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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송년회

1. 처음 만남

by 맨땅

종각역에서 내려 밀려드는 사람들을 헤치며 올라가는 계단은 흡사 그가 연어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칙칙한 칼라와 몸보다 110프로 확대 복사한 패딩 차림의 직장인들이 본인들의 집으로 돌진하듯 역사 안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한때 그도 이들처럼 살았다.

매일매일을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며 높은 빌딩, 그 숲에서 서식하며 도시의 직장인으로 30여 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제 아침이면 정해진 곳 없이 집을 나서기도 하고, 하루 종일 집안을 서성이며 하루를 보내는 것으로 바뀐 지도 수년이 흘렀다.


매년 12월이면 부서별, 기수별, 동종 업계 모임과 학교 송년회로 바쁜 스케줄을 보내야만 했던 그였지만, 하나씩 하나씩 그런 모임은 연락이 끊어지거나 나가지 않게 되면서 이제 불러주거나 연락이 오는 곳도 없게 되었다.


사실 정해진 송년회, 혹은 망년회라는 것이 뻔한 시간이고 지루하게만 느끼던 그였다.

'위하여'는 무슨 유행어처럼 이리저리 갖다 붙이고 변형되었지만, 그 메아리와 건배사는 뻔하고 뻔한 빈말이었다.

"우리가 하나가 되자."라고 외치던 사람들도 자신만이 살아남기 위해 동료를 씹고, 음해하는 동물일 뿐이었다.


'부장님, 부장님' 하던 이들도 나의 퇴사와 함께 전화 한번 없는 먼 인류가 되었으니까...


젊음을 함께 하던 학교 모임도 다를 건 없었다.


집을 어디에 사고, 그 집이 얼마가 되었느니

이번에 자식이 어디에 가고,

어디에 투자를 했더니 대박이 났다라든지,

정치가 어떻고,

종교가 어떻고...


자랑하러 나온 무리이거나 자신의 주장을 남에게 설득하러 나온 그렇고 그런 인류일 뿐이었다.


진이 빠지고 기가 다 빨린 탈수된 인간이 되어 그 자리를 떠났을 때 느끼는 기분은, 마치 물속에서 숨을 오랫동안 참느라 죽을 듯 하다가 몰아쉬던 그 숨이 가쁜 그런 순간이었다.


머릿속에 맴도는 수 없이 많은 말들과 웃음소리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들이킨 소주보다 더 쓰게 느껴졌다.


'잘났다.. 이것들아.'


그렇게 송년회에 치를 떨던 그였지만 색다른 송년회가 될 오늘은 그를 가슴 띄게 하고 있었다.


* 이 글은 좀 길게 써보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모여 있는 분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하나씩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시리즈는 아니고요. 편한 글로 보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너무 기대하지는 말아주시고요. 응원은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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