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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굽기 Mar 23. 2018

지름신만큼 솔직한 분이 또 없지

우리의 위시리스트가 솔직하게 말해주는 이야기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샀더니 꽤 괜찮아 보이는 다이어리가 덤으로 딸려 왔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다이어리가 생기니 어찌어찌 활용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마지막으로 일기를 쓴 것이 몇 달 전의 이야기였다. 아무리 매번 똑같다지만 신년은 신년대로 신년인 것인데. 뭐라도 다시 시작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 다이어리도 생겼겠다 올해는 뭐라도 기록을 좀 남겨 두자 싶어 내지 구성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위시 리스트라는 페이지가 내 이목을 끌었다. 칸 별로 번호를 붙여 올해의 구매 목록을 정리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페이지 뭐 그런 종류인 모양이었다. 나는 다이어리를 잘 몰라 이 항목이 다른 다이어리에도 흔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게는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아르바이트나 군대 월급 같은 걸로 작게나마 소득이 생긴 이래 나름대로 적극적인 소비자였던 것 같다. 당장 뭘 구매하지 않더라도 뭔가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꾸준히 있어왔으니까. 그런데 동시에 또 그게, 그렇게 체계적이지도 못했다. 예상치 않은(충동구매도 포함시키기 위하여 사용하는 표현이다. 압도적이니까.) 지출들은 언제나 내 출금내역의 압도적 지분을 차지했다. 다시 말해 구매 목록에 솔리드함이라고는 하리보 젤리 미니 사이즈 만큼도 없었다는 소리다.


이러니 저러니 그 페이지에 흥미가 생겨서 그곳에 뭘 적을지 고민을 좀 해보기로 했다. 아무리 다이어리라는 게 내 맘대로 쓰는 거라지만, 한정된 지면이란 게 있으니 거기를 만족스럽게 채우는 데에는 일정한 기준 정도는 필요한 거니까. 당장 길가다가 왕꿈틀이 젤리가 사먹고 싶었다고 거기다 적을 수는 없는 노릇인 법이다. 생각해볼 지점은 여기에 있었다. 왕꿈틀이와 왕꿈틀이가 아닌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고민의 결과 나는 구매 욕구의 지속성을 그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어떤 것들은 머릿속에 번뜩이며 찾아와 더 빠른 속도로 잊히는가 하면 어떤 것들은 은근슬쩍 생각나기 시작해 몇 개월간 장바구니를 떠나지 않는다. 지름의 욕구가 무슨 소중한 글감이나 아이디어 같은 것도 아니고, 급하게 지나가는 친구들을 굳이 붙잡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대충 보내면 돈 아끼고 좋다는 생각은 덤이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장바구니에 남아 있는 것들은 그 자체로 적어 놓을 의미가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눈에 반하는 데는 이유가 없지만 천일의 연인에게는 특별함이 있는 법이다.


고민을 끝내고 대충 목록을 추려보니 항목이 아래와 같았다.


넓은 책상, 기계식 키보드, 모니터, 의자, 소형 스피커, 그래픽카드


저게 뭐야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놓은 것들을 보고 나서 나는 솔직히 좀 놀랐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구매 리스트가 뭔가를 말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목록은 기대 이상으로 솔직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나의 지향점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나는 비좁은 책상 공간, 그리고 가뜩이나 좁은 그 공간을 잔뜩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스피커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차였다. 사무실에서 쓰던 듀얼 모니터에 어느새 익숙해져서 집의 싱글 모니터 환경도 좀 갑갑했다. 식탁 의자를 가져다 컴퓨터 의자로 쓰려니 허리가 뻑뻑한 건 오래 된 이야기. 구매한 지 5년이 된 그래픽카드는 기분전환으로 게임이라도 하려 할 때 되려 속을 씁씁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연식이 오래된 멤브레인 키보드의 텁텁함은 말할 것도 없었다.


결국 기계식 키보드는 며칠 전에 하나 사서 시끄럽고 흐뭇하게 타이핑을 하고 있다.


언제나 따로따로 생각이 나던 것들이라 미처 몰랐다. 문득 내가 작업 환경이 정말 많이 답답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한동안 정신이 사납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글이 슬럼프라는 이야기를 또 한창 하고 살았던 것 같다.


성격과 감각이 원체 예민한지라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게 있으면 뭐든 잘 못 한다. 히터 돌아가는 소리 싫어서 잠도 귀마개 끼고 자는데 일이야 오죽하겠냐마는. 생각해보니 글에 슬럼프가 온 때는 작업 공간이 옮겨가 불편해진 시점과 거의 일치했다. 왜 여태까지 그걸 몰랐지, 하는 생각이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그것도 모르고 나라는 멍청한 인간은 더 좋은 음감 환경을 만들면 좀 나으려나 하는 소리나 하며 이 좁은 공간에다가(정확히 말하면 책상 공간 자체는 넓지만 구조가 비효율적이라서 가용 공간이 작은 케이스이다.) 앰프까지 딸린 중형 북쉘프 스피커를 쳐 올려놨다.


결국 저 모든 것은 시원시원한 책상 환경과 편안한 글쓰기 공간, 혹은 휴식 공간을 원하는 나의 욕구들의 총 본산이나 다름이 없었다. 사고 싶은 물건의 형태로서 계속 표출이 되어 왔으나, 워낙에 물건의 구매라는 것이 따로따로 인식되다 보니 내가 지금껏 눈치채지 못했던 꼴이다. 그것이, 위시 리스트의 작성으로 윤곽을 드러낸 것이다. 깔끔하게 구성된 책상의 모습으로.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조금 더 구체적인 영역으로까지 이야기가 확장된다. 얼마 전에 지인과 대화 도중 이 발견이 나름대로 흥미롭다고 생각해서 대화 주제로 꺼낸 적이 있다. 본인의 자아와 진로 등에 굉장히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은 이 이야기를 듣고 이런 말을 했다.


네가 오늘 한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삶의 방식을 확정할 방법일지도 몰라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이상, 한 개인이 행하는 상품의 구매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으로 내면의 욕망을 표출한다. 재미있는 점은 인간이 어떠한 상품을 욕망할 때, 상품 그 자체만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물건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은 그 물건의 소유를 넘어 그 물건을 소유했을 때 보여질 스스로의 모습, 혹은 그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는 가치를 함께 욕망한다. (문학을 공부하는 우리는 이 이야기를 하며 이것이 욕망의 삼각형을 똑 닮은 구도라고 웃었다.) 예를 들어 좋은 키감을 가진 기계식 키보드가 사고 싶은 사람은 단순히 기계식 키보드라는 상품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타이핑을 하는 본인의 모습,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한층 증대된 타이핑의 쾌감과 그로 말미암아 발생되는 글 집필량의 증가 및 경험 증대로 인한 실력 향상 등까지도 욕망한다는 식이다. 그리고 상기한 위시리스트는 이러한 욕망 구도의 조감도와도 같다.


내가 한 일은 단순 몇 개월의 구매 욕구 목록을 정리한 게 전부다. 겨우 여섯 개짜리 목록이다. 이 리스트는 내가 쾌적한 작업 환경을 갈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는 한동안 내가 글이라는 것 자체에 흥미가 떨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 왔다. 꽤 긴 슬럼프 기간동안 글을 쓰려는 시도도 그리 많지 않았고, 결과물도 질적인 면이나 양적인 면이나 (그렇다고 원래의 나나 지금의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거다.) 한참 부족했으니. 그런데 이렇게 놓고 보니 알겠다. 글을 잘 쓰지 못한 그 짧지 않은 기간동안, 나는 계속해서 상황을 바꿀 무언가를 내적으로 갈망하고 있었다. 이는 내가 결코 글에 흥미를 잃지 않았고, 글을 쓴다는 행위가 내 일상과 사고에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몇 개월간의 위시리스트였다. 이 범위가 좀 더 넓어진다면, 일 년이 된다면, 삼 년이 된다면, 오 년, 혹은 그 이상이 된다면 어떨까. 단순히 더 나은 작업환경을 가지고 싶다, 정도의 이야기 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사람에 따라서는 아주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생산적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건 그것은 아주 솔직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저 정도의 위시리스트에서 저런 것까지 생각하는 게 과도한 확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텍스트는 원래 텍스트 자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맥락이다. 본인의 경험과 생각이 리스트와 만나면 이야기는 우리 생각보다 비대해진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과할지도 모르지만 뭐든지 허와 실은 쳐내고 고르기 나름이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욕망한다. 나쁜 일도 아니고 좋은 일도 아니다. 그저 당연한 일일 따름이다. 그냥 '나' 그 자체일 뿐이다. 내가 가지는 욕망은 그 무엇보다도 나답다. 그래서 재미있다. 사람들은 사실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이야기할 차례를 기다릴 뿐이라는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내 이야기 하는 게 가장 재미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내 이야깃거리를 찾는 건 그것도 그것대로 즐거운 일이 될 것 같다.


적당한 기간을 두고 위시리스트를 꾸준히 적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골똘히 생각해볼 건덕지가 많이 있어 보인다. 충동 구매 방지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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