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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땅 Nov 11. 2023

신의 후회

1. 이별과 만남

" 뭐라고 했니? "

내가 음대를 가서 피아노를 배워보고 싶다고 했을 때의 반응은 좀 사나웠다.


" 다시 말해봐, 음대를 가고 싶다고, 피아노를 배운다고? "

" 네..."

내가 뱉어 놓고도 멀쑥한 단어와 불가능한 꿈이었다. 그러니 내 앞에 계신 분의 표정은 여름날 아침부터 상쾌와는 거리가 먼, 곧 엄청난 열기가 올 거라는 걸 암시하는 바람 없는 새벽 날씨처럼 찝찝했다.


피아노를 처음 본 것은 어머니와 함께 찾은 교회 안이었다. 12살의 눈은 교회 한가운데 십자가가 아닌 까맣고 반짝이는 자그마한 물체였다. 윤이나는 광택이 교회 안의 전등을 반사하여 멋지게 투광하고 있었다. 

그 특별한  물체에서 엄청난 울림과 함께 소리가 들려왔다.  저음과 고음, 그리고 중복된 화음이 이리저리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 벽을 두드리고, 천정을 치고, 다시금 내게로 왔다. 


낯설고 어색한 공간 안에서 소리는 그곳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나의 시선과 호기심을 전부 끌어가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내가 홀린 듯 멈춰 서서 피아노를 바라볼 때의 순간은 불과 몇 초 일지 모르지만 꽤나 긴 시간 여행을 하듯 나의 모든 세포들 사이에 저장되고 있었다. 


" 목사님. 잘 좀 부탁드립니다. 꼭 빨리 돌아올게요. " 

어머니는 바닥만 바라보며 목소리마저 크게 내지 못했다. 어미로서 큰 죄를 짓고 있으니 고개를 들 수 없다는 의미였다. 내 손을 잡은 손가락 사이사이로 떨림이 느껴졌다.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의 울듯한 흐느낌과 간절한 부탁도 피아노 소리 사이사이에 파고들었다. 


그곳은 보육시설과 교회가 함께 있는 곳으로 예전엔 학교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단층 콘크리트 건물이 운동장에서 바라보면 엄숙하게 위로 위치하고 있었다. 운동장에서 계단을 올라 출입구로 들어가면 양쪽으로 길게 복도가 마루로 펼쳐져 있으며, 오른쪽 복도를 따라가면 칸칸이 나누어진 방들이 나왔다. 


바닥은 마루 바닥으로 오래된 흔적이 느껴지지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왕래로 매끌해진 검은 윤이나는 나무색이다. 바닥에서 왼쪽은 교실로 이어지는 얇은 벽이 있고 그 위엔 미닫이식 창문이 교실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으나 방마다 그 색이 달랐다. 첫 번째 방은 선생님들이 쓰시던 곳으로 하얀 페인트가 필해져 볼 수 없었고, 두 번째 세 번째 방은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투명하고 깨끗하게 방안이 훤히 보이고 있었다. 

마지막 네 번째 방은 창문이 모두 합판으로 가려져 못질되고 그 위에 각목으로 덧데어 있었는데, 마치 들어가거나 나오지 못하는 폐쇄된 느낌이었다. 

그 복도 오른쪽은 큰 창문들이 위, 아래 격자로 길게 길게 펼쳐져 있어서 운동장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 정민아, 애를 데리고 가서 좀 씻기고 짐도 정리해 줄래. "

목사님은 복도에서 마주친 아이에게 나르 맡기고 뒤돌아 가 버렸다. 그 아이는 아주 잠시 망설이다가 나보고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복도 끝으로 걸어 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망가고 싶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난 엄마가 가는 모습을 보고도 울지 않았다. 어차피 늘 혼자였고, 아주 늦은 저녁이나 아침 일찍 잠시 볼 수 있는 엄마였으니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나보다는 한참이나 커 보이던 아이를 따라간 곳은 복도 맨 끝에 문을 열고 나가 운동장을 돌듯이 조금 걸으면 건물 높이만큼의 나무들 뒤로 파란 건물이었는데, 출입구가 두 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오른쪽은 쾌쾌한 냄새가 입구부터 나는 것이 화장실이 분명했다. 왼쪽으로 뚫린 입구로 들어가니 오래된 타일이 바닥과 벽에 촘촘히 박힌 목욕탕이었는데, 벽에는 수도꼭지가 듬성듬성 박혀 있었다.  차가운 찬물이 내 몸에 닿아 소름치도록  놀라는   나를 한손으로 힘껏 잡은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비누칠로 나를 씻겨 나갔다. 얼굴과 머리, 온 몸에 칠해진 비누향은 처음 맡아 보는 냄새로 코끝에 느낌은 좋았으나 숨을 쉴 수 없고 눈을 뜰 수 없을만큼 가득했다. 이후에 쭈구리고 앉아 수도꼭지 아래에서 모든 비누를 씻어내고 나서야 난 일어 날 수 있었다. 


나를 씻긴 아이는 그곳에서 꽤나 인정받는 아이같아 보였다. 내가 씻고 그를 따라 아이들이 머무는 공간에 들어가자 익숙한듯이 한쪽에 내 사물함을 지정함과 동시에 작지만 묵직하게 말하는 사이 주변은 통제된 듯이 주목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내 또래부터 한참이나 큰 형들이 제각각 있었는데 대략 십여명은 될 듯 싶었다. 

" 오늘 새로 온 형제다. 이름은...., 너 이름이 ? "

" 어...나는 홍석....조.홍.석.입니다. " 내가 고개도 들지 못하고 내 이름을 말하는 사이 주변은 시끄러워졌고,

아무도 나의 이름을 듣고 있지 않았다. 창문을 지나 바라본 운동장에는 작은 바람이 불어 흙이 날리고 있었고, 그곳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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