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주제 -서현석 (서현석)

by 부산물고기

나는 직업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중학교때 주민등록 초본을 제출한 적이 있는데, 다른 친구들은 한장 이면 족한 것을, 난 4~5장 분량이 나왔다. 대략 세어보았을 때, 20여회 주소지가 옮겨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어릴 적 기억이 살았던 지역과 결부되어 언제 있었던 일인지 제법 잘 기억해낸다.


내가 첫 축구 관람을 한 건 부산이었으니 4살이었을 것이고, 허벅지가 찢어져 12바늘을 꿰맸을 때는 진해에 살 때 였으니 5살때일 것이고, 나의 첫 여자친구는 서울 살 때 였으니 6살 때 였을 것이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행복한 유년기를 보낸 것 같다.


봄이 되면 집에는 부화하지 못한 개구리알들과 막 활동을 시작한 개구리들로 욕조를 채웠고, 여름이 되면 방 여기저기에는 날개 잘긴 잠자리들과 매미들의 사채가 어질어져 있었다.


너무 당연하게 공부라는 건 딱히 했던 기억이 없다. 부모가 된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만행들이다.


이사를 자주하면서 좋았던 점이라면, 지역마다 노는 컨텐츠들이 각각 달랐다. 홍천에서는 주로 강낚시와 자연산 식용식물 채취, 양양에서는 바다수영과 연어잡기, 원주에서는 강가에서 스케이트 타기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친구를 사귀어도 곧 헤어진다는 것은 무척 아쉬웠다. 친구들도 대부분 군 자녀들이어서 서로의 이유로, 1년 이상 친하게 지낸 친구가 없었다. 고등학교도 3개의 학교를 다녔고 대학도 중간에 휴학을 2차례나 했으니, 중학교 3년이 유일하게 전학과 휴학이 없었던 학창시절이었다.


나의 리즈 시절을 꼽자면 단연 고 2,3학년때다. 일본에 있었을 때인데, 적당히 니혼진 같이 생긴덕 인지, 영어와 일본어가 부족하여 과묵을 택하는 바람에 신비주의가 생긴 탓 인지, 어딜가든 우르르 구경하러 들 왔다. 물론 고3 입시 학원 때 고1 여학생들이 날 구경후 “야, 별론데?” 라는 목소리도 교실 넘어 들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업식날 받은 꽃다발의 양이, 과장을 조금 보태서 꽃가게를 차릴 만큼의 수준이었다.


지금의 나를 돌이켜본다. 크리스마스 트리 일 것만 같았지만, 나는 트리를 비추는 전구에 불과했음을 깨달았고, 그래도 밝게 빛나고 있음에 감사해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할까. 아주 치열하게 노력한 끝에, 지금 나는 아주 평범하게 살수 있게 되었다. 서울 외곽지에 집 한채를 갖고 있고, 푼돈으로 주식을 하다 그마저도 절반은 날려먹었으며, 적당히 살만큼의 월급을 받고 있다.


평범해진다는 게 이리 어려운 일인지 몰랐는데, 사실 이 마저도 부모님이 주신 게 8할 이상은 되는 것 같다. 대학 진학을 해외로 했다면, 대학 때 어깨춤을 좀 덜 추고 공부에 매진했다면, 회사 3년차때 회사를 박차고 동대문에서 장사를 시작했다면 지금의 내인생은 어떻게 달라져 있었을까.


물론 다시 선택의 기로로 돌아가도 그때와 다른 선택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떠돌던 학창시절이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은 잘하게 해주었으나, 동시에 안정적인 삶을 강하게 요구하게 되었다.


선택의 결과는 예상되어야 하며, 계획에서 벗어나는 것까지 계획에 포함 되어야한다.


그런 성향은 애기가 태어나고선 더욱 심해졌다. 많은 것들을 루틴화시켜서 시간 효율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번개모임도 못 한 다기보단 안 하는 것에 가까워졌다. 이상한 완벽주의와 혼자만의 강박이 강해진 것이다. 숙면 못 취하는 로봇 같다고 할까. 그렇다고 지금의 내모습이 싫다는 것은 아니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가장의 모습은 내가 원했던 미래의 나였다. 다만, 철 든다는 게 노잼 로봇이 되는 줄은 몰랐을 뿐이다.


종국의 나는 여유로운 자가 되고자 한다.


내 손에 치킨이 두 마리 있는데, 우연히 누군가를 길에서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한마리를 건네 줄 수 있는 여유를 의미한다. 돈과 시간이 꼭 많아야 하는 것이 아닌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것들이다. 지금은 회사 업무와 육아로 아침 7시부터 저녁 11시까지, 20분짜리 유투브를 온전히 볼 틈도 없이 빡빡하게 채워지다보니 주변을 살필 시야가 많이 좁아져 있다. 만약 둘째를 갖는다면, 그 빡빡한 세월이 10년을 채울 것이며, 경제적/시간적으로 나를 더욱 압박해올 것이다. 치킨은 먹고 남지 않을 만큼만 정확히 사와서, 빠른 시간에 먹어 치우자고 이성적인 뇌가 말할 것이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이지만, 오늘은 선물이다. 그래서 오늘을 선물(present)라고 부르는 이유다’. 다양한 외부 변수들이 나를 흔들겠지만, 주변을 살피며, 중요한 것들을 잊지 말고, 내면의 평화를 지키는 서현석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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