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는 영주권 관련 법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늘 새로운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곧 새로운 법안이 통과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내용인즉슨, 퀘벡에서 첫 워크 퍼밋을 받은 지 3년이 지나면 연장할 때 프랑스어 시험 기본 레벨을 통과한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워크 퍼밋 연장이 불가능하고, 결국 회사와의 근로계약도 자연스럽게 종료되는 셈이었다. 헐… 충격. 법 적용 시기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언제든 시행될 수 있기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법안이었다.
회사는 이미 이 소식을 알고 있었고, 서둘러 워크 퍼밋으로 근무 중인 직원들을 모아 설명회를 열었다. 사실 내용 자체는 다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설명회를 열고 이야기를 듣고 나니 왠지 앞으로 이민자들에 대한 요구 조건이 점점 더 까다로워질 것 같은 묘한 불안감이 들었다. 직원들의 불만도 상당했다. 특히 워크 퍼밋 갱신이 1년 안쪽으로 다가온 사람들은 속이 바짝 타들어가 있었다. "회사 일로 바쁜데, 언제 프랑스어를 공부하라는 거냐?", "그나마 제공되는 프랑스어 수업도 솔직히 퀄리티가 너무 별로다"라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HR 직원들 역시 이해는 하지만, 당장 뾰족한 해결책은 없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게 수업의 질을 조금 개선해주는 정도일까?
사람들의 심정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된다. 마치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에게 일정 레벨의 한국어 시험을 요구하며, 기준 미달이면 워크 퍼밋 연장을 해주지 않는 상황을 떠올리면 된다. 학생이라면 모를까, 직장인은 일도 해야 하고 가족도 돌봐야 하기 때문에 그 무게감이 훨씬 다르다. 그래도 다행인 건, 듣기와 말하기 시험만 통과하면 된다는 점이었다. 독해와 작문은 점수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3년 동안 최소한 듣기와 말하기 기본 레벨조차 준비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프랑스어를 배울 마음이 없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퀘벡 정부가 이런 조건을 내거는 이유도 나름 일리는 있다. 가장 큰 고민은, 많은 이민자들이 영주권만 받고 밴쿠버나 토론토로 떠나버린다는 점이다. 실제로 예전에 프랑스어 기준이 느슨했을 때는 이런 일이 흔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주보다 이민자 유입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곳은 기본적인 서비스업조차 프랑스어 없이는 일하기 어렵다. 결국 퀘벡 정부가 원하는 건, 그냥 영주권만 따내고 떠날 사람이 아니라 이곳에 정착해 살아갈 의지가 있는 '진짜 정착민'인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프랑스어 실력은 필요하다는 논리다. 물론, 정부의 지나친 '프랑스어 집착'은 조금 내려놓아도 좋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나는 운 좋게도 A2 시험을 등록해둔 상태라 마음이 좀 놓였다. 물론 듣기, 말하기뿐만 아니라 독해와 작문도 다 시험을 쳐야 하지만, 어차피 언어는 제대로 배우는 게 목표이니 힘들더라도 모든 과목을 준비하는 편이 낫다.
회사에서도 매니저와 일대일 면담을 할 때 꼭 프랑스어 진척도를 확인했다. 압박하는 건 아니지만, 프랑스어를 조금 더 열심히 공부하길 바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매니저의 경험에 따르면 이런 언어 장벽 때문에 결국 다른 주로 떠나는 직원들을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내가 프랑스어를 배우고 시험까지 준비하는 걸 알게 되자, 팀원들도 "네가 준비되면 우리 다 같이 프랑스어로 대화해주겠다"라며 격려 아닌 격려(?)를 해줬다. 고맙긴 했지만 약간 부담스럽기도 했다. 사실 내 수준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알아듣는 단어도 몇 개 안 되는데 갑자기 팀 전체와 프랑스어로 대화라니! 그래도 "일단 A2 합격하면 한 번 시도해보자"라며 쿨하게 넘겼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물론, 나중엔 살짝 후회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