하루 숙제를 내주면 아들은 하고 나는 채점을 해주고 주말에 틀린 것을 위주로 본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너무나 깔끔하다. 분명히 틀려야 정상인데 답도 깔끔하고 문제풀이도 깔끔하다. 원래 문제집 공란에 문제를 풀던 녀석이 이렇게 깔끔하게 풀다니. 냄새가 난다.


오늘은 숙제가 너무 하기 싫다.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은 좋은데 아빠가 내주는 숙제가 많다. 아빠는 별로 없다고 하는데 너무 많다. 하기 싫다. 친구들과 만나지 못해서 요즘은 스마트폰 게임 내에서 만난다. 게임을 해서 레벨을 더 올리고 싶은데 숙제를 해야 하다니. 아! 저기 해답지가 있다. 살짝 한 번 볼까? 아 걸리면 혼나는데. 그래 결심했다. 살짝 보자. 설마 걸리려나.


나는 직감적으로 무엇인가 잘 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너무나 깔끔하다는 것은 위화감이 들 때가 있다. 바로 오늘 이 현장에서 나는 그것을 느꼈다. 무엇이냐? 내가 간과한 것은 무엇이냐? 생각해라. 나는 생각할 수 있다. 아! 그렇구나. 그것이었구나. 믿고 싶지 않았다. 전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단단히 서로 약속했는데. 그런데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 아내에게 이야기를 해야겠지.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무슨 일 일까? 아빠가 나를 부른다. 거실로 갔다. 갑자기 수학 문제 한 문제를 풀라고 했다. 아! 다행이다. 아는 문제다. 왜 나에게 문제를 풀라고 할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일일까? 모든 것은 완벽했다.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엄마, 아빠가 의심하는 거야?"   


"아니야, 그냥 한번 확인하시는 거겠지."


아니다.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 불안하다.



월요일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맞았어. 여보가 맞았어!" 그렇다. 아들은 해답지를 보았던 것이다. 영악하게도 해답지를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슬쩍슬쩍 보았던 것이었다. 위기감을 느낀 아들 녀석이 해답지를 찍은 사진을 지울 때 그 현장을 걸렸던 것이었다. 예상대로다. 아! 나도 혼날듯하다. 스마튼폰을 자율적으로 쓰게 해 주자고 한 것이 나인데. 아들도 그렇지만 나도 며칠간 힘들듯하다.


현장에서 들켰다. 가슴이 철렁했다. 혼이 날 생각을 하니 또 걱정이다. 그런데 예상외로 아빠는 많이 뭐라 하지 않으셨다. 한참 그러지 말라고 하셨지만 생각보다는 아니었다. 오늘은 일찍 잘 수 있을 것 같다. 단지 두 손을 꼭 잡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자고 했던 아빠의 두 눈이 생각난다. 내가 잘 못하긴 한 것 같다. 인정은 해야겠지. 아빠는 넘어갔고 이제 엄마가 걱정이다. 부디 무난하게 넘어가기를.


아들 녀석의 두 손을 꼭 잡았다. 부디 잘하지는 않아도 되니 스스로에게 거짓말은 하지 말자고 이야기했다. 공부 보다도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전략적으로 두 손을 꼭 잡고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오늘은 감성 전략이다. 부디 통하기를. 이번 전략은 오래가야 할 텐데 걱정이다. 그깟 문제집 한 장이 뭐라고.


오늘도 나와 아들의 밀당은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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