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시인 이상(1910~1937년)의 연작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작품 중 하나인 난해시 '진단 0:1'
문학을 넘어 물리학, 기하학, 수학 등 각종 학문에서도 연구되고 있는 '시'입니다.
어떻게 보이시나요? 이해하실 수 있을까요?
이건 시인이 낸 '퀴즈'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시인'도 설명할 수 없는, 혹은 답하지 않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린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저는 각자 본인에게 보이는 것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본인 스스로가 의사이면서 환자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의사가 알지 못하는 환자의 상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완전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최근 양자컴퓨터가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컴퓨터의 언어는 0,1로 이루어진 언어를 쓰고 그걸 기초로 하는 코드와 프로그래밍이 대세였습니다.
0,1의 연산을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할까 라는 질문에 집중했습니다.
0 아니면 1이라는 기존 컴퓨터의 한계를 양자컴은 깨버린 것입니다.
0 이면서 1이 가능한 상태라는 것이죠.
말도 안 되는 억지일지 모르지만 사람의 상태가 곧 그 상태 아닐까요?
'선'이면서 '악'
'창조자'이면서 '피조물'
'생'과 '사'
지금의 제가 말하는 이 이야기는 약 1시간 뒤 전혀 다른 생각으로 바뀔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관점에서 시작해 보겠습니다.
여기저기 섞어 놓은 생각이나
아무렇게나 튀어나온 글자들이 뭉쳐지거나 흩어진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화가들은 그들의 시각과 생각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모두가 파랗다고 하는 하늘을 핑크 혹은 검정으로 표현할 수 있지요.
음악가들은 자연의 소리들을 자신만의 느낌으로 표현하길 원합니다.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통해 실제처럼 스펙터클 하면서도
그 냄새와 온도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글은 너무 어렵습니다.
단어도 알아야 하고
문맥도 살펴야 하고
철자도 지켜야 합니다.
그냥 느낌으로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거나 받아들여질 수는 없는 것일까요?
말도 다르고, 인종과 피부색, 종교가 달라도
그림하나로, 음악 하나로 서로 통하는 그 감정을 글로는 어렵습니다.
번역가의 능력, 혹은 어휘 선택에 따라 어느 국가의 대표작도 나른 나라에서는 동의를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글은 없는 것일까요?
어쩌면 내가 모르는 혹은 더 많은 시도가 무수하게 도전되었을지 모릅니다.
아직도 계속 진행형으로 시도되고 있을 것입니다.
어느 디자이너가 만든 망친 옷이 당시엔 전혀 버려지듯이 취급받다가
다른 시절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입어 비로소 그 디자이너의 의도가 알려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인간에게 글과 문학, 지식과 인쇄, 가르침과 전수는 존재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인간이 누리는 모든 혜택은 다 거기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이런 혜택의 대가는 스스로를 그 틀 안에 가두는 것입니다.
정치, 종교, 국가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나를 가두어야 조금 안심이 됩니다.
이러한 접근과 발상 자체가 너무 과장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의 전환이고,
무지의 어떤 도피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자는 어떤 무엇가를 표현하는 도구이고
생각을 담아내는 코드라 할 때,
그 생각마저도 그 글자라는 것에 갇혀버리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고요?
그러게요. 저도 모릅니다. 그냥 느낌이 주는 그대로 하면 될 듯싶습니다.
하지만 여기 계신 분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매번 감탄하고 또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