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늘 그렇게 갑작스럽게 온다
익숙할 수가 없다고
어쩌면 그게 내가 볼 수 있는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에게는 더 이상 우리 집 마당에 나온 쥐를
삽자루로 때려잡으시던(쥐에게는 미안했지만 무엇을 주워 먹었는지 이미 반은 의식을 잃어가던 상태였다)
그 생기는 간데없어 보이는 채
한글날 공휴일 시간을 비워
평소와 달리 말쑥하게 차려입은 채
담담히 찾아온 사위와
조용히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으셨다.
그 모습을 열린 문 앞을 지나가며
얼핏 보게 된 나는
할머니가 그 길로
병원에 입원하실 거란 사실은
그땐 미처 알지 못했었다.
처음 이 집에 이사 왔을 때
할머니는 어색함을 깨고 싶으셨는지
약간은 귀가 어두우셔서 인지
소리가 마주댄 벽을 타고 넘어올 만큼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곤 하셨다.
그렇게 할머니와 내가 1층에,
엄마가 2층에
세 살림이 한 대문 안에 살게 된 지가
벌써 2년이 지나왔다.
그동안 우리 아이가 태어났고
할머니는 넉넉지 않은 형편이시면서도
혹여 부담드릴까
일부러 알리지 않았음에도
아기 돌이라며
만 원짜리를 굳이 손에 쥐어주시고
아기 먹이라며
요플레나 요구르트, 빵 같은 것들을
초인종 없는 우리 집 현관 앞에
놓아두곤 하셨다.
그러던 할머니가 처음 병원에 입원하신 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작년 말쯤이었는지
올해 초였는지
갑자기 우리 집 대문을 열고
난데없이 119 구급대 분들이 들어와서는
배를 움켜쥔 할머니를 모셔갔는데
할머니는 혹여 우리 식구들에게
민폐가 되실까 봐
내게 전화로 도움 요청 한 번 하지 않으신 채
자녀분들에게 직접 연락하시곤 했고
차마 제각기 가정이 있어
곧장 달려오기 힘들었을
자식들은 우선 급한 대로
119에 도움을 요청한 후
병원으로 온 것 같았다.
그러던 우리 아이가 두 돌을 지나고
이틀이 되던 날부터
지금까지 보름째
할머니의 집엔 더 이상 불이 켜지지 않고 있다.
엊그제 할머니의 따님이 찾아와
할머니가 대학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고
병명은 담도암이며
퇴원하시더라도
요양병원으로 모셔야 할 것 같으니
엄마에게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런 날이 올 수도 있겠다
직감했음에도
당황한 기색을 감추기 어려웠다.
저녁밥을 짓다 소식을 들은 엄마가
1층으로 내려와 내게 말을 전했고
가만히 아이를 챙기며 대화를 이어가던 나는
엄마가 다시 2층으로 올라간 후
정말 갑자기 차오르는 어떤 느낌 때문에
방으로 들어가 엉엉 소리 내어 울어버렸다.
며칠 전 할머니가 몸이 안 좋아
택시를 불러 동네 병원에 간다 하셨을 때
일정이 있다는 이유로 한참 망설이다
끝내 한 번 모셔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돼서.
저녁즈음 할머니가 현관문을 열어놓고
홀로 끼니를 챙겨 드시며 내던
양푼 밥그릇 긁는 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한다는 것이 슬퍼서.
해 질 녘이면 집 앞 공원에서
친구분들과 모여 놀다
지팡이를 짚고 올라오며
때마침 귀가하는 우리를 보고
우리 공주 왔냐며 반기던 할머니의 미소와 목소리를
갑자기 볼 수 없다는 게 황망해서.
어둠이 내린 저녁, 대문을 밝히던
늦은 밤 할머니 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볼 수 없다는 게 쓸쓸해서.
아이가 듣지 못할 만큼의 소리를 내어 울었다.
실컷 울고서
엄마가 받아 둔
할머니 따님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보증금을 돌려드리기 위해
언제가 기한인지 따위를 이야기하며
(엄마는 할머니가 나가시면 더 이상 세입자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혹시 병문안을 가도 되는지 여쭈었으나,
부어버린 얼굴과 몸을 보이기 싫다며
지금은 모두 받지 않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르겠다.
할머니를 다시 뵐 수 있을지.
혹여나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의 할머니를 보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대부분의 어떤 이별은 이렇게 갑작스럽다.
노랫말처럼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할 수 있겠는가.
지나온 이들을 떠올리는 일은
오늘의 밤공기처럼 스산하고 저릿하다.
아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