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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과 속도

일상에서 만나는 인연을 이렇게도 이해하면 될까?

by 맨땅

얼마 전부터 출근길에 스치듯 지나가는 이가 있었다.

처음엔 뭔가 하고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가 그런 인연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다 보니

나 스스로도 그 길을 지나갈 즈음이면 차량의 속도를 늦추고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내가 출근하는 시간은 거의 일정하고 이동하는 동선도 똑같기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차량으로 회전구간을 돌아 직선구간으로 들어가 대략 3km 정도 이어진 왕복 4차선 도로의

외진 길은 도시 외곽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보행자 도로에는 가로수가 길게 멋지게 늘어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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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부터 작은 점 하나가 서서히 다가온다.

어딘지 부자연스럽고 평범하지 않은 걸음걸이는 흡사 작은 나무가 걸어오는 모습이었다.

왼손의 과한 동작은 어깨에서부터 오른쪽 다리까지 휘졌듯이 이어졌다.

오른손은 오른 발의 끝에 묶어 놓은 듯하였다.

왼발과 오른 발의 보폭 또한 다른 듯 보였고

고개는 왼쪽으로 기운 듯 바로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상스러운 몸동작을 하면서도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오는 그 모습은

흡사 어딘가를 향한 돌진처럼 보였다.


시속 60km의 속도로 내가 그 길을 지나가는 시간은 대략 3분.

불편한 동작으로 그가 이 길을 지나가는 시간은 25분 정도 될 것이다.

그 25분과 3분의 교차점이 이어지는 순간은 대략 3,4초의 짧은 찰나일 것이다.


아침 7시 15분에서 40분 사이에 그 길을 지나간다면

난 그를 볼 수 있었다.

특별히 비가 아주 많이 오거나 하지 않는다면 그는 늘 그 시간에 그 길에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다른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7시 30분에 보았던 지점과 7시 20분에 보았던 곳의 위치가 당겨지고 있었다.

한 달, 두 달 그렇게 수개월이 흐르고 그의 속도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처음 기억하는 곳은 그 길의 끝 부분이었으나 이제는 중간,

그리고 최근에는 길의 초입 부분에 겨우 그를 볼 수 있다.

( 내 차량의 기준에서 말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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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최근에는 그를 볼 수 없었다.

오늘은 운동을 그만둔 것인지,

오늘은 어디 아픈 것은 아니신지..

별의별 생각까지 들어 나의 차량 속도는 반대로 점점 더 느려졌다.


그러다가 어느 이른 출근 시간에 그를 보았다.

그의 시간이 빨라진 것이다.

그는 늘 같은 시간, 같은 곳을 지나가지만 그가 지나가는 시간대가 달라졌다.

'다행이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이젠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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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이란 이런 시간적인 계산으로도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다가서는 속도와 그가 지나가는 속도.

내가 그에게 가는 속도와 그가 잠시 다른 곳으로 가는 속도

그런 속도와 시간은 세월이란 것으로 말해도 되겠지.


그때 다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순간에 시간은 흐르고

그곳에 있던 이가 내가 다가갈 즈음 그는 그곳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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