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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산물고기 Dec 08. 2023

미국에서 '나'라는 간판을 세웁니다

미국에서 나라는 간판을 다시 세웁니다.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방법이 아주 쉬웠다.


고등학교를 다닐 땐,

어느 고등학교를 다니는지를 말하면 됐었고,


대학교를 다닐 땐,

어떤 대학의 어떤 과를 다니는지 말하면 됐었고,


회사를 다닐 땐,

어떤 회사를 다니는지를 말하면 됐었다.


내가 속한 조직의 간판이 내가 되었고-

그 간판들은 걸고 나를 소개할 때면

항상 스스로 자부심을 느꼈다.


 


뭐 누군가에겐 내가 내건 간판이

그리 훌륭하지 않아 보일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겐 내 간판들은

나를 소개할 때 가장 앞에 선  


자랑스런 ‘나’였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 와서는 발가벗은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나를 소개할 간판이 없었다.  


사람들이

“혹시 무슨 일을 하세요?”

라고 물으면- 항상

“집에서 애 보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 하였는데-

그 앞에 종종 “한국에서는.. “이라는

옛 간판을 달곤 했다.


아마도 그 옛 간판이 있었기에 애 본다 라는

 말도 자연스레 나온 것이 아닐까..


아무튼 영주권이 나온 후 작은 회사에서

부품 관리 일을 할 때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냐 물으면,


미국 작은 기업에서  

노가다 합니다. 라고 대답하기도 했는데-


이제 나는 “세탁소를 합니다” 라는

새로운 간판을 달게 되었다.



그런데..

나부터 가지고 있던 선입견 때문인지 몰라도-

아직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물으면-

전처럼 자신있게  


내 간판을 소개하지는 못한다.


비단 나 뿐 아니라, 우리 부모님도- 우리 아내도

나랑 비슷한 상황인거 같긴 한데...  


 


뭐 항상 둘째 아들 자랑이던 엄니가

한국에서 직장 멀쩡히 다니던 아들이  

미국에서 세탁소를 한다고

쉽게 말씀 하실 리 만무하다.  


미국에서 작은 직장 다닐 때도, 미국에서

일 한다고 쉽게 이야기를 하시는거 같던데-


세탁소 사장이 뭐길래-

 나부터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위축이 될까-



하지만 사실 지금의 나는  

 남들에게 내 간판을 보여주기엔 위축이 되어도,

스스로 내 간판을 보고 있자면, 뿌듯한 마음이 든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설렘과,

 새로운 일에 대한 재미로

하루 하루가 기대된다.  


 


아직은 진상손님을 만난 적도,

세탁으로 큰 사고를 친 일도 없고-

또 긴장 속에 일을 배우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지금의 내 삶이 꽤 만족스럽고,

즐기고 있는 중이다.  


 


예전의 나는 꽤 멋진 간판 뒤에 숨어

그 간판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나’ 였다면-

그리고 그 시선 속에서 자부심을

느꼈던 ‘나’였다면-


 


지금의 나는 비록 사람들이 보기엔

허름해 보일지 몰라도-

그 간판 안에서

스스로를 갈고 닦으며-  


간판이 아닌, 사람들의 시선이 아닌-

나의 삶 자체에 자부심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나’가 되어 가는 느낌이다.  


처음 미국에 와서, ‘직장인’이라는

내 회사의 간판을 땠을 때만해도-


난 정말 간판을 빼면,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였구나

생각이 들었었다.  


한국에서야- 어느 기업에서 어떤 일을 합니다.

 라고 하면 다들 끄덕였지만


이곳에선 그런 것들이 아무 의미 없이

그저 나는 나로써 평가를 받았기에-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의 나는 그리 빛나지 않는

간판을 달고 있지만,

언젠간 간판이 아닌 스스로가 빛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들의 옷을 빨고, 다리는 것처럼-

지금은 내 삶을 잘 빨고, 깔끔히 다릴 단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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