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태깡이 아른거린다.
하루를 버티게 하는 오늘의 일 분
부처님께서는 생즉고, 즉 산다는 것은 곧 고통이라 하시었다.
고등학교 때 윤리 수업시간에 배운 이 말이 거의 15년이 흐른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걸 보면 그때도 나름대로 힘들었던 건가 싶다. 억지로 아침잠을 깨서 하루를 시작할 때부터가 이미 고통의 서막이다. 내 의지대로만 되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전에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건가도 싶다. 온갖 노동으로 지친 하루의 끝에 눈과 손가락만 움직이면 원하는 걸 보여주는 작은 세상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난 하루를 버텨내며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순간에 이 부처님의 말씀을 곧잘 떠올린다. 이상하게도 위안이 된다. 어차피 고통스러운 것이 인생이라니. 그렇다면 기쁨과 행복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당연하지 않으므로 우울해질 필요가 없다. 내 인생이 늘 기쁠 수만은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건 받아들이는 마음이 넓어진다.
오늘 역시도 쉽지는 않았다. 추간판탈출증, 흔히 말하는 허리디스크가 터진 적이 있던 내가 또다시 며칠 전부터 허리에 탈이 나서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소리를 내지르고 싶을 만큼 괴로워했고, 덕분에 태어난 지 10개월 만에 10kg에 육박한 자이언트 귀염둥이 나의 아기를 거의 안아주지 못했고, 그럼에도 하루를 잘 보내고자 외출해서는 37도의 무더위 속에서 분주하게 땀 흘리며 다녀야 했다.
그러다 마주친 이웃 할머니의 따님 내외께 그래도 먼저 인사를 건네었다. 이 더운 날에 홀로 계신 할머니를 챙기려 들른 두 분이 좋아 보여서 그냥 평소보다 한 톤 올려 인사를 했더니, 몇 번 보지도 못한 내게 갑자기 환히 미소 지으시며 '이거 한번 드셔보세요. 구하기 힘든 거예요.' 하며 먹태깡 한 봉지를 내미셨다. 예전 초창기 허니버터칩의 품귀 현상에 버금가는 먹태깡 열풍이 느껴지고 있었건만 이걸 이렇게 구할 줄이야. 아니, 이걸 이렇게 기뻐하는 얼굴로 주시다니. 아직 먹어보지도 못한 먹태깡보다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며 즐겁게 건네는 그 마음이 더 감사하게 느껴져서일까, 자려고 누운 새벽에 오늘 그 먹태깡 봉지가 아른거린다. 정확히는 그 순간이 아른거린다.
사모하는 박해영 작가님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도 "날 추앙해요."에 버금가는 주인공 염미정의 명대사가 나온다.
"하루에 5분만 숨통 트여도 살만하잖아.
편의점 갔을 때 내가 문 열어주면, '고맙습니다.' 하는 학생 때문에 7초 설레고, 아침에 눈 떴을 때 오늘 토요일이지? 10초 설레고.
그렇게 하루 5분만 채워요.
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사는 법."
오늘 먹태깡은 내게 그 중 무려 일 분 이상의 산뜻한 기분을 선사했다. 상대방의 기쁜 얼굴을 기대하며 선사한 누군가의 선의가 느껴져서 참 고마웠다. 자기 전 누워서 아른거리는 오늘의 순간들이 내일을 또 버티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