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맘쇼

2018.1.31

by 오마이줄리안

부엌, 개수대에서 설겆이를 끝내고, 말려놓은 무거운 압력 밥솥을 정리하다, 털썩 주저 앉아 울었다. 그 느낌은, 마치 누가 나를 잡아당기는 듯한, 불가항력적인 슬픔 같은 것이었다. 그날의 나는 별로 특별할 것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심지어 그날 아침에 보고 온 코미디 쇼는 엄마들을 위해 준비한 웃기고 웃긴 프로그램이었다.

문제는, 바로 그 쇼였다. 이 쇼가 기폭제가 되었다. 웃긴데, 웃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엄마가 되어 바뀌어버린 자신들의 일상과 인생살이를 소재로 사람들을 웃기고 있었다. 그들의 치열한 삶의 전환 과정이 웃음으로 승화되는 현장에서, 그 웃김이 나는 너무 슬펐고, 가슴이 쿡쿡 찔리는 것 같았고, 그래서 웃다가 갑자기 울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온 후, 나는 꾸역꾸역 버티던 시간 속에서 어느순간이 되자, 털썩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이 즈음 나는 너무나 외롭고 힘이 들었다. 조금있으면 건강검진 날짜가 다가오기도 했다. 벌써 다섯 번 째를 맞는 수술 후 건강검진이 이번에만 특별히 새로운 것도 아니건만, 긴장되고 우울한 기분이 스쳤다. 2년 넘게 먹어온 호르몬조절 약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항암 치료가 끝났지만 아직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내 머리카락 숱을 보면 그 우울감은 강도가 세졌다.

지금 이러고 사는 게 누굴 위한 것인지, 회의감이 들 때가 많다. 어쩌다보니 경력단절 여성이 되었다. 2011년 결혼을 해서 미국으로 가, 연수2년을 보내고, 1년을 육아휴직을 했다. 돌아와 6개월 잠깐 복직을 한 후, 암 진단을 받고 2015년부터 2018년 지금까지 쉬고 있다. 일은 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회사에는 휴직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었고 다행스럽게 나는 잘리지 않고, 휴직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경단녀 운운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비난받을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그녀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나만의 고민은 오히려 더 막막하고 먹먹하다. 나는 다시 일하러 돌아가는 것이 '비합리적인' 선택이므로 일하지 말아야한다는 논리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다. 현상황에서 일을 하려는 것은 그저 욕심이고 건강을 해치는 길일 뿐이라고, '휴직'이 여러가지 답안중에 가장 정답에 가까우므로, 정답을 알고서는 오답을 택할 수 없으므로, 휴직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하는 논리 속에서 정답선택을 강요받는 기분이다. 게다가 오답을 선택했을 때 내가 예상할 수 있는 위험요소는, '실수'나 '오류', '기회비용' 같은 개념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질병의 재발이나 죽음 같은 무시무마한 것들이다. "일하다가 다시 아프면 어쩌려고 그래?" 가장 합리적 선택으로 사는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닐 때, 나는 왜 아파서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가, 한탄으로 이어지고, 이는 나에게 처절하게 잔인하다. 돌아갈 직장이 없는 그녀들과는 조금 다르지만, 돌아갈 직장이 있어도 마음 편하기 돌아가지 못하는 내 선택도, 징그럽게 잔인하기는 마찬가지다.

나의 자아감은 크게 상실되어 있다. 나는 뭐하는 인간인지, 요즘처럼 좌절스러운 적이 없다. 꾸역꾸역 밥을 먹고 살아남는 하루하루. 내가 잘하는 건 다 하나도 못하는 것이 되었고, 원하는 것도 이룰 수 있ㅇㄹ는 게 없다. 잠만 잘못자도 몸이 삐끄덕삐끄덕 아프고, 금방 피로하고, 매스껍다. 그동안 살아온, 치열한 삶이 이제 다 걸레조각이 되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많은 시간이 지났고, 나는 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게 확연히 느껴져, 나는 우울하다. 슬프고 무기력하다.


오늘 나의 하루를 시작했던 코미디쇼가 자아상실감을 자각시킬 줄은 몰랐다. 엄마들 사이에서 우는 내모습이 불쌍해서 더욱 울었다. 나는 내가 엄마임이 싫은걸까? 살림담당이 싫은걸까? 그냥 현실에서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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