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더 멀리 가려면, 때로는 끌바.

by 포도송이

분명히 팀장님이 고개 두어 개만 넘어가는 코스라고 얘기했는데, 이건 아니다. 합천호 라이딩에 혼자 로드 자전거로 몇십 개가 되는 언덕을 계속 넘어가는 중이었다. 알고 보니, 합천호는 라이더들한테 중-상 코스라고 했다. 근력도 딸리는 내가, 로드 자전거로 고개를 넘어가느라 온몸에 힘을 주었더니 허리가 나갈 것 같다.

“끄는 것도 라이딩입니다. 힘들면 끄세요.”

그래. 기어 낮춰서 타고 올라가는 속도보다 끌고 가는 게 더 빠르겠다.

자전거에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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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바.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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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의 정점인 어느 날, 해 뜰 때쯤 출발해서 8시가 되기 전에 강정보에 도착을 했다. 편도 23킬로쯤 되었나,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금방 오는 거리다. 매일 새벽 라이딩 덕분에 속도감이 제법 붙었다. 강정보는 라이더들의 천국이다. 낙동강 상류의 물줄기가 크게 펼쳐져 있는 공원에 라면 조리기를 포함하여 엄청난 양의 종류별 간식이 있는 그 마트. 사실 그 마트 가는 맛으로 매주 타고 있다. 그곳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30분이나 1시간쯤 놀다가 가는 것이 주말 라이딩의 루틴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매번 혼자 라이딩을 하다 보니까, 새로운 코스를 가는 것은 사실 좀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여자 혼자, 나처럼 방향감각 없고, 계획적이지 않은, 싱글 라이더에겐. 자전거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왜, 자전거 지도를 유심히 보게 되었을까.

강 줄기를 따라 놓인 나무다리 위로 칠곡보로 가는 길이 있다. 저것 역시 자전거 도로고, 나는 그저 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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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유심히 보게 된 건, 그날 라이딩이 성에 차지 않아서였다. 유달리 마음속 생채기가 남았던 그날은 친구와 약속이 되어 있던 날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친구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지난날 연애 상대가 약속을 잡았다가 일방적으로 취소한 날이었다. 미련이 남아서는 아니었지만, 최소한의 우정 같은 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내가 또 바보다. 나는 이렇게 늘 너무 투명하고 여전히 친절하게 마음을 내어준다. 속이 상했다. 무게감 없는 상대의 약속과 배려 없는 약속 취소에 마음이 더 상했다. 그와의 연애에는 어떤 문제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헤어지고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각자가 그리던 세상에 대한 대화는 할 수 있는 관계가 될 거라고, 멍청한 생각을 또 했네 내가.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연애와 우정과 같은 관계에 있어서는 너무도 이상적인 꿈을 꾸고, 결국은 스스로 생채기를 낸다.


그 생채기의 끝은 무작정 새로운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결국 대책없이 눈앞에 놓여진 길로 페달을 내 딛는다. 지금까지 온 길과는 판이한 느낌의 길이 펼쳐졌다. 자전거 길이라곤 하지만 정비도 되어 있지 않고, 높낮이도 일정치 않은 거칠고 울퉁불퉁한 회색 시멘트 길들이 계속 나왔다. 2시간쯤 지났을까, 11시쯤 되어서 칠곡보에 도착했고 처음 온 길이라 체력은 완전히 바닥이 났고, 1시간이 지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체력을 회복하고 보니 해는 더욱 강렬해졌다.


돌아가는 길, 총 80킬로 구간이 넘자 왼쪽 무릎 슬개골이 시리다. 거친 표면의 업힐이 많은 구간에서 슬개골은 힘을 주자 더욱 고통받는다. 근육의 똑같은 움직임이 계속되자 멍들었을 때의 느낌을 지나 약간 찢어질 것 같은 통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젠 완만한 경사에서도 기어 변속을 해도 올라갈 수 없는 상태에 도달했다.


결국 내려서 끌 수밖에 없다.

쏟아지는 자외선 아래 피할 곳도 없고, 멈출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집까지는 너무 많이 남았다. 그렇게 새로운 세계를 향해 가는 길은 2시간 남짓이었는데,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는 6시간이 넘게 걸렸다. 무릎은 퉁퉁부었고, 선크림은 미처 바르지 못해 다리는 홀랑 익었고, 30센티도 안되는 안장 위에서 버티던 몸은 정말 으스러질 것 같다.

이제 욕이 나오네. 나쁜 xx.


해가 진다.

우리는 더 멀리 가기를 꿈꾸지만,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는 데는 여전히 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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