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변하는 것들에 관하여
이 게임은 용량이 3GB밖에 되지 않아 하드에 부담을 거의 주지 않습니다. 요즘 이 정도로 작은 용량을 차지하는 게임을 찾아보기가 힘들죠. 이건 장점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유튜브에서 시간을 때울 겸 보고 있던 게임 리뷰 영상에서 나온 말이다. 확실히 요즘 나오는 것들 중에 용량이 그 정도면 공간을 아주 적게 차지하는 축에 속하긴 한다. 당연한 소리다. 내 기분이 조금 쌉싸름해지긴 했지만.
엄마는 어쩌다 한 번씩 하드디스크에 깔린 프로그램을 삭제하신다. 컴퓨터를 두 대 놓고 따로 쓰는 지금이야 그럴 일이 덜해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어판을 켜놓고 날 부르시는 일이 잦았다. 보통 이런 멘트다. 이거 용량이 왜 이렇게 커? 이거 지워도 되는 프로그램이야?
엄마가 ‘용량이 큰 프로그램’이라고 지칭하는 프로그램의 용량은 보통 1GB 안팎이다. 2GB가 넘어가는 경우도 드물다. 우리집 컴퓨터 두 대에는 모두 1TB 짜리 하드가 장착되어 있다. 사실 요즘은 이 정도도 적은 축이라고들 하더라마는. 용량이 수백 기가바이트가 남아 있어도 엄마에게 1GB는 작지 않은 용량이다. 사실 나도 아직 1GB 2GB에 흠칫흠칫하곤 한다.
어릴 적에 쓰던 컴퓨터에는 7.45GB 용량의 하드디스크가 장착되어 있었다. 부모님이 결혼하시면서 산 컴퓨터였고 그 컴퓨터를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썼으니, 뭐가 어찌 되었든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본 컴퓨터인 것이다. 플로피 디스켓을 넣는 구멍이 있었고 뭐. 하여튼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없는 용량이다. 그 다음으로 쓴 컴퓨터는 120GB 용량의 하드 디스크를 가지고 있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썼다. (그렇다. 정말로 컴퓨터 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던 그 세대에 우리는 그 오래된 컴퓨터를 골수까지 우려내며 써먹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게도 큰 용량은, 좀 생소하다. 이건 어쩔 수 없다. 나와 우리 가족은 조막만한 용량에 너무 친근한 채로 살아왔고 좀 큰 용량에 익숙한 나마저도 5GB 넘는 용량을 보면 한 번씩 흠칫거린다.
말이야 이렇게 하지만 사실 나는 1TB 용량에도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요즘 게임들이 기본으로 수십 기가바이트를 차지하는 것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사진이다. 쓰는 카메라가 크롭 기기라지만 그래도 셔터 한 번 찰칵에 25MB는 잡아먹는다. 카탈로그 만들고 보정본 내보내기 하고 하면 용량이 이중 삼중으로 들어가니, 결론을 내보면 사진 한 장당 60~70MB는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거다. 다행히 연사를 잘 쓰진 않지만 그래도 한 장면에 너댓 컷씩은 찍으니 수십 기가는 애들 장난도 못 되는 수준이다. 한 번 포맷을 잘못 해서 다 날아간 적이 있기에 망정이지 (이 말을 쓰는 게 웃기긴 하다.) 안 그랬으면 용량난에 허덕이고 있을 뻔했다. 사실 그렇다고 해서 허덕이고 있지 않은 건 아니지만.
옛날에 7.45GB, 하다못해 120GB 짜리 하드를 썼을 적이면 생각도 못 했을 일이다. 그 시간동안 세상의 표준이 바뀌었고, 나의 표준은 세상보다 천천히 움직이긴 했지만 서서히 보조를 맞추는 중이다. 단위를 보는 기준, 혹은 시선은 언제나 바뀌기 마련이다.
단위나 기준을 생각하면 돈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다. 살아온 날이 길지는 않지만, 인생사에서 돈만큼 격한 시선 변화를 겪은 게 또 없으니.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길에서 2만원 남짓을 주운 적이 있다. 그냥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이 딱 떨어져 있었다. 지금 나이 먹고도 길에서 그냥 주워버리기엔 부담스러울 돈인데 아홉 살 때는 어땠을까. 아홉 살 때의 나는 그걸 경찰서에 가져다 줄 만큼 정신이 똑바로 박혀 있지는 않았고 그냥 마음에 부담만 가진 채로 고스란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아홉 살짜리가 무려 이만 원이나 되는 돈을 가만히 간수해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그 돈을 당장이라도 주머니에서 없애 버리고만 싶었고 큰 맘을 먹고 문방구로 달려가 무려 오천 원! 이나 되는 레이저 포인터를 샀다. 오천 원이나 하는 걸 사다니. 정말로 과감한 결단이었다. 그걸 들고 집에 거의 달려오다시피 들어와 돈은 어디다 숨겨두고 어두운 빌라 계단에 쪼그려 앉아 레이저로 불빛을 비추고 놀았다. 포인터의 머리 부분을 바꿔 끼우면 빛이 어찌어찌 되어 나비나 뭐 그런 모양으로 바뀌었던 기억이 있다. 기억나는 건 나비뿐이다. 나머지 돈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그 외에도 자잘하게 돈을 주웠던 기억들이 종종 스쳐간다. 생각해 보면 인생을 통틀어 돈을 가장 자주 주웠던 시기 같다. 몇백 원, 몇천 원, 하여튼 그 만큼을 줍고서도 무슨 엄청난 돈을 주운 것 마냥 안절부절못했다. 그게 아마 아홉 살 나의 눈높이였을 거다. 오천 원이나 하는 햄버거 세트는 경사 난 날에나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던 그런 시절.
요즘도 만 원 이만 원에 벌벌 떠는 소시민이기야 매한가지지만 눈높이가 달라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사실 아직까지 아홉 살 때와 똑같은 경제관념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다.) 만 원 이만 원은 무서운 돈이지만 우스운 돈이기도 하다. 그 돈을 벌기가 어렵다는 건 아홉 살 때보다 몇 갑절 더 뼈저리게 느끼지만 그 돈을 쓰기가 쉽다는 것도 뼈저리게 느낀다.
사실 막말로 브랜드 있는 치킨 한 마리 사먹으면 이만 원은 끝이다. 그리고 내게는 치킨 말고도 돈 쓸 구석이 수도 없이 많다. 매달 사는 어라운드 잡지. 포토샵과 라이트룸의 구독 비용. 음악 스트리밍 비용. 하여튼 이것저것. 하기사 책에 쓰는 돈만 또 얼마고 거기다 취미는 어떻게 꼭 비싼 것들만 골라 하는지. 물론 내 살림에 매달 비싼 취미에 돈 쓸 만큼 헤프지도 않지만 어쨌든 확실한 건 예전처럼 전전긍긍하면서 큰 맘 먹고 산 게 오천 원짜리 레이저 포인터고 뭐 그렇지는 않다는 소리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제 나 이만 원 있다, 는 더 이상 든든한 소리가 아니다. 처량하거나 궁색한 소리지. 물론 언제까지고 벌벌 떨 금액이고, 누가 주면 넙죽 받을 돈이겠지만.
컴퓨터 용량이 그러했고 돈이 그러했듯 살면서 마주하는 단위를 바라보는 기준은 달라진다. 당연한 일이다. 변화의 이유는 셀 수도 없이 많고 변화의 양상 또한 셀 수 없이 많으며 변화하는 주체마저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냥 다 셀 수 없이 많다. 시대, 사람, 혹은 그 외의 것들.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변화하는 걸 마주보게 될까. 사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더 문제겠지.
하지만 곱씹을 때마다 기분이 약간 씁쓰름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변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고 당연한 일들에게선 대체로 쓴 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