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주제 - 아빠가 아빠에게 (문병규)

by 부산물고기

문병규 세번쩨 주제 – 아버지

원래 오늘은 술을 안먹으려고 했는데 이거 다쓰고 나면 마셔야할 것 같다.


부모님에 대해 쓴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복잡한 감정과 기억이 섞이기도 하지만 이상하리 만치 그 분들에 대해 무언가를 언급하려고 하면 괜한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그럼에도 불구, 모처럼 또 생각과 감정 감사함을 정리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에 조심스럽게 시작해본다.


나에게 아버지란 ‘우산, 안식처’와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의 이러한 존재감에 대해서 말하려면 ‘어머니’에 대한 부분을 빼놓을 수가 없다. 나의 어머니는 정말 많이 엄격하신 분이셨다. 보통 이런 말을 하면 본인 부모님도 무섭다는 소리가 돌아오지만, 나의 어머님을 조금 다른 차원의 수준이다. 아무래도 부족함이 많은 자식을 세상의 평균에는 맞춰 나서게 하려다 보니 그때는 많이 엄하고 엄격하시고 하셨던 같다. 지금에 와서는 정말로 어머니께 감사한 부분이 많다. 지금 내 능력(?), 취미 생활(?) 등등의 근간은 사실상 다 그 분이 마련해 주셨으니 말이다. 슬프게도 이제는 그 기세가 굉장히 많이 사그라 들었었지만, 쉽게 말해 착해지셨다, 실제 나의 모친을 본 이들은 대부분 내가 말 했던 어머니의 카리스마가 어떤 의미인지 어느 정도 수긍을 한다.


그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자라던 나 그리고 내 동생에게 아버지는 정말 한 줄기 빛과 같은 분이었다. 두 분께서 주말 부부를 하던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올라오시는 금요일에 동생과 나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현관문 밖으로 들려오는 엘리베이터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주중 내내 긴장 속에서 떨고 무서워 하던 우리 둘을 주말에 오셔서 따듯한 마음과 커다란 품으로 바라보고 감싸주시던 아버지는 무섭고 두렵던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큰 존재였다. 생각해보면, 매주 대전-서울 을 오가는 것이 정말 피곤한 일인데도 그걸 해내신 아버지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가끔, 아버지께서 일이 생기셔서 금요일에 못 오시고 토요일에 올라오시는 날이 되면, 동생은 펑펑 울었고, 나는 슬며시 방으로 들어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해야 공부들을 하고 있다가 빨리 잠자리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토요일이 빨리 오기를 바라며,


그러다 보니, 어린 시절 나의 주말 취미 생활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게임, 운동이 아니라 아버지와의 대화였다. 주말에 다른 활동을 하는 것보다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와 친한 이들이 보통 말하는 나의 특징 중 가장 큰 부분은 솔직하게 말하면 ‘말이 많다’, 이고 조금 순화하면 ‘어떤 주제든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다.’ 이다. 사실 이런 면은 바로 아버지와 대화에서 비롯 되었다.


많은 이들에게 아버지는 슈퍼맨이다. 나에게도 그러하다. 다만 내게 아버지가 슈퍼맨인 이유는 그 분이 보여 주셨던 육체적이고 신체적인 우월함도 있지만 지식적인 측면에서가 컸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내가 조금 알게 되어서 이야기를 꺼내면 아버지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이 분은 도대체 언제 이걸 다 알게 되셨지 싶을 정도로, 아버지는 다양한 분야에서 해박하셨고 그것은 나로 하여금 더욱더 많은 영역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하였다. 실제로 아버지는 아이스하키는 커녕 스케이트도 못 타시는데 NHL의 역사나 최근 리그의 흐름에 대해서는 나보다도 더 정확하게 알고 계신다. 아니 사람들이 흔히 보는 축구도 아니고 아이스하키를 말이다. 위키가 있고 모두가 지식에 대한 접근이 쉬워진 요즘이지만, 나는 여전히 아버지에게 많이 의존하고 있다. 이 분의 식지 않은 지식에 대한 열정은 정말 그 자체로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이 분과의 대화가 끊임없이 기대되고 또 즐거운 이유 이다.


나는 ‘사랑의 매’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실제 할 수 있으나, 나는 지금까지 겪어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내가 받았던 체벌과 매질에는 사랑이 아니라 그냥 매질하는 이의 그 순간 ‘나에 대한 답답함, 짜증남, 분노’등이 담겨 있었다고 여긴다.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분이 바로 아버지다. 아버지는 지금껏 단 한번도 내게 회초리를 드신 적이 없었다. 자리로 불러 엄히 꾸짖고 크게 혼내신 적은 있어도, 단 한번도 물리적으로 위력이나 폭력을 가한 적이 없었다. 내가 아이 아빠가 된 뒤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서 여쭈었을 때 아버지께서는 순간 감정이 올라올 때는 있으셨으나, 그냥 본인의 아이니까 때리고 싶지 않으셨다고 하셨다. 부족함이 많은 자식을 앞에 두고도 저런 생각을 하셨던 아버지를 보며 스스로 아비로서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에 대해서도 늘 생각 하고 고민한다.


자라오면서 아버지께 받은 것이 정서적으로도 지식적으로도 많다 보니, 늘 어른이 되고 성인이 되면 아버지께 해드리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나는 아직 100% 경제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자립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내 나이가 곧 마흔이 다 되어 가고 아버지는 은퇴를 하셨음에도 나의 삶이 그 분께 의존하고 있다는 현실은 참으로 부끄러우면서도 죄송스러울 뿐이다. 그렇기에 더 잘사는 모습을 보여 드려야 한다는 책임감도 들지만, 당장에 뭔가 자식으로서 해 드리는 게 없어 늘 죄송스럽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언급하셨던 버킷리스트에서 특히 아버지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을 꼭 이뤄드리고 싶다. 당신께서 유년~청년 시절을 보내셨던 곳에 나와 함께 가서 그 곳을 함께 거닐며 본인의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것만큼은 내가 꼭 내 손으로 해드리고 싶다. 코로나가 풀려서 모두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면 다른 무엇보다 꼭 그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아버지께 개인적으로 가장 큰 기쁨을 드렸던 것 같은 순간은 역시 아이의 탄생이다. 막 태어난 꼬마를 신생아 실에서 데려와서 처음 품에 안겨드렸을 때 아버지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혹시나 그럴까 사진도 찍어 두었다. 그렇게 무엇인가에 기뻐하시는 표정을 본 적이 없어서, 사실 음.. 꼬마에게 좀 고마운 부분이 있다. 내 아버지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꼬마가 만들어 주었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지섭이가 둘째를 말할 것 같은데, 그건 아니다. 아닌 건 아니다.


아버지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 내 아내 그리고 내 딸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시며 우리들의 본인 이후의 우리 가족의 삶까지도 신경 써주시고 계신다. 쓰는 내 손이 부끄러울 정도로 자식으로서 너무 큰 사랑을 받고 있기에, 감사하면서도 민망스럽기도 하다. 본인은 이제 주는 것이 더 기쁘다는 할아버지 같은 말씀을 하실 때마다 100세 시대에 무슨 그런 소리를 하시냐고 아버지를 위해서 좀 쓰시라고 괜히 큰 소리 내보지만, 그만큼 내가 자립한 모습을 못 보여 드려 그러시는 것 같아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멋진 모습으로 세상에 당당히 선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가 더 큰 슈퍼맨으로 느껴지는 요즘이다. 오늘 어버이 날에도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준 것을 보답할 생각 하지 말고 아이에게 더 크게 주라고 말씀하셨다. 그게 진짜 보답이라고 하시면서.


아버지. 우리 지호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대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하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도록 잘 키울게요. 그러니, 아버지께서도 오래도록 건강하셔서 지호가 그렇게 커가는 모습을 저희와 함께 봐주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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