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마실래? 코끼리 마실래?
태국, 태국어로는 쁘라텟 타이ประเทศไทย, ‘자유의 나라’라는 의미를 지녔다. 동남아 국가 가운데 종교적으로 또는 국가시스템상 제재나 제한이 많은 주변 국가에 비해 가장 자유롭고 밤거리가 화려한 나라 태국은 열대의 밤문화를 만끽하는데 최상의 조건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 자유로운 태국에서 일년에 최소 나흘은 술을 마실 수 없다. 이 나흘에 해당할 때는 실연의 아픔을 겪고도 술집에서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슬픔을 달래야 한다. 이런!
2006년 쿠데타로 인해 이전 헌법이 정지되었고, 2007년 새로운 헌법이 개정 선포되었다. 2008년 총선에 의한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헌법에 의거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 술 관련 법안이 시행되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종교일 즉 완마카부차 (วันมาฆบูชา 만불절万佛節), 완위싸카부차 (วันวิสาขบูชา 석가탄신일), 완아싼하부차 (วันอาสาฬหบูชา 석가최초설법기념일 또는 초전법륜일初轉法輪日), 완카오판싸 (วันเขาพรรษา 입안거일入安居日)에는 술판매가 금지되며, 이 밖에 정부가 정하는 특정일, 가령 선거일 또는 선거일 전날 등에도 술판매가 금지된다. 또한 11:00-14:00와 17:00-24:00 두번에 걸쳐 주류를 구입할 수 있으며, 이 외 시간에는 주류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물론 전세계의 주당들이 이를 두려워하진 않는다. 외국 관광객을 주로 상대하는 호텔이나 공항에서는 주류 판매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십여 년간 지속되었던 이 법안은 2025년 11월 8일부터 개정되어 시행되었는데, 주류 판매 시간 외 장시간 술집에 머무르거나 술을 마시는 행위도 법 위반으로 간주하며 20세 이하 절대 음주 금지 등의 규제를 추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최대 1만 바트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보다 엄격한 조항이 추가되었다. 2025년 1월 태국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의 90%는 음주 관련이라는 통계자료가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마약 문제도 이에 못지 않게 심각하다.)
그런데, 이로부터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아 관광업계의 거센 반발과 항의로 음주 관련 법안이 다시 개정되었다. 우선 2025년 12월 3일부터 2026년 5월 31일까지 6개월 간을 시범운영 기간으로 지정해 기존 14:00~17:00까지 술 판매 금지 시간을 없애고, 술 판매 가능 시간 종료 이후 한 시간까지 즉 밤 12시에서 새벽 한시까지는 가게에 머물며 음주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전에는 엄격하게 규제하던 주류 광고 역시 알코올의 위험성에 관한 문구를 넣는다는 조건으로 광고가 가능하게 되었다. (자유의 나라 태국… 음…)
세계에서 가장 술을 많이 마시는 나라는 어디일까? 데이터커먼스(Data Commons, 구글이 만든 오픈 소스 플랫폼)의 자료에 따르면 2025년도 세계 1위 음주량을 자랑하는 나라는 바로 루마니아이다. 그 뒤를 이어 조지아 등 동구권 유럽 국가가 대부분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시아 국가는 어떨까? 2014년부터 수년간 세계 1위를 차지했던 한국은 2025년 현재 51위, 아시아 국가 중 4위를 기록하고 있다. 태국 역시 한국 못지 않게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2025년도에는 세계 48위, 아시아 국가 중 3위를 차지하며 한국을 조금 앞서는 술 소비량을 기록했다. 아시아 1위 국가는 라오스로 세계 16위, 1인당 술소비량 10.82리터를 기록했다. (라오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국통계청의 2025년 1월 발표자료에 의하면, 태국의 음주인구는 2천9십만명으로 총인구의 35.2%에 해당하며 증가추세에 있으며 음주 연령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태국인들이 1년간 소비하는 알코올량은 1인당 7.99리터로 17년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세계 순위는 한참 아래로 떨어졌지만 음주량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는 사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음주량이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 외엔 이해가 안 된다는…
태국에서 술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2,500여년전 불교가 태국에 전파되면서 술문화가 인도로부터 태국에 함께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태국인들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수코타이สุโขทัย 시대 (1238~1378)의 불교문학 ‘뜨라이품프라루엉ไตรภูมิพระร่วง (Three Worlds) - 수코타이 시대 리타이왕이 불교자료를 집대성한 불교문학서적으로 총세편으로 구성되며, 태국인들의 가치관과 우주관 등을 볼 수 있는 책으로 태국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필독서이기도 하다. 1,345년 (불력 1,888년) 완성' 을 보면 ‘음주는 죄를 쌓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어 당시에도 술을 마시고 진상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다시 말해 술을 빚어 마셨을 것으로 추정되나, 그 밖에 문서를 통해 술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인터넷과 각종 자료를 통해 수집한 짜투리 정보를 종합해 보건대, 태국에서는 과거 대부분이 각자 집에서 집안 전통 방식대로 술을 담가 먹었다. 톤부리ธนบุรี 시대(1767~1782)에 이르러 짜오프라야강 서쪽편 (현 방꺽너이บางกอกน้อย)에 자리 잡은 중국인들이 최초로 술을 팔기 시작했다고 하며, 빨간색 종이로 술항아리 입구를 덮은 뒤 배를 타고 이집저집 술배달을 다녔다고 한다. 라마3세(1824~1851) 때 최초로 주세법이 만들어졌고, 라마4세(1851~1868) 때는 종교일과 중요한 명절에는 금주를 하도록 하는 법이 만들어졌고, 외국과의 교역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외국술이 태국에 유입되었다. 라마5세(1868~1910)에 이르러서는 술 제조업자를 제한하는 법이 생겨 허가를 받은 사람만이 술을 만들 수 있었으며, 각 마을에 하나의 양조업자만으로 제한하였다.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고 이때문에 외국술의 수입이 어려워지자 태국의 양조업자들은 외국술맛을 모방한 술을 제조하기 시작하였다. 태국의 유명 브랜디위스키인 매콩(1941년에 시판된 태국브랜디. 현재는 타이베브(ThaiBev)에서 생산하고 있다. ‘매콩’이란 이름은 ‘메콩강’에서 착안한 것으로 당시 인도차이나전쟁에서 프랑스로부터 태국의 자유를 요구하는 의미로 만들어진 것이라 전해진다.)이나 현재는 찾아볼 수 없는 퍼콩พ่อโขง 같은 술이 당시에 만들어져 판매되었다.
현재 태국위스키로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는 홍통หวส์ทอง으로 시장점유율 50%, 브랜드285가 30%, 매콩แม่โขง, 쌩쏨แสงโสม 등이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으며 타이베브에서 새로 출시한 쁘라깐ประการ이 2025년 한 해 역대 최고의 매출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2025, 타이베브(ThaiBev) 시장조사 결과) 또한, 태국 전통방식으로 제조된 ‘라오카우(เหล้าขาว)’는 40도 이상의 강한 도수와 독특한 향으로 대중적으로는 서양식 위스키에 밀렸으나, 일부 매니아층으로부터 여전히 사랑받는 술이다.
사자 Vs. 코끼리
태국 최초의 맥주는 분럿사(Boon Rawd Brewery)가 개발한 것으로 씽(สิงห์ 또는 씽하 (Singha)는 사자처럼 생긴 전설의 동물로 힌두·브라만교에도 등장한다.)맥주의 전신인 뜨라씽, 씽댕 등으로 1933년 처음 회사를 설립하여 1936년 대중들에게 시판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보리의 맥아 대신 쌀을 도정한 뒤 남은 싸라기를 이용해 맥주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이후 외국맥주회사의 제조공법을 들여와 오늘날의 씽맥주로 발전하게 되었다.
1990년 양조업계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타이베브(ThaiBev 태국위스키와 태국전통술의 시장점유율 1위 업체로 홍통, 매콩, 쌩쏨 등이 타이베브에서 생산된다. 2003년에 타이베브(ThaiBev)로 명칭 변경)가 맥주시장에 진출, ‘창(ช้าง 태국어로 ‘코끼리’라는 뜻)’이라는 브랜드의 맥주를 시판하였고, 10년만에 ‘씽’의 아성을 넘어 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맥주 브랜드로 등극하였다. 1998년 분럿사에서는 ‘리오(Leo - Leopard, 표범이 상표 로고로 사용된다)’라는 저렴한 가격대의 새로운 맥주로 10년만에 다시 태국맥주시장 1위를 탈환, 현재까지 선두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2023년에는 에너지드링크를 주로 생산하던 카라바오 그룹에서 ‘카라바오คาราเบา’ 맥주를 시판하였으며 2년간 적자에서 벗어나 2025년 태국맥주시장 3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편, 1995년 네덜란드 맥주인 하이네켄이 태국의 아시아퍼시픽 회사와 합작으로 태국에 공장을 설립하였고, 그밖에 외국 브랜드의 현지 생산 맥주로는 일본의 아사히가 있다.
태국 맥주회사 시장 점유율 (2025년)
분럿 (씽, 리오, 아사히 등) 62-63%
타이 베브 (창, 아차, 클로스터 등) 32%
카라바오 (카라바오 등) 3%
아시아퍼시픽 (하이네켄) 외 2%
*Euromonitor집계 (2025)
1990년대부터 독일과 아이리쉬 등 브루팝 (Brew Pub)이 곳곳에 생겨나며 맥주애호가들의 발길을 끌기도 했고, 2005년도부터는 벨기에 맥주가 첫선을 보이면서 현재까지 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외국 맥주로 손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