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아이

이유도 모른 채 열심히 살았던

by 불주먹

집에서 학교까지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했다. 하지만 등교 시간의 버스는 출근 시간과 겹치기 마련이라 가끔 버스 기사님들은 포화된 버스를 씩씩거리며 이끌고는, 내가 서 있는 정류장을 쌩하니 지나가버리기도 했다. 결국 학교에 제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변수가 없는 가장 좋고도 미련한 방법은 그냥 걸어가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를 아끼거나 꾸미는 방법 같은 건 배운 적이 없던 나는 그저 학교에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만으로, 한겨울에도 머리를 덜 말린 채 학교까지 걸어가곤 했다. 믿기 힘들겠지만 한 번은 젖은 머리카락이 얼어붙어 고드름처럼 서걱서걱 대기도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엄마가 아닌 다른 친구들을 보고 배우며 그렇게 다니는 건 나를 갉아먹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조금은 나를 아프지 않게 하는 방법을 보고 배우고 노력하게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나 스스로 내 몸을 챙기는 것이 익숙하지가 않다.


어릴 적부터 아빠가 잦은 과음으로 편찮으시기 시작하자 엄마는 주기적으로 딸에게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가스라이팅 같은 하소연을 하곤 했는데, 그것은 대략적으로 '너희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잘되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의 자식에게는 공부 못해도 된다, 건강하면 된다며 책임 못 질 말을 하기도 했지만 정작 당신 자식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고3이 되어서 진로를 정해야 하는 시점에 경찰행정학과로 진학하겠다고 선언하자 여자는 초등교사가 최고라며 교대 진학을 강권하셨다.




그냥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것 밖엔 없어 보였나보다. 그것이 영리하지 못한 내 방식이었다. 이리 가든 저리 가든 열심히 하다 보면 여러 개의 갈림길이 내 앞에 열릴 것이고, 난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 무작정 믿었다. 결과적으로 역시나 대학 입시란 내 뜻대로 되는 만만한 것이 아니었고, 결국 수시에 다 떨어지고 정시에서 겨우 교대에 턱걸이로 합격하게 되자, 그냥 적당히 이름 있는 학교에서 날 받아주기만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이루어져 기쁘기만 했다.


교대에 붙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과외를 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던지라, 적당히 학원 한두 군데를 다니며 스스로 해내야 했고 특히 영어와 수학은 나보다 더 뛰어난 친구들이 많아 보였다. 학교로 걸어가며 머리카락이 얼어붙던 그런 날에도 손에는 직접 정리한 영어 단어노트를 외우며 걸어갔다. 쉬는 시간에는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 아까워 참기도 했다. 급식 시간에 친구들과 밥을 먹으며 수다 떠는 것조차 사치로 느껴져 혼자만 후다닥 먹고 교실로 올라오기 일쑤였다. 그런 나를 보며 친구들은 서울대라도 갈 것 같다며 칭찬하거나 조금 부정적인 의미로 놀라워하는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난 중학교 때도 수학 단과학원을 다닌 것 외에는 선행학습을 해 본 적이 없었고, 타고난 머리도 뛰어나진 않아서 그 정도의 성과를 내진 못했다.


자랑을 하고 싶은 생각은 아니고 그 노력들을 폄하하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사실은 오히려 조금 꺼내놓기 민망한 기억이기도 하다. 급식줄을 서 면서도 영어 단어를 외우던 모습 같은 건 나 스스로에게는 후회 없는 노력이었는지 몰라도 다른 친구들에게는 딱히 보이고 싶지는 않은 '별난 모습'같았다.


더 큰 문제는 내가 그렇게 독하게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엄마의 말을 듣고 주입이 되어버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진짜 그저 경찰이 되고 싶었던 것이라면, 굳이 그 가기 어렵다는 경찰대학만을 목표로 하지 않았어도 될 것이다. 꼭 교대에 가야할 필요도 없었는데. 그때 친구들과 조금 더 이야기하며 즐겁게 지냈다던지, 조금 늦더라도 괜찮으니 머리를 말리고 따뜻하게 학교에 갈 수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순간부터 '최선을 다해서 살라'는 말이 젊은이들에게 각광받지 못하게 되었다. 나도 언젠가 내 딸에게 혹시 하고 싶은 것이 생긴다면 스스로 후회하지 않을 만큼 해보라고는 하고 싶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자신에게 너무 혹독하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교대 진학에 성공하고, 교사가 되었지만 현시대의 교사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직업으로 인해 행복을 누리지만은 못한다. 오히려 과거의 노력에 안주하며 '내가 이러려고 그 고생을 하면서까지 교사가 됐나'하는 조금 허탈하고 안일한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보면 한심해 보일지 몰라도, 내 에너지의 총량을 이미 다 소비한 듯이 지금의 나는 다소 무력하고 무기력해 보인다.


앞으로는 '지금'이 즐겁지 않다면 너무 열심히 살지는 않으려고 한다. 인생의 결과와 점수는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그저 하루를 묵묵히 걸어 나간다. 옆길로 새지도 않고 요령이나 게으름 피우지 않으며 나아가는 일조차 쉬운 일이 아니라고 느낀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우리 남매에게 주위를 둘러보며 지혜롭게 (거기에 철이 덜 든 본인의 아내도 좀 챙겨가며) 살라 하셨다. 이제 나는 나를 아끼기로 했다. 어떤 방식으로는 그 어느 곳에도 나를 갈아 넣지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그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묵묵히, 하지만 즐겁게, 가끔은 일탈도 하며 그렇게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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