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주제 - 육아 (문병규)

by 부산물고기

첫번째 이야기 – 육아

2021년 3월 19일 / 기말 페이퍼를 준비하는 자세로 바로 그 전날 시작

문병규


프로젝트의 첫번째 주제로서 ‘육아’를 꺼낸 것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것만큼 내 삶의 변화를 극적으로 끌어낸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였다. ‘육아’라는 다소 모호하고 광범위한 소재를 잡은 것은 바로 아이의 키움만이 아닌 그 속에서 변화하였던 나의 삶을 돌아보고자 했음이 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쓰이는 모든 글은 철저히 나의 시선과 주관, 개인적 경험에만 의존하고 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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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에서 비롯된 낯섦, 그리고 그로 인함들


아이의 탄생은 사실 굉장히 축복 되고 환희에 가득 차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태어나서 부모가 처음 되어 본 이 미숙한 성인은 기쁨과 함께 낯 섬 역시 강하게 느꼈다. 열 달을 배에 품고 있었던 엄마와 달리 옆에서 도와주기만 했던 아빠는 엄마보다 조금 더 그 낯섦이 컸다. “아버님, 아이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라는 간호사의 톤 높은 요청에 나의 대답은 “어.. 그래.. 아가야 너구나? 그래 우리 같이 잘 지내보자” 라는 마치 발령 때 인사 주시는 팀장님 같은 이야기나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되었다.


분명 아이는 사랑이고 축복이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는 그리고 우리 부부는 우리와 함께하는 이 아이를 세상 가장 큰 선물이라 여기고 또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자라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 소중함과 귀함이 그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이 순탄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이는 부모가 성숙하기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사실 이 지점은 단순이 아이가 유아였을 때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이다. 육아에서 초등교육 추후에는 독립까지 부모는 매 순간 아이의 성장과 함께 늘 또다른 새로운 과제를 마주하게 된다. 그 처음이 주는 고뇌와 힘겨움은 사실 상당한 포인트이다. 아직까지는 아이와 의사소통이 힘들었던 유아기가 그 중 최고였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나를 포함하여, 다소 으스대며 결혼을 앞둔 미혼남성에게 ‘결혼식 전에 모든 것을 다 누리렴’이라는 말은 전달하곤 한다. 태어나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한 공간에서 생활하기에 분명 그 말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결혼이 나 개인에게 가져온 변화가 10이라면 아이의 탄생과 육아는 1000정도에 가깝다고 생각이 든다.


아이라는 이 존재는 100% 본인의 생존을 우리에게 의지를 했다. 문제는 의지를 받고 있는 우리 역시 이 상황에 매우 미숙하다. 그 와중에 아이의 생활 패턴과 리듬은 성인인 우리와는 완전히 반대이다. 그러하기에 부모라고 주어진 자리에서는 이해가 되지만 한 개인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아이의 모습과 반응에 적지 아니 당황하게 된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니?’라고 많은 부모들이 우는 아이 앞에서 한탄하는 것은 이러한 심정에서가 아닐까?


조금 더 아빠인 나의 입장에서 기억을 꺼내보자면, 가족 울타리 밖의 세상은 육아로 인한 나의 고난과 힘듦을 심정적으로는 이해해 주더라도 이성적으로 봐주지는 않았다. 가동하고 있는 러닝 머신처럼 가만히 서있으면 뒤로 밀려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집에서 어색하고 힘들고 피곤한 일이 있다고 내 걸음이 느려지는 것을 조직이 허용함은 결국 내가 그래도 될 정도의 역할이나 위치에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업무적으로 스스로의 퍼포먼스가 떨어지고 있고 집중력이 낮아지고 있는 것을 보고 느끼고 있으나,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여력이 여느 때 같지 않고, 또한 이를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을 때 느끼게 되는 무력감이 정말 상당했다.


이 당시 아내에 대한 부분은 내게 큰 아픔이자 반성의 포인트이다. 나와 아내는 긴 시간에 걸쳐 연애를 해왔고 큰 갈등 없이 이해를 우선으로 하며 잘 지내오던 말 그대로 연인 같은 부부였다. 개인적으로는 힘든 부분이 있을 때 누구보다 아내에 의지를 많이 해왔다. 그러나 아이의 탄생은 우리 관계의 익숙함도 크게 바꾸었다. 아이와의 삶이 시작된 그 순간, 아내는 나보다도 더욱더 육체적,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는 상태였다. 난생 처음 마주하는 매분 매초 속에서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다. 아이는 사랑으로 키워야지 버틴다는 표현이 좀 그렇다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아이는 물론 사랑으로 키운다. 당연한 소리다. 다만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나의 몸과 마음의 항상성을 유지하고자 버텨내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홀로 해내기 어려운 상황의 연속 속에서 아내는 자연스럽게 남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는 내 상황 역시도 여의치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의 상황 인식에 조금씩 간극이 생기고 있었다. 출산 이전의 남편의 늦은 귀가를 ‘공적: 야근, 회식 / 사적: 운동, 친교’ 또는 ‘발전: 추가 업무, 건강관리 / 친교: 회식, 모임’ 등으로 구분해주던 아내는 여유가 없어짐으로 인해 이 모든 상황이 ‘부재’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는 아내의 입장에서 당연한 인식이다. 그 연유가 무엇이 되었건 남편은 지금 내가 필요한 상황에 없을 뿐이다. 당연하게도 그간의 모임과 취미를 줄였지만 그럼에도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야근 등으로 인한 남편의 부재가 누적되면서 우리 부부는 전에 마주하지 않았던 갈등의 상황을 겪게 되었다. 당시 다소 어려서 주변에 어디 물어볼 데도 없었던 나는 아마 15년 이상 아내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가장 아내의 가슴에 상처가 될 말을 많이 뱉었던 것 같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이란 너무나도 상투적인 표현에 기대자면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피할 수도 없고 즐길 수도 없었던 그 상황. 그럼에도 지금, 과거의 그 시간을 나름 회상하며 기억에 분칠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아래에서 말할 ‘애착의 깊어짐’덕분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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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닮음과 함께 살아간다는 행복


함께 이 프로젝트에 하고 있는 지섭이와 현석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 역시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삶에서 꽤 크고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아이와 호흡도 잘 맞는 편이다. 이에 대해 각자가 나름의 포인트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아이와 나의 ‘닮음’이 모든 것의 출발 지점이다.


예전에 수업시간에 유전적으로 개체가 부모를 닮는 것은 상당히 생존과 관련된 부분이 크다고 들었다. 당시에는 무슨 이상한 소리인가 싶었는데, 아이를 키우는 이 시점에서는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려온다. 나뿐만 아니라 내 부모님 장인, 장모님까지도 아이를 보면서 누구와 어디가 닮았는지를 찾으셨다. 아니 굳이 표현을 좀더 정확히 하자면 지금까지도 찾고 계신다.


이 아이와 나는 물리적으로 정말 많이 닮았다. 누가 봐도 내 딸인 것처럼 생겼다. 딸이기에 엄마를 좀 닮기를 바랐으나, 길가는 사람 100명을 잡고 물어도 “아빠 닮았네” 라고 말할 만큼 이 아이는 나와 똑 닮았다. 핵심은 이 닮음이 그냥 유사하게 생김으로 그치지 않고 내 마음에 와 닿는 무언가 애착을 만들어 준다 데 있다. 어쩌면 단순히 외모만 닮았고 아이가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기질은 나와는 아예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닮은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과 눈은 어느새 아이의 사소한 행동 하나 까지도 과거의 자신에 비추어 보고 있다. 나에게서 잘 보이지 않으면 굳이 내가 닮은 어머니에게까지 비추면서 아이에게서 닮음을 찾고 있다.


억지로 맞추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이는 기질적으로도 나와 닮은 점이 많다. 아내가 인정할 정도로 둘은 생김새는 물론 행동패턴 사고 방식도 같다. 이 아이도 나와 같이 말이 좀 많고 사고의 가지치기를 좋아한다. 뭔가 하나에 집중하기 보다는 이것 저것 기웃거리기를 좋아하는 등 기본 뼈대 자체가 나와 매우 흡사하다. 그 위에 드러나는 사소한 습관들까지도 유사성을 보일 때는 실소가 나온다.


아이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아이의 모습에서 내 어린 시절이 비춰지면서 부모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괜히 좀 더 나가서 나와 여러모로 비슷한 이 아이의 삶의 궤적마저 나와 비슷할까 하는 걱정도 된다. 오바다. 이런 식으로 닮음에서 비롯되는 애착들이 쌓이고 그 애착들이 아이와 함께 공유하는 시간과 기억으로 연결되면서 보다 깊은 관계가 되어 가고 있다. 글 속에서는 ‘아이’라는 일반 명사로 말하고 있지만, 위와 같이 만들어져 가는 우리 사이의 관계 속에서 더 이상 이 아이는 그저 아이 또는 그저 자식이 아니라 ‘지호’로서 내 삶 가장 소중하게, 가장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키워보니, 부부는 아이를 가지는 게 더 좋은 거에요?” 라는 질문은 포인트가 맞지 않다. 아이를 가질지 아닐지는 100% 그 부부의 자유다. 가져도 좋고 가지지 않아도 좋을 수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나는 ‘지호’를 이제 포기할 수 없고 그 이전의 시간으로는 돌아 갈 수 있더라도 가고 싶지 않다.


3.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우리 아이는 이제 내년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이제는 부모라는 자리에 학부형이라는 역할이 더해지고 아이와의 관계 속 교육에 대한 부분이 급속도로 커질 것이다.


교육에 대한 부분은 사실 참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 사교육1번지

라는 대치동에서 자라면서 그 곳의 빛과 어둠을 모두 봐온 나로서는 학부모들의 지나친 교육열에 늘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우스개소리로 아내에게도

“그 엄마들이 그렇게 노력했는데, 뭐 결과물은 나랑 큰 차이가 없을 텐데...” 라는 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다만, 이 생각조차 그 때의 내 생각이고 커가면서 또 변할 수 있기 때문에 확언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아대상 영어교육에 대해서 치를 떨던 나인데, 또 아이가 영어유치원 다니면서 영어를 ‘즐기며’ 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나도 저렇게 영어를 배웠으면 좀 덜 싫어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현 시점에서는 공부를 막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나만의 뜻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내 입장은 그러하다. 얼마 전 아버지와 함께 맥주 한 잔을 기울였을 때 아버지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본인은 본인의 부친 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강한 교육열 속에서 살아왔지만, 지호만큼은 본인이 하고자 하는 길로 가서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물론, 남편과 또 다른 남편의 생각일 뿐이니 굳이 비유를 하자면 소수 야당의 의견일 뿐이다. 모두가 한 곳만 바라보는 그 곳에서의 삶에 대한 경험이 있으니, 아이가 조금 힘들어 할 때, 옆에서 다독여주는 게 또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많은 딸 아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 중에 하나가 ‘살갑게 붙던 딸이 급속도로 멀어지는 시점’ 이라고 한다. 대개 사춘기 혹은 그보다 조금 더 일찍 온다고 하는데, 요새는 좀 빠르다니까 생각해보면 이제 나와 딸이 지금처럼 서로 찰싹 붙어서 떠들고 웃는 시간도 3~4년 정도 밖에 남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딸아이가 나로부터 조금씩 정서적으로 독립하고, 스스로 진로를 찾아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 그 상실감 역시도 앞으로 내가 이 아이의 아버지로서 겪어야 하고 또 지켜줘야 할 자리가 아닌가 한다. 물론, 그걸 잘 해낼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화도 많이 내겠지? 나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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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맺으며


내가 그랬고 아마 나의 부모님도 그러셨을 텐데, 아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비로소 ‘부모님도 완벽하지 않으셨구나’라는 것을 더욱 느끼게 된다. 본인의 삶에 아이의 무게감이 얹어지고 또 자신의 미숙함이 아이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조바심 내는 것. 그것이 부모의 삶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와 똑 닮은 이 아이를 보며 나를 다시 생각하고 이 아이를 대하는 나의 모습에서 나의 부모를 떠올리는 지금. 나는 비로소 조금 더 성숙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단순히 ‘대를 이었다. 유전적 정보를 넘겼다’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이 있고, 아이를 통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 이것이 왜 아이가 진실된 축복이고 선물이라고 하는 것인지에 대한 답이 아닐까 한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서 미안해. 부족함이 많지만 열심히 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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