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혹한기 라이딩

by 포도송이


완전히 가을이 끝났다. 11월 셋째 주였다. 올해는 그래도 충분히 가을을 보낸 편이었다. 11월은 언제 겨울이 올지 몰라 초조한 마음에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 습관처럼 몸에 베였다. 하루하루 해가 짧아졌고 그 온기도 다해갔다.

아침에 일어나서 베란다에서, 오후에는 회사 사무실에서. 햇볕이 사무실 안으로 비춰 드는 어느 날에는 엑셀이나 두드리고 있는 내가 한심해져 가슴이 답답해졌고, 그러다가 도저히 못 참을 것 같은 어느 날에는 - 반짝이는 강물이, 끝이 보이지 않도록 하얀 갈대밭을 지나며 맞던 시원한 바람이 그리울 때는 - 조퇴를 하고 자전거를 끌고 나간 일도 더러 있었다. 자전거길은 이제, 오후 5시 20분쯤부터는 그늘이 드리워졌고, 5시 45분쯤 되면 검푸르스름한 어둠이, 저녁 6시부터는 완벽한 밤이 덮어 버렸다.

11월에선 12월로 넘어가며 매주 새로운 방한 아이템이 추가되고 있었다. 열심히 검색해서 산 슈즈커버를 착용한 첫날부터, 추위를 견딜 수가 없었다.

영하 6도에서 영상 3도. 겨울바람을 맞아 이미 냉기를 품고 있는 자전거 위에서, 나를 보호할 더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몸뚱이를 따뜻하게 할 것들과 손과 발을 따뜻하게 할 것들. 그리고 내 속을 따듯하게 할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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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늦가을부터 겨울의상으로 돌입한다. 10월 말까지는 여름 복장에 여러 아이템을 추가한 복장으로도 견딜 수 있지만, ‘낮에만 바짝‘ 타고 온다던가, 아님 평속 35킬로 이상을 유지할 수 있는 실력이 있던가 둘 중 하나여야 할 것 같다. 특히 의지할 때도 없는 솔라(솔로 라이딩)는 FW시즌을 잘 버텨야 한다. 겨울 라이딩복의 원칙은 “춥지 않지만 가볍게”이다. 멋모르고 따뜻하게만 껴입다간 근육맨 되어 땀 뻘뻘 흘리다가 땀 식는 순간 급격하게 체온이 떨어져 체력이 바닥나는 수가 있다.

이너-히트텍-웜 소재의 긴팔운동복-겨울용 기모 저지-얇은 조끼 패딩 또는 얇은 긴팔패딩 정도가 적당하고, 체질에 따라, 기모저지로 내공 입게 입게 마무리하는 경력자들도 있다. 내공 있는 라이더라면 메쉬소재의 그물 이너를 입는데, 그래도 라이딩하면서 흘리는 땀을 원활하게 적당히(얼기 전에) 배출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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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겨울에 무슨 라이딩이냐, 모두가 한 마디씩 거드는 계절이지만, 그래도 겨울 라이딩의 맛이 있다.

그 찹찹하고 먼지 하나 없는 공기를 피부로 느낄 때, 더없이 머리는 맑아지고(생각할 겨를도 없다). 어둠이 내리기 전에 어서 목적지로 돌아가는 것. 그것뿐이다.

모든 것이 단순해지는 것이 겨울라이딩의 맛이랄까.


라이딩은 늘 내가 가지 못한 세계와 내가 지나온 세계가 펼쳐져 있었고 선택은 오로지 나의 몫이었다. 닿지 못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막연한 동경은 눈앞에 마주한 순간, 어디서부터 닥칠지 모르는 불안함이 많은 라이더들이 새로운 세상을 향해 모험을 떠나지만, 나는 쉽게 새로운 길을 가지 못했다. 새로운 길로 들어섰을 때 혼자서는 정말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더 이상 나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상실감이 찾아올 것 같아서, 대신 나는 지나쳐온 길들을 가고 또 가며 전에는 발견하지 못한 빛깔과 그리고, 차마 흘려버리지 못했던 지난날의 기억들을 정리하고 또 정리하는 일을 했다. 오늘의 빛깔을 다시 보고, 전에는 발견하지 못한 말라버린 식물들 사이 생명체들의 빛을 보면서, 그래도 다시 버틸 수 있는 한 버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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