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맨땅 Nov 10. 2023

Peep ShoW

1. 소원을 말해봐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럴싸한 로비는 반짝거리는 대리석 바닥으로 되어있고

한참이나 올려다봐야 하는 천장엔 멋진 샹그리아 조명이 달려 제각각 다른 색의 빛을 반짝였다.

출입구를 열고 들어간 로비 한가운데 서서 나는 잠시 길을 잃었다.


우리 집 가족은 나와 아버지가 전부다.

어릴 적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난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다.

동네 어디를 가도, 친구들 집에 가도 그들에겐 엄마가 있었으나 나에게 엄마는 아빠였다.

" 아빠, 엄마 어딨어? "라고 묻기라도 하면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린 나에게 설명하기엔 너무나 어려웠고, 거짓말을 하기도 쉽지 않았기에

아버지가 택한 방법이겠지만, 그런 일이 몇 번 있고 나서 나의 질문은 사라졌다.


엄마의 존재가 희미해지고 단어가 낯설어짐에는 아버지의 역할이 컸다.

밥 먹기, 세탁, 집안 청소, 준비물 준비, 목욕하기 등은 완벽했다.

늘 깔끔한 옷에 정성껏 차린 도시락에 꼼꼼한 수업 준비로 나는 주위에서 꽤나 똘똘한 아이로

자라날 수 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내가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란 것도

알게 되면서 우린 서서히 같이 따로 사는 관계가 되어있었다.


내가 공부를 잘하고 모범적인 학생으로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아버지의 몫이 컸다.

난 한 번도 아버지가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내가 깨고, 잠들고 할 때도

늘 아버지는 깨어 계셨고, 늘 무엇인가를 하고 계신 모습이었다.

새벽이면 택배 상하차 일을 하셨고,  오전엔 집안 정리와  반찬거리를 만드셨으며

오후엔 미니 버스를 몰고 학원 등하교를 책임지셨다. 그리고 저녁 늦게부터 새벽이 오기 전까지  음식 배달일을 하셨다. 남들이 주말이고 연휴고 명절이라고 할 때 아버지는 더 많은 일을 찾아 하셨으니 그 모든 일과 시간이 아버지에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난 그런 일들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보는 모습은 그냥 지쳐 힘없이 풀어진 아버지의 눈과 가끔 나에게 던지듯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 밥은 먹었니? "

" 네. 이번 학원비와 교재비 청구서 나왔어요. "

" 그래... 넌 아무 걱정 말고 열심히 공부해. "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이란 곳에 취직을 하였을 때만 해도

난 아버지에게 이젠 그만 일을 하셔도 된다고 할 줄 알았다.

나와 아버지가 살기에 내 월급은 충분하게 여유 있다 생각했기에 그런 것이다.

하지만 난 아버지에게 말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서울 도심의 화려한 모습은 아직 나에게 큰 벽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와 아버지가 버는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난 그들의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러한 경험은 회사 취직 후 사귄 여자친구와의 이별을 통해 강하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녀는 주변 남자들의 시선 받기를 즐기듯이 몸매를 뽐내고 단정하지만 결코 저급하지 않은 미를

품고 있었다. 다들 그녀와 대화라도 한번 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그녀가 바라봐 주길 간절히 원했지만  싸늘하고 도도한 모습은 그녀를 더욱 빛나게 할 뿐이었다.

SNS를 통해 그녀가 어제 먹은 저녁은 무엇이었고, 식당은 어디였으며

어떤 화장품과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가 그날그날의 사무실 대화 주제였으니 얼마나 핫한 인물인가.


내가 그녀의 남자 친구가 되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녀가 나와의 투샷을 SNS에 올린 것이다.

엄청난 반응들이었다. 사실 그녀와 내가 연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중요한 게 아니다.

단지 그녀가 나를 선택했고, 나는 그것을 받아 들었을 뿐이니까.

" 넌 다른 남자들과는 달라. "

난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다. 내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시선을 주거나 말을 걸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난 다른 여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누구에게도 웃거나  사소한 농담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늘 깔끔하고 세련된 옷과 자신감에 가득 찬 내 눈빛은 그냥 어릴 적부터 해오던 습관이었다.


그녀와 내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사랑이라는 느낌을 알아갈 즈음부터 어느 호텔, 어느 유명 레스토랑, 어느 유럽의 작은 도시들, 심지어 음식에 쓰이는 소스의 낯선 이름까지도 나와 그녀에게는 작은 벽이 생기도 있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접해보지 못한 이름들과 장소, 맛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난 침묵했다.

" 우린 나중에 어떤 톤의 인테리어를 할까? 난 단순하고 심플한 베이지톤에 원목으로 디자인된 집을 꾸미고 싶거든. 가구는 적당하게 유럽에서 수입한 걸로 고르면 좋겠다. 자기 서재 조명은 내가 이미 봐둔 것도 있고 말이야. " 그녀는 꿈꾸듯이 설계해 나갔다. 화려한 우리의 신혼 생활을.

" 어.. 그래. 그렇게 하자. 네가 좋은 걸로 해. " 난 왜 이렇게 말했을까...


" 아버지... 혹시 내가 결혼이라도 한다 하면 나에게 주실 돈이 있을까요? "

" 그럼 물론이지. 아빠가 우리 아들을 위해 다 준비해 놓았단다. 많이는 아니고 조그마한 전세는

얻을 수 있을 거야."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나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것을 나는 안다.

그 준비된 돈이란 게 이 변두리 동네에서 작은 소형 아파트의 전세금으로 충분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난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녀와 내가 꿈꾸는 미래에

그 돈은 식탁과 거실 소파하나 들여놓을 수 없는 금액이란 것을 안다.


나의 표정과 마음은 아버지에게 그대로 전달된 것일까?

아들을 위해 일밖에 모르고 살았던 당신의 모습은 그 이후로 더 수척해지고 노화되어 갔다.

아버지 스스로 더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슬프고 분노한 것인지,

이제 아버지는 내가 볼 때마다 잠든 모습처럼 누워계셨다.

지금까지 못 잔 잠을 한꺼번에 자려고 하시는 것일까?


" 아들아 네게 줄게 하나 있어. 저기......" 아버지가 손 끝으로 가리킨 곳에 누런 봉투가 놓여있었다.

'영혼계약서' 봉투 겉표지에는 큼직 막 하게  섬뜩한 글씨가 붓으로 젹혀있었다.

" 내가 줄게 이제는 이것밖에 남지 않았구나. 그 안에 다 쓰여있으니 아빠가 죽으면 그걸 가지고

우리 아들 하고 싶은 거 다하면 돼. "

" 아니.. 아빠. 무슨 말이야. 이게 뭔데... 그리고 나 이제 돈 많이 벌 수 있고, 아빠 고생 안 시킬 거야. "

" 그래 알아. 우리 아들이 얼마나 착하고, 얼마나 대견한데. 그래서 아빠는 더 열심히 살았어.

그런데 아들아, 이젠 이 아빠가 더 해줄 게 없네. 미안해. "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눈을 뜨면 지하철 안이었고,

또 눈을 뜨면 병원이었다. 그리고 또 집. 그렇게 시간과 공간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내 주위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그 사이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난 혼자가 되었다.


이 큰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위 47층에 도착하였다.

온통 사방이 하얗고 불투명한 유리로 칸칸이 나뉘어 있었고, 나의 도착과 동시에 나를 안내하는

사람에 이끌려 VIP 접견실로 들어갔다.

내가 무슨 목적이고,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는 이미 필요가 없었다.

내 앞 커다란 책상에 앉은 깡 마른 체구의 책임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 내용은 이미 알고 오셨으니 짧게 묻겠습니다. 소원을 이야기하세요.  당신 아버지의 영혼으로

모든 비용은 완불되셨습니다. "

"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 이곳으로 오며 준비한 대답이었다.

권력과 명예, 승진, 죽지 않는 삶 등 수없이 많은 소원들이 떠 올랐다. 하지만 결국 나의 입으로

나온 소원은 그거 하나였다.

" 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소원을 결정하셨군요. 고객님의 소원은 내일 0시를 기준으로 고객님의 인생에 입금될 것입니다. 감사했습니다. "

채 10분이 걸리지 않은 순간이었다.


내가 그 건물을 나와 천천히 걸어가는 중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나이 많은 노인 부부, 아주 어린아이,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녀도 그 건물 속으로 노란 봉투 하나씩을 안고 들어가고 있었다. 그 사람들 위로 높게 뻗은 빌딩엔 회사의 간판이 햇빛에 반사되고 있었다.

'영혼생명보험'



 

 


  

 

 

 


작가의 이전글 Forgive m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