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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굽기 Dec 31. 2018

역추산 금지의 공간

나와 너의 스무 살 남짓 자취방

군생활을 마치고 서울에서 한 학기동안 자취를 했다. 지금은 다른 주인을 찾은 이 자취방은 학교에서 걸어서 이십 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학교까지 걸어서 이십 분. 사범대나 법대 건물하고는 더 가깝고. 사실, 좋은 점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나름의 장점(일단 교통비는 안 들어가는 범위였으니까)을 제외한다면, 그 집은 아무리 너그럽게 보아도 좋은 집은 아니었다.


일단 방이 작았다. 총 면적이 화장실을 포함해 아마 세 평 정도. 빨래를 하면 넉넉히 걸어 다닐 공간이 없어 배를 홀쭉하게 하고 다녀야 했다. 옆 건물에 막힌 손바닥 두 개 만한 창이 딱 두 개 붙어 있었고 당연히 채광도 환기도 안 됐다. 환기가 안 되고 햇볕도 안 드니 당연히 공기가 습해져 화장실 청소를 하기가 무섭게 붉은 물곰팡이가 피었다. 보일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추운 겨울에 간신히 미지근한 물로 겨우겨우 샤워를 했고 그나마도 수압은 양치컵 물이나 겨우 받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뭐 얼마나 더 많은 단점을 이야기해야 이야깃거리가 다 떨어지려나. 하여튼 단점 찾기가 시골 하늘 별 찾기보다 쉬운 집이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며칠 혹은 몇 주쯤 살아 보아야 알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이었다. 여름에 처음 입주했을 때는 뜨거운 물이 과하리만치 콸콸 잘 나왔으니까. 자취 처음 해 보는 사람은 그런 거 모른다. 사실 그 당시의 순수한 내 눈에도 보일 만큼 직관적인 단점은 따로 있었다. 바로 방 한쪽의 포인트 벽지였다. 그 방 문을 처음 열었을 때, 순수하게도 나는 저 벽지만 아니면 꽤 괜찮겠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벽지가 워낙에 충격적이어서 내 다른 감각을 마비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섬광탄 같으니라고. 밝은 녹색의 배경 위에 유선 청소기 바퀴만 한 사이즈로 꽃인지, 과육인지 모를 노란색 주황색 화려한 무늬가 수놓아져 있었다. 정신을 빼놓기 충분한 화려함이었다. SNS에 그것을 찍어 올리고 내 방 벽지는 지옥에서 올라온 깔라만시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옥에서 자라는 깔라만시 과육이 실제로 어떻게 생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감이 꽤 그럴듯해서 나도 그 무늬를 자주 깔라만시라고 불렀다.


가장 놀라운 점은 내 벽지는 그 건물에서 가장 얌전한 축에 속했다는 점이다. 그나마 내 방 다른 면들의 벽지는 연두색이었고, 연두색과 밝은 녹색은 그렇게 튀는 색조합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이야기다. 다른 방들이 워낙에 대단했으므로. 


어느 날, 다른 방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 인터넷에 건물 이름을 쳐봤다. 그러자 집주인이 올려놓은 입주 광고가 나왔다. 그 안에 실린 사진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남자 방에는 하늘색 배경에 흰 구름과 비행기가 앙증맞게 새겨진 패턴 포인트 벽지가 있었다. 당연히 각각 유선 청소기 바퀴 크기였다. 다른 벽의 색깔은 베이지색. 여자 방에는 분홍 배경(그냥 대충 톤다운 된 분홍도 아니고 아동 완구에나 쓰일 법한 공주님 핑크 분홍이었다)에 동일 사이즈의 곰인형이 패턴으로 그려져 있었다. 마찬가지로 다른 벽의 색깔은 베이지색이었고. 정말이지, 하나님은 안 믿지만 하나님 맙소사.

딱, 누워서 맥주 마실 만큼 큰 공간. 낭만을 불어넣으면 몰라도 사실 일상을 누리기에 충분한 크기는 아니다.

요약하자면, 여러 모로 품위 있는 삶과는 거리가 먼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 건물이 이 주변에서 유독 글러먹은 방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학교에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한 범위 내에서,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로 감당할 만한 가격을 가진 방들은 대부분 통상적인 삶의 기준에서 보기엔 글러먹은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므로. 나름 발품을 판 뒤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니까, 대다수는 그렇게 산다는 이야기다. 저 구려먹은 자취방 이야기를 하면 자취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아, 그거 무슨 느낌인지 알아, 하는 내용으로 말을 이었다. 오죽하면 포인트 벽지나 체리 몰딩이 일종의 심벌이 되었을까.


그 나이대 자취생들은 (집이 꽤 부유해서 널따란 집을 구한 것이 아니라면) 빨래를 널고 방 안에서 배를 홀쭉하게 만들어 슬금슬금 지나다닌다. 이건 금전적 문제를 제외한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건 말하자면, 얼음왕자라는,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소설에 나올 법한 별명을 가진 사람도 자취를 시작하는 순간 빨랫대 앞에서는 숨을 흡 들이쉬고 홀쭉이가 되어 다닌다는 소리다. 칼 같은 디자인 감각을 가진 미대생도 핑크색 바탕에 곰인형 패턴을 가진 집에 산다는 소리다.


내 방은 건물의 4층이었고 그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그래서 등교를 위해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같은 건물의 사람들을 볼 때가 잦았다. 어차피 같은 학교였고 등교시간은 다들 거기서 거기였으니까. 마주치는 사람들의 벽지는 아마도 분홍 곰인형 혹은 하늘색 비행기였을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그 사람들에게서 전혀 그런 벽지를 읽어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도 나에게 깔라만시를 읽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건물 사람들은 다들 한껏 시크한 표정을 하고 문 밖으로 걸어나왔다. 나 또한 그랬다. 그 집의 벽지를 얼굴위에서 벅벅 지우며 20분을 걸어 학교에 갔다.

한껏 도회적인 느낌의 표정을 짓고 학교에 갔다.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사실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일이다. 자취방이 어떻다고 해서 그게 얼굴에 그대로 드러날 리가 없다. 하지만 뭐랄까, 그곳의 느낌을 애써 더 확실하게 지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괜히 슬펐다. 나라는 사람이 내 방처럼 보이길 원치 않으니까. 나는 내 방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가끔 학교에서 한껏 도회적인 모습으로 다니는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의 자취방을 생각하곤 한다. 그들의 방은 아마 보통 네다섯 평 남짓한 사이즈일 것이고 커 봐야 여섯 일곱 평크기일 것이다. 그 작은 공간 안에는 높은 확률로 이해할 수 없는 포인트 벽지와 체리색 몰딩, 삐걱거리는 가구들이 들어차 있을 것이다. 나는 그 기품 있는 사람들이 의식적인 역추산 없이는 상상해낼 수 없는 그 공간에 들어가 잠을 잔다는 것이 괜히 슬펐다.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나는 한껏 차려입고 학교에 가서 사회의 정의니 평등이니, 혹은 문학이니 언어니 하는 것들을 배우고 말하다 그 곳으로 돌아갔다. 나와 같은 표정을 덮어쓴 사람들과 함께였다.


자취를 시작한 뒤 지방의 부모님 집에 들른 첫 날이었다. 나는 우리 집의 화장실이 너무 커서 놀랐다. 그 집이 그렇게 넓은 집도 아닌데. 그냥, 화장실이 너무 컸다. 그래서 기분이 이상했다. 화장실이 너무 커서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누가 내게서 이 화장실의 크기를 읽어낼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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