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기획자의 노트(2)_<안녕, 돈키호테>를 읽고
"나는 창의성을 정의 내릴 수 있는가? 언감생심. 그런데도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내게 그 질문을 해 왔다. 물론 내가 창의적이라 생각해서 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광고인이라는 나의 직업 때문이었다. 어쨌든 나는 대답해야 했고 곰곰이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었다. 그 세월이 30년이다. 생각할수록 명확해지는 한 가지가 있었다. 창의력은 발상이 아니라 실행력이라는 사실. 생각하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정말 어려운 건 그 생각을 실행하는 힘이다. 그 힘에는 반대를 무릅쓸 용기, 고집, 무모함, 끈기 등이 포함된다. 말하자면 돈키호테력이 필요하다."
<안녕, 돈키호테>에 실린 박웅현의 프롤로그 일부이다. 말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래 그림을 덧붙였다. 창의력에서 발상력과 '돈키호테력'의 비중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나라면 이런 그림을 덧붙일 생각조차 못했을 거다. 박웅현과 나의 사유방식 차이.
<안녕, 돈키호테>에서는 '창의력 열한 조각'의 한 조각으로 빈센트 반 고흐의 돈키호테력을 소개한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동생 태오와 함께. 돈키호테 옆에 산초 판사가 없었다면 모험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모든 돈키호테 옆에는 산초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 실행력을 갖기 위해서는 거저 주어지든 노력해서 만들든 산초와 같은 동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다. 모든 것을 믿고 눈빛만 주고받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든든한 동료를 만드는 일을 나는 잘 못한다. 그래서 실패하고 좌절한다. 살아오면서 겪은 모든 실패와 좌절의 근원에는 산초를 만들지 못한 나의 한계가 있다.
"반면 고흐의 붓질은 그리는 사람의 감정을 담았다. 아무리 단순한 사물을 그려도 그것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고, 화면이 공허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붓질이 화면을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 이진숙. "살아있음, 그 생생한 진실을 위한 분투" 중에서
한두 달 전쯤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를 보았는데, <안녕, 돈키호테>의 고흐를 읽으면서 몇 장면이 떠올라 다시 찾아보았다. 영화의 후반부, 말년에 정신병원에 들어간 고흐가 퇴소 여부를 심사하는 사제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장면이 나온다. '당신이 화가냐?'는 사제의 질문에 고흐는 "노력해 봤지만 다른 건 할 수 없어요."라고 대답한다. 고흐의 그림이 흉하다고까지 말하면서 고흐의 재능을 하느님이 주신 것이냐 묻는 사제의 질문에, 고흐는 "전 제 장점과 단점들로 그려요."라고 답한다.
평범한 일상과 인물을 거침없는 붓질로 그렸던 고흐의 그림은 그대로 그의 생각과 삶이다. 종교적으로 얘기하면 그의 '라이프 스타일'인 '영성'이다.
나의 영성을 직관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글쓰기와 기획, <안녕, 돈키호테>를 읽으며 얻은 화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