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빠가 되고 싶어요?”
결혼 후 신혼생활은 퍽 즐거웠다. 연애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편했고, 밥을 하고 빨래를 하는 것들이 어릴 적 소꿉놀이 장난처럼 느껴졌다. 신혼생활이 만족스러운 탓에, 삶의 변화를 원치 않게 되었고 딩크족이 아니었음에도 아이 갖는 것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어느 날 예전 봉사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무리들과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마침 그 중 한 명이 ‘아동심리학 박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다양한 아이들의 ‘무서운 심리상담 사례’를 들었는데, 넋 놓고 듣다 보면 절로 아랫도리를 묶어 생산직의 역할을 서비스직으로 바꿔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난 애 못 낳겠다” 라고 말하는 순간, 심리학 박사는 세상 듣기 거북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한 말은 마치 아이 심리 상담하러 와서 ‘나는 좋은 부모인데 애가 왜 이러는지 모으겠어요’ 라고 말하는 부모들과 같은 결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우는 대부분 아이의 심리치료보단, 부모의 치료를 우선적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아이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그것을 모방하며 자라게 된다. 즉, 육아는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가 아닌, 나는 어떤 아빠로 아이에게 기억되길 바라는가 에서 시작되며, 나의 성장이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핵심 키워드인 것이었다.
2019년 3월 28일 14시 43분 33초
햇살이가 태어난 순간이기도 하지만, 내 삶의 방식이 송두리째 바뀐 순간이기도 하다. 한번에 스위치가 온 오프 되듯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햇살이는 내 삶에 살며시 녹아 들며 내 삶에서 나를 밀어내고 그 부피를 점점 키워 가기 시작했다.
초기 육아는 군생활 조년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정신력/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전투이자, 본업보다 내무실 생활이 가혹하다는 부분이 많이 닮아 있었다. 새벽에 깨는 아이소리에 밤새 잠 못 자며 비몽사몽 출근한다. 지하철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모르는 역이었다. 이 모든 것이 꿈이길 바라며, 서둘러 반대편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지만, 오늘 하루도 허겁 지겁 으로 시작해 허둥지둥하다 끝날 걸로 예상된다. 멈춘 나침반을 갖고 행군하는 군인처럼, 난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하루하루 버텨낸다. 하지만 입대전으로 돌아가 병역을 피하겠냐고 묻는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YES’를 외치겠지만, 자유롭고 모든 걸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던, 준원이 없던 시절로 돌아가겠냐고 누가 묻는다면, 대답은 ‘NO’다. 이성적/감성적/체력적으로 좋을 것 하나 없는 상황에서, 감정적인 것 하나가 모든 것을 압도해버리고 만다.
아이의 두 돌을 맞이한 지금, 병장처럼 많은 것들에 적당한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나는 어떤 아빠 즈음 되어있는가’. 나의 목표는 ‘준원이가 고민이 있을 때, 모든 분야에서 상담하고 싶은 1순위’라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지금의 나를 돌아보자면, 육아에 열심히 했다고 스스로 자부하지만, 열심히만 했을 뿐 원했던 아빠의 모습이 없다. 아이가 나를 거부하고 엄마를 찾을 때, 은근히 마음이 상한다. ‘내가 너무 살림살이만 했나? 잘못한 걸 너무 나무랐나?’ 많은 고민이 지나간다. 할아버지가 쓰는 ‘우유 사탕’과 ‘핑크퐁/뽀로로 영상’이라는 치트키로 준원이 엄마를 단번에 앞지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선악과를 베어먹진 않겠다. 내 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준원이가 함께 운동하자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때가 되면, 준원이 엄마는 맨날 우리가 벗어 놓은 땀 흘린 티셔츠만 빨고 있어야 할 것이다.
육아는 어렵다. 오은영 박사님에게 순간적인 육아 스킬을 배우지만, 모든 것들이 수월하게 되진 않는다. 나처럼 고생하는 육아동지들의 허둥지둥 꾸중 스토리가 오히려 위로와 공감이 되기도 한다. 육아는 결국 아이에게 하듯, 나 자신을 응원하고 칭찬함으로써 확신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오늘도 내 스스로에게 말한다. ‘고생했고,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