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낙차(落車)

by 포도송이

낙차(落車)는 불가항력적으로 한순간 닥치는 것 같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제 곧 넘어지리라는 사실을. 그 순간, 시간은 슬로모션처럼 느려지면서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를 준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이 운명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다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발버둥 칠 것인지.


지난가을, 훼손된 유도봉 밑동에 자전거가 걸려서 하늘로 날랐다. 구름이 몰려오길래 마음이 급해져 바닥이 정돈되지 않은 길에서 무리하게 페달링에 집중하다가 정작 눈앞의 턱은 아예 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충격을 완전히 정면으로 받았다. 왼쪽 얼굴 광대뼈부터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져서 내동댕이 쳐졌고, 동시에 두 정강이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고 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말하길, 몸이 붕하고 날랐고, 종이인형처럼 펄럭였다고 했다. 사실 라이딩에 제대로 된 보호장치라곤 헬멧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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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다 부러지는구나.

지금 머리를 안 다친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그렇지만 왼쪽 광대가 너무 아프다. 무릎에 약간 찢어진 상처가 있는 것 같지만, 이건 일도 아니다. 문제는 이 상태라면 한동안 자전거를 못 타겠구나.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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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차 하는 그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고, 이내 곧 엄청난 통증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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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너무 아파, 온몸이 다 너무 아파.”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얼굴 광대와 어깨, 두 다리가 찢어질 것 같은 통증 때문에, 그리고 이 몸으로는 다시는 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서. 엄마와 산책하던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가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나에게 꽃을 주고 갔던 기억이 언뜻 나지만, 나는 그 꽃을 쥘 수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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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같은 건 널렸다.”

특별한 능력도, 특출 난 머리도 없었기에 뭐든 하던 시절의 20대의 내가 마주한, 도저히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말이었다.

어떤 빛깔을 띠고 싶었던 욕망들이 유별을 떠는 것으로 보였을까. 나는 그저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주어진 기회들을 간신히 붙잡아 ‘경력’이라는 단어로 바꾸기 위해, 누군가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렇게 뛰어든 그 바닥에서 나름의 합리적 기준을 세우고 쫓으려던 행동들이 어쩌면 그 집단의 질서를 해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장 그만두고 도망가고 싶었다. 저 한 마디 말로 만화 속 주인공 속에 그려진 군중처럼, 나를 아무 빛깔도 생김새도 없는 그런 초라한 인간으로 취급해 버린 그곳이 싫었다. 지역에 나를 붙들어 놓던 선배 앞에서, 이런 곳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더 이상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 같다고, 절이 싫으니 나는 떠나겠다고, 욕을 한지껄이 뱉어내면서 분노하고 또 토해냈다. 대성통곡하던 나를 지켜보고 있던 선배가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만둘래?”

그 말은 나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더 다치기 전에 이대로 도망가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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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 시절 나는 그 특별한 그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는지 모른다. 나의 언어와 그 세계의 언어는 분명히 달랐고, 내가 무엇이 되고자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 질서를 따라보지 않으면 판단할 수 없는 세계였다. 그것이 맞던, 맞지 않던. 결국 나는 특별히 잘하는 것 없이 그저 버티는 것으로 그 세계의 언어를 배웠다.

그로부터 내가 얻은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어떤 순간이 올 때, 생각을 완벽하게 뒤집어보는 힘. 그리고 내가 한 번도 가지 않은 그 길로 한번 가보는 힘같은 것들이었다. 그것이 맞다 아니다 판단하기 전에. 하지만 알고 있다. 그 순간은 명확하게 상처였고, 어떤 순간은 폭력적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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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에서 처음으로 낙차 한 날이 생각난다. 여느 때처럼 달리던 길이었고, 순간 생각이 멍해지면서 눈의 초점이 풀렸다. 더위에 지친 건지 체력이 바닥난 건지 정확히 기억은 나질 않지만, 조금만 신경 썼더라면 엉덩이가 조금 아프고 말 정도의 턱에 로드 바퀴가 휘청거리며 쓰러졌고 몸의 왼쪽면 전체가 바닥에 쓸렸다. 얼마 입지 않았던 아끼던 새 라이딩복의 옷감이 일어날 정도로 어깨 쪽 살과 무릎이 까졌고 옷 안감으로 핏자국이 번졌다. 쓰라렸지만, 견딜 수 있는 타박상이었다. 사실은 상처의 고통보다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변태 같지만 뭐랄까, 이제야 라이더 같아진 느낌이 들어서. 내가 진짜 자전거를 타고 있구나, 약간 으쓱한, 영광의 상처를 새긴 그런 느낌.

나는 이내 씩 웃음을 지으며 자전거를 일으켜 무릎과 어깨에 흐르는 피를 손으로 슥슥 대충 닦아내고 다시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우리는 앞으로 인생에 마주할 낙차의 순간을 모두 피해 갈 수는 없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다간 더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넘어졌을 때 잘 넘어져서 아픈 곳을 살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멧집일지도. 그리고 그 고통의 순간도 잘 기억해 두어야 한다. 그 순간 어디가, 왜, 어떻게 아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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