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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송년회

2. 12월이지만 괜찮아

by 맨땅

"저는 올해 집사람을 먼저 보냈습니다. "


테이블 4개 정도가 전부인 공간에 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앉았다.

각각의 테이블에는 정갈한 음식과 찬들이 각자의 사람 앞에 놓여 있었지만, 아무도 음식에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수십 년도 더 된듯한 공간에 세월은 그대로 묻어 있었다.


" 저의 아내는 정말 사랑스러운 여자였어요. 한 번도 정말 단 한 번도 미소와 친절을 잊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저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아니 더 정확하게는 귀찮게 생각했어요. 너무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이해하실 수 있으실까요? "


한참을 이야기하던 그가 잠시 크게 쉼을 들이켜고 있었다. 그 숨은 큰 후회처럼 길고 긴 호흡이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그가 말을 이어 나갔다.


" 제가 집을 떠나 방황할 때도, 그녀는 아무 불평을 하지 않았어요. 아주 오랜 기간 집을 떠난 뒤에도 늘 그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지요.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사냐고 화를 내 보기도 했어요. 나를 더 기다리지 말라고 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건 나 혼자만 하는 이야기이지, 그녀는 늘 그 자리에 있었어요. "


무리 중의 몇몇이 혀를 차듯이 이야기했어요.


" 너무했네. 너무했어. "


" 맞아요. 저는 정말 나쁜 놈이에요. 그렇게 힘도 빠지고 나이가 들어 어디에도 갈 수 없게 되어서야 그녀 곁에 머물게 되었어요. 참... 나쁜 놈이죠 "


그가 식탁에 놓인 물컵에 물을 따르고서는 그 컵을 크게 들어 목이 타는 듯 전부 입에 털어 넣었다.

그를 바라보던 사람들도 그를 따라 물을 마셨다.

'탁.. 탁.. 쭈르륵..'


나무와 물컵, 물병즐의 소리가 잠시 공간을 채웠다.


"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녀가 차려주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거였어요. 무엇을 만들든 거의 다 비웠지요. 물론 맛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것보다도 그녀가 만드는 음식이 그녀처럼 느껴졌어요. 내가 느끼는 반성과 미안함을 그렇게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었어요. "


" 대화는 없었어요. 그냥 짧은 단어.. 몇 개."


" 그럼 그녀가 갑자기 올해 봄에 먼저 가버렸어요.

난 용서도, 미안하다고 말도 하지 못했는데..."


여기저기서 한숨과 한탄, 아쉬움이 터져 나왔다.


" 바보 같지만 그렇게 시간이 갔어요. 봄과 여름, 가을이 지나도록, 매일매일을 생각했어요. 내가 잘못하고 용서받지 못할 것들이 떠 올랐어요."


" 저도 죽으려고 했어요. 따라가는 것은 아니고 제가 나를 용서할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도저히 할 수 없었어요. 그런 용기도 없었나 봐요.

오늘 이 자리에서 올 한 해를 보내며 결심하려 해요.

그녀를 추앙하며 그리워할 거예요. 그리고 열심히 살면서 그녀의 체취를 기억할 거예요. "


" 길지는 않겠지만은 그녀에게 가는 날, 조금이라도 덜 미안했으면 좋겠어요. 이게 저의 2025년이에요.

12월이지만요..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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