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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굽기 Aug 13. 2018

사계절을 온통 서늘하게 보내는 잘 알려진 방법

무서운 이야기가 너무너무 좋은데 어떡하죠.

아이스크림은 여름에 먹는 게 제맛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내 상식 선에서는 부정 못할 것 같다. 아무래도 차가운 건 더울 때 먹어야 좀 더 감격스러운 맛이 생기는 법이니까. 그걸 부정하는 것은 한겨울의 전기장판이나 짠 음식 뒤의 단 디저트 같은 우리의 전통적 감각을 무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름에 뭐가 어쨌든 겨울에 먹어도 아이스크림은 맛있다. 이게 여름보다 뭔가 더 안정적인 느낌도 있고 왠지 고향에 온 기분이고 하여튼 겨울 아이스크림은 겨울 아이스크림만의 맛이 있다. 푹푹 찌는 한여름에도 따뜻한 물 샤워가 그 나름대로 따땃하고 나른하니 기분 좋은 것과 비슷한 이치다. 


마찬가지로, 납량특집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거기에서 연상되는 전형적이고 잘 팔리는 이미지가 있기는 하지만, 무서운 이야기는 겨울에 들어도 마찬가지로 즐겁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무서운 이야기는 봄이나 가을에 들어도 즐겁다. 더 나아가 내가 확신하건대 아마 계절구분이 없는 나라에 가서 들어도 마찬가지로 재미있을 거다. 당장 내 눈 앞에 귀신이 웅크려 앉아있지만 않다면.


아이스크림이 계절 상관없이 맛있는 것이 아이스크림이라는 음식 자체가 원체 맛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듯, 무서운 이야기가 납량특집이라는 타이틀을 달지 않더라도 즐거운 이유는 무서운 이야기 자체가 원체 재미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이야 갈리겠지만, 뭐 콜라를 못 먹는 사람도 많은데 무서운 이야기 못 듣는 사람이 있는 게 이상하지는 않다.


여름밤에는 역시 아이스크림과 선풍기와 납량특집 괴담이 최고다.


무서운 이야기중에서도 초자연적인 종류의 호러를 좋아한다. 살인마보다는 귀신이나 괴물이 좋다는 이야기다. 무서운 이야기의 참맛은 픽션성에서 나온다. 나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세상의 극한을 느낀다고 하면 적절할런지 모르겠다. 일단 살면서 귀신 비슷한 걸 본 기억은 있어도 귀신에게 잡혀가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범죄자는 너무 많다. 길 가다가 한 명쯤 마주쳐도 크게 특이한 건 아니고 실제로 만나본 적도 있다. 그런 이유로 범죄자가 등장하면 그때부터 그 이야기는 호러 픽션이 아니라 도시 생존 다큐멘터리가 되어 버린다. 그런 생생함까지 원하지는 않는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겁은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방금 말했듯이 나는 초자연 호러 특유의 픽션성이 좋다. 허무맹랑해서 좋다는 이야기이다. 현실성 없는 게 제맛이랄까. 판타지 소설 읽는 느낌이라면 딱 맞을 것 같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자극적인 종류. 호러 쓰는 작가들은 항상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둔다.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게 호러의 핵심이니까. 특히나 인터넷 썰 종류들은 더더욱 그렇다. 


사실 공포영화만 생각해 보더라도 그렇다. 공포 영화들은 다른 장르에 비해 평균적으로 시나리오의 개연성이 눈에 보일 정도로 확연히 떨어진다. 물론 시나리오가 굉장히 잘 짜여 있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보통 호러 작품들의 시나리오는 아무튼 귀신이 나타났고 아무튼 죽었다인 경우가 많다. 영화학이나 그런 걸 배운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답을 내려보자면 핵심이 자극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평가에도 반영된다. 그레이브 인카운터나 컨져링같은 이야기들이 엄청나게 꼼꼼한 개연성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는 게 아니듯. 무서워서 좋은거다. 솔직히 좀 변태같은 장르긴 하다.


이런 게 우스우면서도 그런 변태성이 또 즐겁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 그게 또 나를 무섭게 한다는 점이 좋다. 다른 사람도 그렇게 느끼는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그게 좋다. 납득 안 되는 판타지와 자극적인 설정들.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자극에 넋 놓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 없다. 특히 나는 내 안에 싸구려 평론가가 들어앉아서 뭘 봐도 개연성을 따지며 칼춤을 추고 있기 때문에 보통의 이야기에는 금방 지루해진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을 거다. 좋게 말해 눈이 높아진 거고 나쁘게 말해 스노비즘에 찌들어 버린 거다. 하지만 호러에서는 다르다. 무섭고 잔인하면 장땡이다. 평론가정신 없이 스릴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다. 물론 이것도 어느 정도는 잘 만들었을 때 이야기긴 하지만. 


그래서 귀신 이야기가 좋다. 괴물 이야기가 좋고 초자연현상 이야기가 좋다. 애초에 말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되는 이야기들이고 그래서 즐거운 이야기들이다.


골목길 스케일의 이야기들은 너무 싸늘하게 다가와서 싫다.


이렇게 공포 애호가인 척 실컷 말해놓고 말하기에는 좀 우습지만 나는 겁이 많다. 그것도 엄청. 놀이공원에 있는 어린이용 후룸라이드도 너무 무서워서 못 타는 사람이다. 예전에 동생에게 놀이기구 못 탄다고 비웃음당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내 동생이 초등학교 1학년이었나 2학년이었나 초등학교를 안 들어갔었나 그럴 거다. 동생은 수능을 앞두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동생보다 겁이 많다. 그냥 난 다 무섭다. 불이 꺼지면 무섭고 불이 너무 밝게 켜져 있어도 무섭다. 발 밑이 안 보이면 무섭고 발 밑이 너무 잘 보여도 무섭다. 높으면 무섭고 너무 밑으로 내려가도 무섭다. 말도 안 되니 뭐니 해놓고 귀신 엄청 무서워한다. 내일 아침에 머리감을 때 눈 감고 있는 거 무서워서 머리 빨리 감을 거다 아마. 무서운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서 무서운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을 못 마시면서 술을 짝사랑하듯 겁이 많아도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성격이 애초에 글러먹은 건지 재능이 없는 것만 골라서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어 팔자인걸. 이 괴상한 자극에 중독된 이상 인터넷에서 괴담을 찾아 헤매고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공포 영화를 찾아 헤매는 삶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고서 영화 한 편 보고서 한 일주일 동안은 세상에서 제일 빠르게 머리를 감겠지.


사람은 살면서 겁이 없어진다는데 나는 겁이 날이 갈수록 많아진다. 군대를 다녀오면서 입대 전에는 한 번도 눌린 적 없던 가위를 자꾸 눌리게 되어서 가위눌림에 대한 공포심이 많아졌다. 그런데 인터넷에는 가위눌림 공포 썰이 너무 많고, 나는 그걸 또 계속 찾아본다. 그러고서 밤에 가위눌릴까봐 겁먹고. 기구한 취미생활이다. 그걸 또 즐거워하는 나도 참 기구하다. 


이러면서 또 오늘 밤에는 점프스퀘어 짤방은 보지 않았으면 하고 아마 또 탐방을 시작하겠지. 일단은 여름이라 더 즐거우니까. 납량특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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