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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탕과 해신탕의 차이
몰랐던 내가 잘못인가
by
불주먹
Jul 15. 2024
오늘은 남편의 생일이다.
어제저녁 눈물의 미역국을 끓여놓고 오늘 아침 출근을 했다.
생일 축하의 메시지는 보내지 않았다.
왜냐면 난 지금 아직 화가 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어제 벌어진 일명 해신탕 사건
때문에!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하자면 일주일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남편에게 이번 생일맞이 처가식구들과의 식사 메뉴는 무엇으로 하겠냐고 물었다.
생일자이니 당신이 원하는 메뉴로
맞춰 주리 하면서!
그는 비싸서 평소에 잘
못 먹는
(랍스터 포함) 해물탕집에 가자고 했다.
Why not? 무려 당신의 생일인걸?
예약을 하려 4일 전부터 전화를 했는데..
문제는 이 집이 장사를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식사예정일은 일요일이었고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하루에 두 번씩 영업시간에 맞춰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고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근처에 지나가면서 보니 역시나 문을 열지 않았다.
가족 회식 예정일인 일요일이 하루 남게 되자
나는 다른 메뉴를 생각해야만 했고,
남편은 이제 돌이 막 지난 쌍둥이 조카들이 가기 좋은 중국요릿집에 가자고 했다.
일단 처음엔 알겠다고 하긴 했는데,
그 집은 가족 회식 때마다 자주 갔던 곳이기도 했고
참석하기로 한 나의 친정오빠에게
메뉴를 변경하여
중국집에 가야겠다고 했더니 반응이 뜨뜻미지근..
거기다 남편이 원했던
해물이 들어간
탕
(?)
을 먹여주고 싶었던 나는 또 다른 맛집이 있는지
열심히 서칭을 해보았고, 그 와중에 알게 된 한 식당!
그 식당은 얼마 전 친정엄마께서 계모임으로 다녀오신 곳이었는데
어머니는 백숙을 드셨지만
알고 보니 알아주는 해신탕 맛집이었다.
오케이.. 이거야.. 낙찰!
남편에게 말했더니
처음엔 쌍둥이 조카들을 데리고 가기 어렵지 않겠냐고 했지만
막상
친정오빠에게 물어보니 괜찮다고 해서
그럼
가족들에게
보양식
먹일 겸
남편이 해신탕을 좋아할 것 같기도 하고
남편에게도 여기로 가자고 했더니
알겠다고 했다.
(이때
남편은 미용실에 있던 상태라 카톡으로 대화를 했는데, 답장으로 보았을 때
기분이 좋은 말투였고 난 나의 사려 깊은 메뉴 선정에 스스로 쪼끔 감탄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대망의 일요일은 바로 어제..
그런데
시작부터
뭔가 좀 조짐이
안 좋은 것이
늦은 오전부터 비가 많이 오기 시작했다.
아니야.. 괜찮아! 정신 승리를 하고 길을 나섰는데
식당에 가까워질수록 쏟아지는 폭우..
뭐 어떻게든 다들 도착해서
우여곡절 끝에
식당에 들어서긴 했는데
하루 전에 예약을 해서인지
룸이 아닌 홀에 자리가 있었고
비가 와서 주차도 정신이 없었고
두 돌
에 가까
운 우리 딸내미는 오늘따라 더 활발하시고
우리 귀여운 쌍둥이 조카들이 앉을 아기의자는
다른 테이블에서
이미
한 개를 사용하시는 중이라
하나가 모자란 상태..
결국 식당사장님의 승낙을 얻어
유모차를 한대 더 공수해 오고..
정신이 없었지만 어쨌든 마음을 가다듬고
겨우 모두 자리를 맞춰 앉는데
많이
참았던 게 터진 건지
파워 J (심지어 이 사람은
그중에서도 갑인 INTJ다) 생일자 남편은
모두에게 들리라는 듯 정색을 하며 큰 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내가 이래서 중국집으로 가자고 했잖아."
그 순간 분위기는 조금 얼어붙고,
우리의 쾌활한 새언니는 분위기를 풀어주려 열심히 이런저런 대화를 해주시고
친정오빠는 웃으면서 너네 집에 가서 싸우지 말라며 다독여주고
친정
엄마는
왠지 속에선 열이 올라오시는 듯 하지만
참으시는 게 보인다.
화를 삭이려 화장실에 다녀와서
남편에게 조용하게 말했다.
꼭 사람들 앞에서 아내에게 꼽을 주어야 속이 풀리느냐고. 그러지 말라고.
그러자 지지 않고 작은 목소리로
(하지만 왠지 들릴 것만 같은)
대응하는 그를 보며
여기선 더 이상 대화해선 안 되겠다 싶어
일단 식사를 잘 마무리하고 집에 와서는
서로 대화하지 않았다.
남편은
조금 있더니
괜히 이런저런
시답잖은 말을 건넸지만
일단 애를 재우고 보자 싶어 답을 하지 않았다.
우리 귀여운 딸 앞에서 싸우면 안 되니까 일단 인내..
아이를 재우고 난 뒤
초저녁부터 잠이 든 (아니 자는 척하는
듯한)
남편을 깨워 본다.
이 사람은 주말 내내 겨울잠 자듯 깨어있는 시간이
더 적으므로 대화하려면 깨울 수밖에 없다.
꼭 그렇게 사람들, 그것도 처가 식구들 앞에서 면치레하려고 아내에게 면박을 주었어야 했냐고.
내가 비가 그렇게 쏟아질지 어떻게 알았으며
차라리 당신이 넉살 좋게 식구들에게
"아, 이렇게 고생하시게 해서 어떡하나요 하하" 해놓고
집에 와서 나에게 타박을 좀 했어도 어떻겠냐고.
그랬더니 이 사람 하는 말은
"그 집은 내가 원하던 해물탕 집이 아니다. 내가 그리고 중국집으로 가자고 하지 않았냐."
이런 이상한 말을 한다.
순간 더 복받친 나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당신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얘기하는 거라고 한바탕 몰아붙인다.
그는 말이 없고, 나는 문을 닫아버리고 나왔다.
예전에
결혼하고 나서
첫 시댁 명절 모임에 갔을 때에도
시아버님께서
본인 맘에 안 드는 행동을 하신다고
도련님과 동서, 그리고 내 앞에서
아버님에게 큰 소리로 무안을 주던 생각이 났고
어디 가서든 자기 기분대로
행동해 버리는 그 모습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이건 너무 미성숙한 행동이다.
어떨 때는 내가 왜 이런 사람과 결혼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후회가 들 때도 있었다.
말해도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물론 내 잘못도 있다.
더 편했을
중국집에 가지 않은 내 잘못.
해물탕과 해신탕의 차이를 몰랐던 내 잘못.
이런저런
입장들 사이에서 갈등하고
한번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닥쳐오는 이 후폭풍은
자주 있는 일이긴 하지만
매번 닥쳐올 때마다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난 결혼생활 및 친정살이 (우리 집은 2층에 친정엄마가 계시고 1층에 우리 내외가 함께 산다)
만 3년에 접어든 베테랑으로서 이 정도는 무난히 이겨낼 깡다구가 있다.
그러나
매일 아침 출근하고, 퇴근하고, 아이를 돌보고,
저녁엔 남편과 아이를 챙기는 슈퍼 워킹맘으로서
생기는
여러 가지 일과 스트레스를 풀어날 곳이 마뜩잖다.
맘카페를 살펴보면 (난 댓글조차 쉽게 안다는 눈팅족인데.. 브런치에 와서는 내
공간처럼 이렇게 떠들어제낀다.)
나보다 더 힘든 생활을 하는 엄마들이 참 많던데 모두 힘을 냈으면 좋겠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자기 전에 넷플릭스를 보며 피로를 녹여내야지.
오늘 퇴근하고 진심으로
남편의 생일을 축하해 줄지는
아직 내 마음이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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