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교육리포트(4)
지난 2021년 한해 동안 인천의 한 여자중학교 기후환경동아리 활동에 협력자로 함께하였다. 참 오랜만의 교육현장 체험이었다. 동아리 활동은 내가 상상하고 기대한 바와 많이 달랐다. 수업시간에 배정되어 한달에 하루 3교시 동안 진행하였고 그나마 매달도 아니었다. 학생들의 희망에 따라 햇빛발전소가 설치된 에너지 자립마을 방문, 기후행동 관련 청소년 도서 저자 초청 간담회, 기후행동 캠페인 준비와 진행 등을 진행하였지만, 단순 체험활동에 그쳐 과연 기후위기를 바로잡는 실천활동을 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같은 나의 평가와 소감을 이야기해보니 다른 동아리 활동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들었다.
1기 미래교육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미래교육 월례공부(미래월공)를 하였다. 책이나 연구보고서를 읽고 토론하는 방식이었는데, 내가 가장 공감한 책은 마크 프렌스키의 <미래의 교육을 설계한다>였다. 교육에 관한 내 문제의식과 해결방향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이 책의 원 제목은 "더 나은 세상 만들기 교육"인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교육 비전은 다음 공통 요소를 포함한다고 말한다.
"1. 교육목표의 변화: 언젠가 세상을 개선하는 어른이 되도록 학생 개인을 교육하는 것에서, 교육의 일환으로 지금 세상을 개선하는 것으로 교육목표가 바뀐다.
2. 교육 수단의 변화: 학과 학습과 성적 중심에서, 열정을 발휘해 실질적인 사회참여를 실현하는 것으로 교육 수단이 바뀐다.
3. 기대하는 교육 결과와 필수 교육과정의 변화: 모든 아이가 능숙하게 잘 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수학, 국어, 과학, 사회 과목 그 자체가 아니라 효과적인 사고력, 행동력, 인간관계, 사회참여 실현이다.
4. 교수법의 변화: 교실을 통제하고 내용을 전달하는 이론 중심 접근방식에서 벗어나 그냥 단순한 교수법이 아닌 매우 강력한 기술 사용을 기반으로 신뢰, 존중, 독립, 협동, 친절을 통해 아이들이 효과적으로 무엇인가를 실현할 수 있게 역량을 키워주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마크 프렌스키도 인정하듯이 더 나은 세상 만들기 교육을 현행 교육체계에서 전면 시행하긴 어렵다. 그래도 자유학기제, 민주시민교육, 세계시민교육에는 더 나은 세상 만들기 교육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조사한 바로는 자유학기제, 민주시민교육, 세계시민교육에서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저 가상실험이나 제안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GCF(녹색기후기금) 기후변화 제안 컨테스트도 그 중 하나이다. 실제 변화를 위해 행동해서 그 결과를 발효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제안만 하는 대회가 오히려 학생들에게 실천하지 않고 제안만 하는 무책임을 배우도록 하기 때문에 반교육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미래의 교육을 설계하다>를 다시 읽으면서 영화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이 떠올랐다.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14세의 말라위 소년 월리엄 캄쾀바가 가난 때문에 중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자 풍차를 만들어 전기를 생산해 관개 펌프를 돌리게 된 사연을 담고 있다.
캄쾀바는 TED 컨퍼런스에 초대되어 자기 경험을 이야기했고 그의 이야기는 세계로 널리 알려졌다. 덕분에 그는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고, 미국 타트머스대학에 유학하였다. 그의 이야기가 책과 영화로 만들어졌고, 지금은 자신의 NGO "무빙 윈드밀스"(Moving Windmills)를 통해 자기 뒤를 이을 혁신가를 양성함으로써 말라위 혁신을 위해 힘쓴다.
캄쾀바의 이야기를 보면서 마크 프렌스키의 주장이 맞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캄쾀바는 사서의 도움으로 도서관의 빈약한 책들에서 얻은 지식으로 풍차를 만들었다. 캄쾀바에게는 마을의 가뭄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고, 문제해결 방법으로 풍력발전을 선택하였다. 영어가 서툰 그였지만, 어렵사리 영어로 쓴 과학책에서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찾아냈고 결국 고물을 이용해서 스스로 디자인한 풍차를 만들었다. 만일 캄쾀바가 중학교에 계속 다닐 수 있었다면 이론 중심 교육의 교실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풍차를 만들 수 있었을까? 아마도 이론 학습을 따라가느라 이 같은 프로젝트를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마크 프렌스키는 더 나은 세상 만들기 교육을 위한 플랫폼 BTW(the Better Their World: student project database)를 운영한다(Play 스토어, App Store에서 다운로드 가능). 그의 책에서 밝힌 아이디어를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이 데이터베이스 앱을 통해서 학생 개인이나 팀이 효과적인 사고력, 효과적인 행동력, 효과적인 대인관계 능력을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서 요구된다는 세 가지 요구를 해결하고 있다(92~93쪽).
"1. 아이들이 실제로 사회참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활동 내용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2. 프로젝트의 대상, 범위, 목적이 무엇인지 확실히 이해하고 공유해야 한다.
3. 학생이 열정을 가지고 수행할 수 있는 적절한 프로젝트를 찾아 학생과 연결시켜야 한다."
만일 BTW와 같은 플랫폼을 만들어서 자유학기제, 세계시민교육, 민주시민교육, 마을교육공동체, 고교학점제 관점에서 마련하는 각 교육과정에 적용한다면, 현 교육과정 안에서도 가능한 게 많다고 생각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회참여 프로젝트에서 마을, 시민사회가 학생들과 만날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실질적인 교육 효과는 물론 당장의 사회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대상별로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
교사에게: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통해서 마크 프렌스키의 아이디어를 자유학기제, 세계시민교육, 민주시민교육, 마을교육공동체, 고교학점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탐색하고, 장기적으로는 '더 나은 세상 만들기 교사회'로 발전했으면 한다.
시민사회에게: 지금까지 단체별로 자치단체와 협력했던 것에서 벗어나 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 단위의 협력으로 전환해서 시민사회단체와 학생이 협력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면 한다. 그 기본 디자인을 위한 TF부터 구성하자.
국제교육협력활동가에게: 마크 프렌스키의 주장처럼 이론 중심 교육에서 더 나은 세상 만들기 교육으로 넘어가야 한다면, 국제교육협력도 이론 중심 교육을 지원하는 데서 벗어나 개발도상국 학생과 함께 더 나은 세상 만들기 프로젝트를 공동 수행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면 어떨까? 세계시민교육, 동아시아시민교육도 이 같은 관점에서 개발도상국 학생과 함께 사회참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추진했으면 한다.
영화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https://www.netflix.com/title/80200047
월리엄 캄쾀바의 TED 강연
책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월리엄 캄쾀바의 홈페이지
http://www.williamkamkwamb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