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한 시에 지구의 한가운데에서
혼자가 된다 하더라도
이혼을 두 번했다는 한 여자 연예인이 인터뷰에서 '어차피 인생은 혼자예요.'라고 한 걸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남들은 한 번도 어렵다 하는 이혼 과정을 두 번이나 겪은 이의 해탈인가 싶어서였다. 아이를 낳고 보니 이전에는 쉽게 생각하던 이혼이라는 것이 정말 쉬운 것이 아니겠구나 싶은 게 조금은 와닿는다.
기분이 좋을 때는 이상한 몸개그를 선보이는 내 뚱뚱하고 귀여운 남편과 헤어지고 싶은 생각은 현재로선 전혀 없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가족이란 절대적인 관계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다. 조금 극단적인 예시긴 하지만, 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이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쓰레기통에 처넣고 싶은 존재이다.'라고 말했고, 가족을 아프게 하거나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사람들이 슬프게도 천지에 널려있다. 또한 아무리 소중한 나의 가족이라 해도 상황에 따라 언제든 그 관계가 변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그의 본심과 본성이 드러난다.
그냥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쓸데없는 생각이 넘쳐흐르게 되는 새벽 한 시에 말 그대로 어쩌다가 오랜만에 혼자 앉아있다 보니, 하물며 세상에서 가장 가깝다는 가족이란 관계도 그러할진대, 다른 관계는 오죽할까 싶어서이다. 세상에 절대적인 관계는 절대적으로 없다는 당연한 사실이 가끔은 위태롭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를 이루는 수많은 관계는 나라는 사람을 형성했고 현상을 유지하게 한다. 가끔은 이 관계들이 버거워서 모두 정리하고 자연인처럼 남 모르는 곳으로 가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차마 그럴 자신까지는 없는 것 같다. 이 복잡하고 모진 세상에 살다 보면 결국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위로받는 것 같다는 게 함정이다.
가끔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든다. 내 바쁜 하루가 결국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자 흘러가는 건 아닌지 경계하게 된다. 그 언젠가 조금 더 나에게만 집중하며 생각하며 살아봐야겠다 다짐한 적도 있으나, 그것조차도 부질없이 느껴지고 결국 사람에게 돌아가게 되었고 바보같이 여지껏 그것을 지키기 위해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새벽 한 시의 내가 한낮에 뻘뻘대며 돌아다니는 나에게 당부하고 싶다. 흘러가는 시간의 홍수 속에서 부딪히는 대로 정신없이 살고 있더라도 가끔은 결국 혼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염려하며 자신에게 집중하는 순간을 가지고 그에 걸맞게 선택하라고.
결국 다른 누군가가 내가 될 수는 없으니, 결국 혼자 태어나고 혼자 떠날 것을 늘 염두에 두면서 지구 위에서 그 언젠가 진짜 혼자가 되더라도 슬기롭게 살아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