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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땅 Dec 21. 2023

신의 후회

9. 도둑

쉼터를 나온 이후 며칠 간을 굶고 노숙하던 중에 나보다는 나이 든 무리들을 만났다. 

겉으로 보이기에도 강해 보이고 자신감에 차 있던 그들은 스스로를 '어부'라고 불렀다. 

'어부'의 대장은 짧은 머리에 말 수는 별로 없었지만 호감형 외모에 절대적인 리더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우상'처럼 대우받고 있었다. 


난 그 무리 속에서 존재감 없는 아이로 내가 벌어 온 돈의 일부를 중간 보스에게 상납하면 되는 것이다.

나의 주된 일은 중국집 배달과 신문배달이었다. 

우리들의 숙소는 빌라 형태의 집으로 방이 세 개였는데 대장이 한 방을 쓰고, 

나머지 두 개의 방을 4,5명씩 나누어 쓰고 있었다. 

식사 담당, 세탁 담당, 청소 담당 등의 역할은 주로 나 같은 아이들이 맡았고,

중간 무리의 형들은 나 같은 신입들을 관리하거나 대장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 우린 양아치도 조폭도 아니다. 우린 약한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다. "

대장이 가끔씩 우리들에게 뱉어내는 말은 자신들을 타 무리들과의 차별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하지만 어디선가 싸우고 온듯한 모습과 그들끼리 나누는 은밀한 대화 속에서 

평범한 모임은 절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이곳에서의 불문율이 있었으니, 부모나 가족이야기는 절대 금지였다. 

아마도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모인 이들이라 지나간 치부는 건들지 말아야 하는 '금기어'가 된 것이다. 


일 년의 시간이 흘러 이 안에서 생활에도 적응이 되어갈 무렵 나에게도 새로운 임무가 생겼다.

" 넌 이제부터 밖에 나가서 일하는 거 그만두고,  우리 따라다니면 돼. 알았지? "

나 보다 세 살 위의 형은 굳은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 네. 알겠습니다. "

" 옷은 단정하게 입고, 머리는 짧게 자르고. "

" 네. 알겠습니다. "


세 명이 한 조가 되어하게 되는 일은 빈집털이였다. 

나처럼 조금 작고 왜소한 아이가 이 일에는 반드시 필요했다. 

작고 조그마한 창문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기에는 나 같은 아이가 제격인 것이다. 

웬만한 열쇠나 키로 잠긴 문은 우리 조의 대장인 창수형이 다 따고 들어갔다.

하지만 걸쇠나 안에서 꼭 잠긴 문은 열 수 없었기에 환기나 방심해서 열어 놓은 빈 틈을  이용해야 할 경우가 가끔 있었다. 

" 절대 아무 물건이나 귀중품이 아닌 것에 손을 대서는 안돼. 절대로. "

창수형은 내 눈을 또렷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 우리 흔적이 남겨져서는 안 되는 거야. 알았지? "


이들은 부유한 동네를 돌며 털 곳을 결정했다. 

그 집에 사람들은 언제 나갔다가 몇 시에 돌아오는지,

개는 있는지, 주인은 뭐 하는 사람인지, 몇 명이 살고 있는지 등등을 파악했다.

결정적으로 그 집 사람들에 대한 평판이 중요했다. 

주변 사람들 혹은 가게에서 그 집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면 성공확률이 백 프로였다. 

이웃 들과의 교감이 전혀 없는 집은 비밀이 많고,

숨길 것이 많을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한번 털고 나온 집의 동네는 약 일 년간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우리가 털고 나와도 신고는커녕 소문도 나지 않았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는 치밀함이 있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 들어서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나에게 묘한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대부분은 깔끔하고 정돈된 가구와 가전제품들,

풍족하게 준비된 듯한 먹거리와 처음 보는 다양한 식재료.

고급져 보이는 그릇들과 접시, 컵 등은 다른 나라에 온 듯한 착각도 주었다. 

' 부자들은 숟가락, 젓가락도 다르구나. '

마치 준비한 듯 가지런하게 모아둔 지폐와 귀금속은 ' 나를 가져가세요.' 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거실 한 벽에 반드시 가족사진을 크게 걸어 놓았는데,

'우린 이 만큼 행복하다' 하는 표정처럼 보였다. 


일주일에 한두 번의 빈집털이로 모아진 돈과 귀금속은 대장에게 전달되었다.

이렇게 모아진 돈과 귀금속의 처리는 대장이 맡아하였는데,

무조건 절반의 현찰은 전국 곳곳의 보육원으로 보내지고 있었다. 

아주 우연히 만난 옛 쉼터 동생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어떤 소식을 듣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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