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2 시험이 어느새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사실 뭐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두 달이 그냥 훌쩍 지나가 버렸고, 달력을 보니 어느덧 11월이 눈앞이었다. 시험일이 26일이었으니 냉정하게 계산하면 남은 시간은 딱 3주 남짓. 회사 일도 바쁜데 시험 공부까지 하려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나는 아직 영주권자가 아니라 워크퍼밋 신분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영주권을 받을 때까지는 되도록 이 회사에서 자리 잡고 계속 다니고 싶었다. 그러려면 일을 열심히 해서 좋은 이미지를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노력했다. 그런데 문제는… 열심히 하다 보니 일이 자꾸 나한테만 몰린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야 '열심히 하는 사람일수록 일이 더 몰린다'는 말이 흔하지만, 왠지 캐나다 회사는 좀 다를 거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여기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매니저가 마치 타이밍을 재듯 딱 내가 한 업무를 끝낼 즈음에 새로운 업무를 귀신같이 찔러 넣는 식이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 중에는 상대적으로 여유있게 일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진짜 필요한 만큼의 업무만 받고 여유롭게 지냈다. 그걸 보니 나만 바보처럼 달리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나도 적당히 선을 긋고 업무량을 조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감사하게도 야근은 거의 없었으니 천만다행이었다.
하루 회사에서 쭉 집중해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이미 몸과 마음이 완전히 방전 상태였다. 그럼에도 또 책상 앞에 앉아서 강의를 듣거나 문제를 풀려고 하니 진짜 죽을 맛이었다. 학생 때는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 체계적으로 공부해 갔는데, 지금은 그저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급하게 훑고 넘어가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과연 이걸 제대로 이해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있는 건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런데 시험이 세 주 남았을 즈음,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다. 뭔가 시간을 더 확보해야 했다. 그때 떠오른 아이디어가 "점심 공부"였다. 원래 팀원들과 점심을 같이 먹었던 나는 양해를 구하고, 한 달 동안은 혼자 점심을 간단히 먹겠다고 했다. 그러면 최소한 30~40분은 공부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겠다고 계산한 것이다. 다행히 매니저와 팀원들도 "프랑스어 준비한다니까 화이팅!" 하며 흔쾌히 이해해 주었다. 그래서 12시가 되기 전에 살짝 일찍 식당으로 가서 후다닥 밥을 먹고, 12시 반 전에는 자리로 돌아와 책상에서 이어폰 끼고 문제 풀이를 하거나 듣기 강의를 들었다. 그렇게 점심 시간을 쪼개어 쓰니 하루에 조금이나마 공부 리듬이 생겼다.
집에 와서는 항상 비슷한 패턴이었다. 저녁을 먹고, 집안일을 어느 정도 처리하면 이미 9시는 훌쩍 넘어 있었다. 씻고 정리하는 시간을 빼고 나면 실제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두 시간 남짓. 그 시간에도 머리가 맑지는 않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억지로라도 앉아 있었다. 특히 마지막 2주는 그동안 제일 소홀했던 말하기와 쓰기 중심으로 몰아갔다. 사실 제대로 공부했다기보다는, 온라인 강의에서 제공하는 모범 답안을 나한테 맞게 조금 각색해서 그대로 달달 외우는 방식이었다. "그래, 일단 시험만 통과하자!"라는 절실한 마음이 앞섰던 것이다.
하루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게 진짜 공부가 되는 건가 싶은 회의감과, 그래도 뭔가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들어서 마음이 좀 복잡했다. 그렇게 막판 스퍼트를 올리다 보니 어느덧 시험일이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