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 숨은 조각 찾기
새벽부터 안전 안내 문자들이 울려 대고 있었다.
'징.. 징... 징..'
- 오늘부터 많은 비가 예보되어 산사태가 우려되니 산림주변애서는...
- 하천수위 상승으로...
- 오늘 06:00 서울시 호우주의보 발효....
잠결에도 들었지만 창 밖에는 요란한 빗소리와 함께 새찬 바람까지 요란하였다.
새벽에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던 터라 몸이 무겁고 꿈인지 실제인지 모르는 비와 바람은 잠시 그의 머리를 서너 바퀴 맴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였다.
어디까지였는지도 모를 비몽의 연속이 계속 그를 괴롭히고 있었지만,
죽은 듯 잠든 몸은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움직일 수도 일어날 수도 없었다.
' 사는 게 이렇게 무겁구나 ' 싶었다.
그렇게 질퍽이고 물에 푹 젖은 듯한 그의 수면은 휴식이나 쉼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고 또 잊힌 단어였다.
누군가 '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라고 말했다는데, 그는 정말 '벌레'를 잡듯이 살아가고 있었다.
배달 라이더가 그의 직업이다.
하루 종일 커다란 헬멧을 머리에 쓰고 있다 보면 헬멧이 머리에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헷갈리는 순간이 있다.
하품을 하면서도 헬멧에 손을 갖다 대는 습관은 잘 고쳐지지 않았다.
곧 점심때가 다가온다.
그전에 준비를 마쳐야 한다. 빠르게 씻고 옷을 갈아입으며 한 손으로는 물건들을 챙겨 밖으로 나온다.
총세대의 스마트폰과 오토바이키.
배달 앱별로 스마트폰을 작동시키고 오토바이 손잡이 위로 잘 보이도록 거치한다.
'띵동.. 띵동... 띵동...'
계속된 배차 주문들이 울려대고 있었다.
오토바이가 주차된 귀퉁이의 건물 내부엔 시동을 켠 오토바이의 매연이 올라오고 있었고,
그가 바라본 출구 밖으로는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주섬주섬 우비를 입고 헬멧을 뒤집어쓰니 이른 아침이지만 눈앞에 뿌연 김이 가득 찼다.
다시 헬멧을 벗고 김서림 방지 필름을 붙였다.
처음엔 몰라 고생하고 위함한 순간이 많았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방법을 찾은 것이다.
오늘 같은 날은 운행하는 라이더의 수가 줄어든다.
그만큼 배달 단가는 올라가고 그의 일거리는 넘쳐나게 되는 것이다.
비가 오면 사람들은 외부 식당 방문을 줄이고 집이나 사무실에서 음식 배달을 선호한다.
저녁과 달리 제한된 점심시간은 배달을 시키는 고객과 음식 장사를 하는 사장 모두에게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는 아주 긴박한 순간이다.
잠시라도 길을 헤매거나 배달걀 곳을 착각이라도 하게 되거나,
음식을 픽업하기 위해 식당에 도착하고도 음식이 준비되지 않아 기다리게 된다면 전부 꼬여 버린다.
음식을 받아 들고 경주라도 하듯이 도로와 인도를 넘나들더라도 시간을 줄여야만 하는 것이다.
" 왜 이렇게 늦게 와요? "
" 아 씨 x, 다 식었네..."
이런 고객들의 반응은 그나마 양반이다. 시간이 늦어서 음식을 못 먹으니 집어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직접 전달해야 하는 경우인데 문을 열어주지 않거나 연락이 안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의 같은 곳을 지나치며 계단을 오르고,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누르는 그를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에게는 그가 아니라 그들이 시킨 음식만이 보일 뿐이니까.
정신없는 점심시간이 지나고 잠시 여유가 생겼다.
이제 사람들은 그들의 위를 채우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시간이다.
물에 젖은 우비를 벗어 오토바이에 널어놓는다.
땀에 젖은 옷과 오토바이를 가져온 수건으로 닦아본다.
손을 비틀어 물기를 가득 먹은 수건을 짜내며 생각한다.
' 수건이 나랑 닮았구나. '
어린 시절 보육원에 버려진 그가 나이가 들어 그곳을 떠나던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다.
작은 꼬맹이가 이제 갓 청년스런 모습으로 그곳을 나올 때 그곳은 그렇게 작아 보였다.
처음 그를 맞아 살펴주시던 목사님은 어느 날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그와 함께 있던 형들과 누나들은 그보다 한참이나 더 빨리 그곳을 도망치거나 자립해 나갔다.
가끔 아직도 그곳에 있을 동생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꽉 막혀온다.
이 무더운 여름이 가고 가을, 그리고 겨울이 되면 그가 있던 보육원에 과자 선물을 가득 싣고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꼬맹이들에게 과자는 선생님의 말씀보다 더한 꿀처럼 달콤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잠시나마 이런 생각에 얼굴에 미소가 흐른다.
' 그래, 지금의 난 라이더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기다리고 있다고.
내가 배달하는 모든 곳에 행복이 있기를.'
첨부하는 말 :
<운수 좋은 날>은 현진건이 1924년 6월 《개벽》에 발표한 사실주의 단편 소설이다.
처음 원작을 읽고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그때가 생생합니다. (중학교1학년)
이후 김동인, 김동리, 채만식, 유치환 등등 많은 분들의 글을 찾아 읽었습니다.
일제시대, 그들의 문학과 지금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사람 사는 거...그건 별반 다를게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