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주제 - 서현석 (문병규)

by 부산물고기

두번째 이야기 – 서현석

2021년 4월 14일 / 아이도 자고 아내도 자는 밤 시간에

문병규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중심 인물들간 인연이 꽤 극적인 순간에 시작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의 인연을 특별하게 보이게 하기에 그만한 장치도 없을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본다면 확실히 나와 현석이의 인연은 분명 극적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은 회사 면접장이니까.


첫 시작은 확실히 서로에게 인상적일 수 밖에 없었다. ‘취업’이란 절박함을 안고 있던 바로 그 순간, 한 명은 그 조에서 가장 많은 질문을 받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짧은 순간 본인의 특기를 표출해야 했으니 말이다.

“저 면접 때 같이 들어갔었어요.”

말도 안되게 미학과 유통을 억지로 짜 맞춰 대답하던 나를 기억해주던 이가 바로 현석이다.

“혹시 그….랩했던 분 맞죠?”

극도로 긴장되는 순간에도 좌중을 사로 잡았던 사람이다.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울 수 있는 면접관의 요구에 담대하게 대응하며, 본인의 장기를 선보이던 그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어서 그런지, 현석이와는 뭔가 묘하게 연결된다는 느낌을 괜시리 받았다. 같은 조, 앞 뒤 사번, 둘 다 바이어 지망, 나이도 동갑, 겹치는 지인 등등. 어쩌면 외롭(?)거나 딱딱하게만 시작할 수 있는 사회 생활이 비교적 다채롭고 따뜻할 수 있었던 데에는 분명 현석이의 도움이 컸다. 둘의 첫 근무지가 본점과 강남점으로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었음에도 심적으로도 일적으로도 가장 많이 의존 했던 친구가 바로 현석이었다.

초년 이후에도 비슷했던 희망 진로와 관심사 덕분에 교차 지점이 많았다. 함께 상품 본부에서 옆 팀에 자리 하며 마음 놓고 고민을 털어놓으며 새로운 소식과 관심사를 공유하곤 했다. 한창 수입차에 관심 많았던 30대 초반에는 책도 나누고 전시장도 함께 가고. 그러고 보니 아이가 생긴 사실을 안 순간에도 같이 점심을 먹고 이디야 커피에서 수다들 떨던 중이었다. 작년에 내가 본점으로 발령이 나서 물리적으로 다시 멀어졌을 때, 종종 찾아와 주던 그에 대한 고마움은 꽤나 컸다. 이렇게 찾아 와주는 사람은 그가 유일했으니까. 다시 돌아가는 그를 쿨한 척 배웅했지만, 사실 그 짧은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나도 컸다. 확실히 현석이는 나에게 그 시작이 회사일 뿐 ‘동기’보다는 ‘친구’이다.


시작은 시작인 것이고 인연은 인연인 것인데, 무엇이 이토록 나를 서현석이란 사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10년 넘는 시간을 함께 하며 느끼는 지점은 바로 현석이가 가지는 ‘어울림’이다. 이 친구는 확실히 그 뚜렷한 이목구비와 강단 있는 목소리만큼 확고한 본인의 신념이 있다. 쉽게 굴하지 않고 본인의 의사를 뚜렷하게 표현하며, 필요할 때는 자신감있게 싸울만큼 강한 자신만의 생각과 가치관이 있는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현석이를 여기에서 보다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대개의 위와 같은 사람들이 쉽게 가지지 못하는 유연함이다.


특정한 상황, 시간, 무리, 스타일 등등에서 나는 현석이가 무엇과 어울리지 않는다 라는 생각이 든 적이 거의 없다. 패션, 음악, 직무, 스타일링, 담화 등등 여러 다른 상황에 속에서도 언제나 현석이는 나름의 자기만의 스타일과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제와서 솔직히 하는 말이지만 ‘김무스 헤어 스타일’까지 소화해 내는 사람은 서현석 이후로 못 본 것 같다. 음.. 비아이가 아닌 비아이 스타일도..

잘 생각해보면 현석이는 보통 청자의 위치에 있었다. 그가 하는 말, 그가 존재감을 표출하는 순간이 강렬해서 그렇지 그는 보통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다. 신념과 주장이 강한데 그 못지 않게 갖추고 있는 조화로움이 참 특별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석이는 분명 본인의 색채가 굉장히 강함에도 내가 그에게 무엇인가를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나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을 맞춘다고 애쓰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 나는 나대로 본인은 본인대로 서로가 함께 있으며 편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 내는 그런 재주가 있다. 굳이 술에 빗대자면 뛰어난 향기로 그 자체로 즐겨도 좋은데 어떤 안주와도 잘 어울리는 토리카이 쌀소주 같은 그런 사람이다.


딸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아내는 종종 이런 말을 한다. 10대 아이들에게는 교우관계가 성적보다 중요하다고. 정서적으로 예민한 시기에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력이 어떠한지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조금 더 안정된 20대 30대가 되더라도 여전히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 스스로 굳건히 이 땅을 홀로 디딜만큼 강하다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가 그렇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삶의 매 순간마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기를 늘 바라왔다. 그리고 사회 생활의 시작 지점부터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 서현석 이란 사람과 함께 하고 있음을 큰 행운으로 생각한다. 앞으로를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감히 ‘우정’이라 말할 수 있는 이 관계가 계속해서 함께 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주제가 현석이어서 그런데 지섭이도 마찬가지다. 이 문장은 괜히 사족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왠지 써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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