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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첫 프랑스어 시험을 보다

드디어 시험날이 되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시험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나는 아예 휴가를 냈다. 전날에는 듣기 감각이 떨어지지 않도록 문제를 몇 개 풀어봤다. 그다음에는 주로 말하기 준비에 집중했다. 독해나 작문은 어떻게든 써내려갈 수 있지만, 가장 취약한 듣기와 말하기만큼은 최대한 대비해야 했다. 예상 답변을 반복해서 달달 외우며 긴장을 누르려 했지만, 불안감이 계속 앞섰다. 인강 교재를 풀면서 느낀 난이도가 예상보다 상당히 높았기 때문이다.


시험은 100점 만점에 50점 이상이면 합격이지만, 영역별 과락 기준이 있어 어느 한 과목이라도 미끄러지면 끝이었다. 특히 듣기와 말하기에서 컨디션이 흔들리면 위험했다. 급하게 공부한 탓에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 시험장에 들어서야 했다. 그래도 전날에는 무리하지 않고 밤 10시쯤 마무리하고 잠을 청했는데, 다행히 컨디션은 좋았다. 평소처럼 토스트와 시리얼로 가볍게 아침을 먹고 다운타운 시험장으로 향했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 40분 정도 대기하며 듣기 파일을 들었다.


시험은 듣기–독해–작문 순으로 진행되고 이후 30분 휴식 뒤에 말하기가 있었다. 가장 취약한 듣기가 첫 과목이었는데, 막상 시험을 시작하니 충격적으로 쉬웠다. "뭐지? 이게 다야?" 교재에 비해 난이도가 훨씬 낮았다. 그제야 알았다. 합격률을 높일수록 장사가 되는 온라인 플랫폼답게, 교재 난이도를 실제보다 의도적으로 어렵게 만든 것이었다. 하하하 뭔가 뒤통수 맞은 느낌이…. 그동안 괜히 좌절과 스트레스만 받았구나 싶어 억울하면서도, 동시에 마음이 놓였다. 결국 듣기를 무난히 마치고 독해로 넘어갔는데, 이것도 예상보다 훨씬 쉬웠다. 교재에서는 어렵던 문법과 어휘가 실제 시험에서는 술술 읽혔고, 덕분에 자신감이 크게 올랐다.


문제는 작문이었다. 교재에서 다루지 않은 주제가 나와 당황했지만, 기본 개요를 한국어로 짜고 어디서든 쓸 수 있는 표현들을 끼워 넣으며 문장을 채웠다. 문법 실수를 최대한 줄이려 애쓰면서 답안을 채워나갔다. 시험장 옆자리에는 동양인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친구가 있었는데, 내내 한숨을 푹푹 쉬는 통에 살짝 집중이 깨졌다. 아마 부모님 등쌀에 억지로 시험을 치러 온 것 같았다. 짜증도 났지만, 그래도 이해하려고 했다. 그렇게 첫 세 과목은 전반적으로 수월하게 끝났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간단히 간식을 먹고, 남는 시간 동안에는 준비해온 말하기 예상 답안을 다시 복습했다. 문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기소개 및 면접관 질문, 다른 하나는 상황극. '쉬운 문제'를 간절히 바랐지만 역시 행운은 내 편이 아니었다. 꽤 까다로운 문제가 걸렸다. 직업소개소 상담원에게 내 장점을 어필하는 상황. 예상 문제에 없던 주제라 준비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10분 준비 후 시험에 들어갔는데, 첫 자기소개와 질문 답변은 무난히 했다. 문제는 상황극이었다. 긴장 탓인지 문제 자체를 처음에 잘못 이해해버리고 엉뚱하게 상담원 역할을 하려 했다가 당황했다. 결국 준비했던 문장들은 별 소용이 없어졌고, 즉흥적으로 말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주저리주저리 뱉긴 했지만, 솔직히 만족스럽다고는 못 하겠다. 그래도 최소한 50% 이상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 섞인 기대'를 품었다.


시험을 마치고 나서는 긴장이 풀리면서 아쉬움보다는 후련함이 먼저 밀려왔다. 10개월 가까이 쉼 없이 공부를 이어왔고, 드디어 첫 시험을 끝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고생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제 한두 달이라도 프랑스어에서 잠시 손을 놓을 수 있다는 게 더없이 기뻤다. 결과 발표는 3~4주 뒤. 마침 2주 후에는 연말 맞이로 한국에 잠시 다녀올 계획도 있었기에, 시험도 끝났겠다, 모처럼 여유로운 휴가만 생각하며 시험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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