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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남자 May 24. 2020

커피 한 잔, 소금 그리고 우유

마담 아주머니는 내게 우유에 소금을 넣어 주곤 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면서 무척 짓궂었다고 들었다. 김장을 하면 김장독에 오줌을 싼 적도 있다고 하니 여간내기가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가끔은 이불에 지도를 그리고 박으로 만든 바가지에 소금을 얻으러 나서기도 했던 어린 시절. 모두는 아니지만 몇 가지 남아있는 기억의 조각들이 있다.


고무신을 신고 마을을 뛰어다니며 동네 형들과 놀았던 기억. '다이아트론'과 '무적의 고바리안'이라는 만화영화가 할 때면 만사를 제쳐두고 할아버지 안방에 있는 TV를 뚫어 저라 봤던 기억. 불장난을 하다가 오른손 중지 위에 불똥이 떨어져 화상을 입었던 기억






예전 어른들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장손에 대한 애착이 컸던 할아버지는 내 조그만 손을 잡고 읍내에 있는 다방에 자주 데려갔다. 할아버지는 커피를 주문했고 커피 한 잔과 함께 나오는 흰 우유는 언제나 내 몫이었다. 마담 아주머니는 주방에서 가져온 소금을 엄지와 검지로 집어 우유에 넣고 몇 번 흔들어서 빨대를 꽂아 주었다.


하얀 다방 커피잔에 담긴 커피를 후루룩 후루룩 국물 마시듯이 드시는 할아버지의 옆에서 약간은 비리고 진한 짭조름한 맛이 나는 우유를 쭈욱 쭈욱 빨곤 했다. 말수가 적으셨던 할아버지는 커피 한 잔을 다 드시고 어린 손자의 손을 잡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로 올라오게 되면서 할아버지와 같이 다방에 가는 일을 없었다. 대신에 할아버지는 시골에서 올라오실 때마다 자장면을 사주셨다. 잘하지 못하는 젓가락질을 하며 소스를 얼굴에 묻히며 소리를 내서 먹었던 자장면이 어찌나 그때는 그렇게 맛있었는지 모르겠다.


집에 돌아온 할아버지께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커피를 드렸다. 또다시 커피 한 잔을 뚝딱 드시면 연초를 피우셨는데 얼마나 그 양이 얼마나 많은지 방안이 자욱할 정도의 연기만이 그 양을 가늠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커피를 드셨다.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징용 후 고향으로 가까스로 돌아오신 혈기왕성했던 할아버지. 커피를 숭늉 드시듯이 드셨던 할아버지. '도라지', '장미'라는 연초를 삼시세끼 드시듯 피우셨던 할아버지는 어느새 70대가 훌쩍 넘으셨고 나도 20대가 되어 군대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할아버지는 어릴 적 내가 TV를 뚫어지게 보았던 그 방에서 주무시면서 돌아가셨다. 모두가 호상(好喪)이라고 했지만 어린 손자에게 호상(好喪)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돌아가실 때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한 후회만 남았을 뿐이다.




후회라는 것을 하기에 인생은 그리 만만치 않다는 사실들을 조금씩 알게 된다. 후회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후회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 후회가 오래 남지 않도록 오늘 하루도 더 열심히 후회 없이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 해답을 얻을 그 날이 오기를 바래본다.


비가 조금와 흐린 지금. 어릴 적 할아버지 손을 잡고 다방에서 마셨던 그 우유맛이 생각난다. 오늘은 우유에 소금을 조금 넣어서 먹을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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