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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인사드립니다.

아빠는 후회 없는 직장 생활을 했단다.

by 부산물고기

몇 번의 퇴사와 이직을 거친 아내가 나에게 물었다.


"막상 퇴사하고 나니까 많이 아쉽지?"


"아니, 사실은 퇴사는 한달 전부터

준비하고 상상했던 거라..

이미 여러 날에 걸쳐 아쉬움이 나눠졌는데..

막상 퇴사하고 나니-

나 정말 직장 생활 잘했다고 자랑이 하고 싶어"


정말이었다. 10년간 회사에서 생활하며 만난

인연들과 내가 일한 발자취를

정말 며칠간 혼자서 생각하고 추억하다 보니

'와, 나 진짜 회사 생활 잘한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퇴사를 생각했을 땐,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퇴사 날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아쉬움이 커졌고,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회사원으로써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기도 하였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또한 두려움도 있었다.

회사라는 거대한 조직 속에 속해 있는 나는 언제나

보호받는 느낌이었고, 또한 내가 하는 행동 하나 말투 하나-

자신감 하나에는 '회사'라는 배경이 묻어졌는데-

이제는 나의 든든한 백- 하나가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퇴사 며칠 전에는 사내 메일로 마지막 인사 메일을 남겼다.


꾺꾺 눌러 써 전달한 나의 마음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이 잘 전달될까,

며칠을 고민하다가, 퇴사 메일은 친필로 작성하여 스캔하였다.

정말 고마웠고, 행복했고, 사랑했던 회사 동료들에게

조금이라도 내 마음을 더 잘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퇴사 날에는 인스타에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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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10월의 마지막 날

10월 31일이면 몇 번이고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듣곤 한다.


올해 10월 31일은 나에게 조금 더 특별한 날이었다.


2010년 뜨거운 여름, 신세계의 인턴으로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2020년 10월 31일 신세계에서


퇴사하였다.


입사 1년차, 여전히 사랑하는.동기들과
번개를 쳐주시기만, 기다렸던 신입이 시절


다른 사람들은 '직장' 혹은 '회사'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나의 직장은 언제나

'자랑거리'였고, '자부심' 이였다.


퇴사하기 전, 퇴사 인사를 드리는 메일을

드리기 위해 편지를 쓰고, 조직도를 켜서

이제껏 함께 일했거나,

인사드릴 수 있는 분들을 한분 한분

수신인에 지정하였다.


동기들의 축가 전담

총 317명의 선후배 및 동기들을

수신인으로 지정해보니-

신세계에서 만난 너무나도 소중한 인연에

감사했고, 또 항상 받기만 한 거 같아 죄송하였다.


한가족협의회

혹시나 나와 함께 일하며-

속상했거나, 나로 인해 상처 받은 동료가 있다면

부디 너른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고, 좋은 기억만

남겨 달라 마음속에 그 바람 가득 담아

조심스레 메일을 전송하였다.

점포주변 환경정화 활동


부모님께도 10월 31일이면,

퇴사를 한다고 말씀드리자,

아빠는 신세계 방향을 보고

큰절을 몇 번이나 올려도 모자라지 않다며,

꼭 큰절을 올리라고 하셨다.

마지막 나의 쌍남자 팀

10년이란 시간동안 언제나 나의 또다른
이름이 되어주었던 곳을 떠나려니
처음엔 괜찮은거 같다가도

마음이 먹먹해 지곤 했다.

많은 실수와 경험을 했던 첫 본사생활


혀진 계절의 첫 가사처럼-

세월이 흘러도 신세계에서 겪은

소중한 기억 하나하나 기억하고 추억할 것이고


신세계를 통해 만난 인연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길 것이다.

(나 진짜 평생 회사 다닐 줄 알았는데..)


남들은 다 회식이 싫다는데 나는 정말 회식을 사랑했더랬다.

고마워, 신세계.

정말 정말 사랑했던 나의 회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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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메일에 온 답장들을 읽으며,

또 인스타에 달린 지인들의

댓글들을 보며, 또 개인적으로 연락이 온 선후배들을 보며-


나 스스로가 꽤 잘 지낸 거 같아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뭔데 이 뻔뻔함은)




하지만 막상 인트라넷에 들어가지지 않는 상황을 대면하니

섭섭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가족과 나. 모두를 위한 선태이었기 때문에

언제까지 아쉬워하고, 추억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 구역 건배제의 왕은 나다

회사를 다닐 때, 항상 건배제의 하나만큼은

기똥차게 한다고 칭찬을 들었는데,

내가 처음 가는 자리에서 항상 했던 건배제의에는

언제나 이 인용구가 들어갔다.


시카고대학교의 프란체스코 후쿠야마 교수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미래를 주도하여라.'


(그럼 항상 사람들이 후쿠 뭐? 프란 뭐? 시카고 대학?? 이러곤 했는데)


아무튼 나는 미국에서의 삶이라는 새로운 미래 앞에 서있다.

신입사원 때부터 주구장창 외쳤던 그 상황.




내가 '주도' 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는 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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