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어디 있을지도 모를 자전거 도로 위에서 나는 주로 혼자 있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때까지 스스로만 버티고 책임지면 되었다.
-
그러나 둘 이상이 되는 순간부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함께 출발하지만 누군가는 그 길을 먼저 가고, 누군가는 멈추고 싶거나 또는 다른 길로도 가고 싶다.각자의 체력과 속도도 다르고 시선이 머무르는 곳도 다르다. 함께 달리기 위해선 누군가는 뒤의, 또는 앞의 사람을 케어하면서 서로의 다름을 맞춰야 한다. 라이딩에서 누군가를 이끄는 것은 상당한 정신력을 요하는 일이다. 처음 야라(야간 라이딩)를 나갔을 때, 어둠 속 더욱 거칠어진 차들의 속도에 심장박동소리가 몸 밖으로 느껴질만큼 떨고 있었다. 기어 변속은 아무리 이해하기 쉬운 말로 설명을 해도 몸에 붙기 전까진 헷갈리고,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차들과 복잡한 교통신호들은 내가 과연 이 도로 위에서 섞일 수 있긴 한걸까 하는 근원적인 공포심에 휩싸인 상태였다. 그러나 새로운 갈래길과 장애물이 나올 때마다, 멋지게 수신호로 이끌어주던 그누군가가(어떤 오빠가) 있었고, 뒤로는 왼쪽-오른쪽 기어 변속을 하나하나 알려주던 다른 이(삼촌뻘의 오빠)도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들의 신호와 목소리에 온 집중을 다해 열심히 따라가는 것. 그것이 그들의 배려에 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었다. 그렇게 낯선 도시에서 라이딩은 그들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다.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다시 만난다면 꼭 감사인사를 해야지. 물론 여자 멤버가 희소한 라이딩 클럽의 특성상 친절함도 조금 더 추가되었을 것이다.
-
여자 혼자 떠나는 라이딩이 얼마나 힘겨운지 너무 잘 안다. 어쩌면 내 몸뚱이와 본질에 이율배반적인 행위일지도 모른다. - 주말 아침 피로를 업은채로 몸뚱이 만한 쇳덩어리를 차에 실어 바람과 허허벌판뿐인 낯선 어딘가에 내려, 부품들을 다시 조립하고 장비들을 갖추는 데까지 - 그 모든 과정들이 쉬운 것이 하나 없었다.(지금도 여전히) 힘겨움의 흔적들은 내 차에, 내 몸에 스크래치로 고스란히 남았다. 안장 위에 올라서고 나면 자세나 케이던스 같은 거 신경 쓸 요량이 어딨는가. 그저 목표지점까지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도착하는 것. 비바람에 영향받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는 것. 그 뿐이었다. 젬병인 운동신경 덕에 한번 넘어지면 크게 자빠졌고, 감당할 수 없는 사건 사고들도 많았다. 방향 감각도 없고 대처능력도 낮아 남들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매 순간이 시련과 미션의 연속이었다. 그저 돌아와야 했기에 내 한계를 맨 몸으로 버텼다.
그렇게 어떤 순간이든 그래도 버텨온 것들이 둘이 되는 순간 무너질 때가 있다. 아니, 응석 부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와 자전거를 타는 날은 이상하게 늘 몸이 아팠다. 아니 사실은 힘겹게 버텨 온 것들 앞에서 솔직해지고 싶었다.
-
추워, 진짜 춥다.
어깨가 너무 아파.
더 갈 수 있을까.
-
그 사소한 응석들이 그를 괴롭혔다. 누군가를 책임져 본 적이 없었던 사람이었기에. 어느 날은 한없이 다정했지만, 어느 날은 동굴에서 숨어서 나오지 않았다. 웅크리고 앉아 그와의 약속시간을 기다렸다. 그땐 그게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으니까. 그 순간들이 쌓여 상처 투성이가 되고 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나는 날아가야 할 사람이었는데, 날지 못하던 그 순간들이 스스로에게 고통으로 돌아오고 있었단 것을.
지나고 나니 사실 자전거 피팅에 문제가 좀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는 바람과, 추위를 버티기엔 지금보다 훨씬 체력이 약한, 아니 원래 나약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겉으로 보이는 그 깡 있어 보이는 모습들은 나를 지키기 위한 아주 얇은 방패막일 뿐이다. 서투른 것 투성인, 버티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불완전한 인간일 뿐인걸.
시간이 흘렀고, 다시 피팅을 바로 잡았다. 아니, 이제 내 몸에 꼭 맞는 자전거로 바꾸었다. 맞바람에 좀 더 버티기위해 매일 아침 조깅을 한다. 무엇보다 누군가와 함께 하든 아니든 나는 내 레이스를 하기로 다시 마음먹었다. 가끔 함께 달릴 수 있는 메이트들이 있음에 감사하지만, 나의 눈길이 머무르는 곳, 가보지 않은 저 다른 길, 남들이 쉬지 않는 어딘가를 여전히 사랑하는 솔라(솔로 라이더)다. 그 누군가에게 기대어 영원히 머무를 수 있을까. 결국 내 안에서 머물러야 할 것이다. 머무를 수 없다면, 그저 다시 달리면 된다. 스쳐 지나간 연들과 기억들은 바람에 흩날릴 수 있도록, 달리다 보면 오늘은 어제의 나보다 훨씬 가벼워져 있을 테니.
그리고 가끔은 4년 차 라이더로서, 이끔이가 되어야 할 때가 있다. 입문하는 누군가와 함께 할 때, 초보 라이더의 길을 열어준 그때 그들처럼 능숙할 수는 없지만, 이론에 바싹하지도, 대단한 공구를 가지고 있지도 않지만, 최소한 당신이 가려는 그 길 끝엔 기다리고 있다는 그런 믿음 정도는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당신의 시야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겠다고. 천천히 와도 괜찮으니 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그렇게 얘기해주려고.
나와 함께 달리는 당신의 응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